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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바다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길 (낙안 - 장흥)
코스 거리 (총 63k)
낙안마을 - 원등마을 - 낙성초교삼거리 - 행정삼거리 - 양정 - 조성삼거리
3k 2k 1k 6k 4k
- 남정삼거리 - 득량방조제(신흥) - 득량방조제(수문) - 청암 - 선소 - 연
4k 2k 4k 3k 4k 4k
동 - 동백 - 회천(율포해수욕장) - 수문해수욕장 - 율산 - 안양 - 기산삼
5k 4k 5k 3k 5k 4k
거리 - 장흥대교
5k
기차여행은 처음이다. 국토종단 도보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출발을 기차로 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밤 10시 50분에 용산역에서 순천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야간열차를 타고 가는 여행이라 참 묘한 기분이 든다. 1978년 대학교 1학년 때 정선 구절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청량리로 돌아오던 때도 이런 묘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야간여행의 묘미를 느끼려면 야간열차를 타라”고 하는가 보다.
열차는 새벽 4시에 순천역에 도착했다. 시간이 애매하다. 날이 밝으려면 7시나 되어야 하는데, 지금부터 3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 뭘 하며서 시간을 보내지? 고민이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일단 아침식사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역 앞에서 불을 훤하게 밝히고 있는 식당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아줌마가 방바닥에 누워 잠자다 말고 부시시한 얼굴로 인사를 한다. 순천 추어탕은 맛이 어떨까? 괜한 호기심에 추어탕을 시켰다. 새벽이라 그런지 어떤 맛인지 잘 모르겠다.
지난 번에 여행을 마친 낙안으로 가기 위해 6시 20분에 벌교발 열차를 탔다. 거기서 택시를 타고 낙안마을로 들어갔다. 아침 7시인데도 아직 주위가 어둑어둑하다. 7시에 평촌마을을 출발했다. 낙안벌판을 가로질러 조성으로 가려고 58번이나 857번 도로가 아니라 들판 사이로 난 농로를 택했다. 그런데 낙안벌판에서 30분 동안이나 헤맸다. 내가 택시기사에게 분명히 낙안향교 앞에서 내려달라고 부탁했는데, 좀 더 지나서 평촌마을에 내려준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지도를 보고 가로지르려고 했던 농로가 아닌 다른 길로 들어선 것이다. 자꾸 이상한 마을 이름이 나와서 지도를 놓고 찬찬히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았다. 내가 처음에 길을 잘못 들어서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모든 일에는 첫 단추를 잘 끼워야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지동리에서 동네 아저씨를 만나 길을 여쭈어 보았다. 내가 정확한 방향으로 길을 가고 있는지. 농로나 등산로 등 지름길은 차가 다니지 않아서 좋긴 한데, 이처럼 한번 방향을 잘못 잡으면 자칫 큰 낭패를 당하게 되는 단점이 있다. 지도 보기에 미숙한 초보자들은 확실한 길로 다니는 것이 좋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마라’라는 속담은 도보여행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월평마을 앞에서 벌교장에 가는 할머니 7명과 할아버지 1명을 만났다. 길거리에서 이렇게 많은 노인들을 한꺼번에 만나긴 처음이다. 벌교장에 가시려고 버스를 기다린단다. 그래서 아까 벌교역 앞에 어스름한 꼭두새벽부터 할머니들이 보따리짐을 하나씩 풀고 있었구나. 할머니들은 활기찬데 할아버지는 혼자라서 그런지 영 숫기가 없이 외톨이 신세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성호르몬의 영향으로 저렇게 남자와 여자의 사회성과 활동력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저런 모습을 우리 동네 문화센터 수영장에서도 많이 보았다. 수영장에 가면 할머니들 세상이다. 그나마 몇 명 안되는 할아버지들은 창피해서 따뜻한 스파에 들어오지도 못한다. 할머니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수줍던 새색시가 어떻게 저런 용감한 할머니로 변할 수 있을까? 참 재미있는 생리현상이다.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더 드세지고, 남자는 반대로 비실비실해지고.
양동마을 버스정류장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보았다. 할아버지 한 분이 버스에서 내리는 할머니를 마중 나와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나와 잠깐 얘기를 나누느라 할머니 짐을 바로 받지 못하고 좀 미적거리자 바로 할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아니, 빨리 수레 가지고 오지 않고 뭐하고 있어?” 눈을 흘기면서 할머니가 소리친다. “알았어. 가면 될 거 아냐." 할아버지가 성급하게 대답한다. 신혼 때도 저랬을까?
양정마을에서 조성교차로까지 약 3킬로미터는 국도 2번 도로와 겹친다. 이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계속 가면 보성 장흥 강진 목포가 나온다. 그런데 이런 국도는 거리가 가깝고 갓길도 잘 되어 있지만, 차가 너무 많고 과속으로 달려서 정말 위험하고 엄청난 소음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도보여행자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 길이다. 장흥 40킬로, 보성 20킬로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유혹에 빠진다. 돌아가지 말고 이 길로 가버릴까? 그럼 훨씬 빨리 갈 수 있는데....
신월삼거리에서 2번 국도를 버리고 77번 지방도로로 들어선다. 조성리부터 간척지가 펼쳐지고 멀리 아스라이 득량만방조제가 보인다. 저 넓은 농지가 모두 바다였다니. 서산간척지를 개간한 정주영씨에 앞서 일제는 우리 농민들의 노동력을 수탈하여 저 드넓은 간석평야를 개간했다. 보성군 득량면과 고흥군 대서면 사이로 깊숙이 들어온 득량만 안쪽에 약 5킬로미터 길이의 제방을 쌓고 그 안쪽의 땅을 논으로 만든 것이다.
남정삼거리에서 대서를 거치지 않고 바로 득량방조제로 빠지는 길이 있다. 한겨울 칼바람이 볼을 때린다. 바람이 너무 세어서 사람이 날아갈 정도로 흔들린다. 그래도 기분은 맑고 상쾌하다. 눈맛은 장쾌하다. 지금까지는 내내 내륙으로만 다녔는데, 지금부터는 바다를 실컷 구경할 수 있다. 방조제로 올라서니 시원한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고흥반도에 있는 수많은 산들이 푸르스름하게 보이고, 바다에는 여기저기 양식장이 흩어져 있다. 양식장에서는 사람들이 갯벌에 쪼그리고 앉아서 무언가를 열심히 캐고 있었다. 그 사이로는 통통배들이 이리 저리 흘러 다니면서 바다 일을 하고 있고. 어부들에게 바다는 돈이다. 일판이다. 생명이다. 농부에게 땅이 목숨인 것처럼 어부에게 바다는 목숨이다. 저들은 저 억세고 강한 생명력으로 자식 다 가르치고 먹고 산다. 장흥 출신 한승원의 <포구>나 <바다안개> <그 바다 끓며 넘치며> 같은 작품들을 보라. 바다는 무궁한 생산을 보장하는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위대한 자산이다.
멀리 갑문이 보이는데, 아무리 걸어가도 다가오지가 않는다. 직선거리라 그런지 목표물이 눈 앞에 보이는데도 실제 거리는 상당히 멀다. 오후 1시에 제2호 배수갑문에 있는 중앙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낙안에서 여기까지 약 20킬로를 걷는 동안 식당은 이 집과 그 옆 집 뿐이다. 횟집이어서 싼 음식은 없는데, 도보여행자라고 사정을 했더니 아줌마가 1만원으로 매운탕을 끓여주었다. 좀 짜긴 하지만 굴젓과 전어돔배젓 맛이 천하일미다. 나올 때 아줌마가 고생이 많다고 하시면서 고구마 2개를 싸주신다. 나에게는 이런 분들이 천사다.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들. 고맙다.
점심을 짜게 먹어서 그런지 너무 목이 마르다. 겨울철 트레킹에선 이런 일이없었는데. 남쪽으로 내려오면서부터 음식이 짜지니까 자연스레 걸으면서 갈증이 나는 것이다. 겨울철에는 도보여행 중 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오줌이 자주 마려운데 거기에 물까지 마시면 오줌보에 난리가 난다. 한 겨울철에 길가에서 중무장한 트레킹복(등산복)을 입고 고추를 한번 꺼내려면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다. 추운 날씨에 고추가 쪼그라들어서 더 힘들다. 중간에 가게가 없어 원산마을에 와서야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목이 말라 죽는 줄 알았다. 배낭 무게를 줄이려고 물을 가지고 다니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가게를 나서니 어느덧 날이 어두워진다. 뒤를 돌아다보니 보름달이 훤하게 떴다. 달빛이 어린 바닷가 풍경이 신비롭다. 생전 처음 보는 이색적인 풍경이다. 더구나 이런 해변길을 걷는 것도 처음이다. 신기한 경험이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허생원과 조선달처럼 달빛 아래 길을 가는 경우는 상상해 보았어도, 이렇게 달빛 아래 해변을 따라 밤길을 걷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후레시를 켜고 걷는다. 차를 마주보고 걷는데, 정말 위험하다. 그런데 방법이 없다. 오늘은 약속한 사람이 있어서 무조건 거기까지 가야 한다. 회천에 있는 율포해수욕장까지. 거기까지 가면 오늘 대강 40킬로를 걷는 셈이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거기에 레오외할머니가 사신다.
금강마을까지 레오외삼촌이 마중을 나왔다. 율포까지는 2킬로가 더 남았지만 내일 다시 걷기로 하고 차에 올라탔다. 율포에서 레오외삼촌이 안내하는 어떤 식당에 들어가니 레오외할머니와 외숙모가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차를 타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왔으면 이 분들이 30분은 더 기다려야 했을 테니까. 이 분들은 내가 차를 타고 오는 줄 알았단다. 오늘 낙안에서 여기까지 40킬로를 걸어서 왔다니까 다들 놀란다.
레오는 호주 시드니에 있는 아내 친구의 아들이다. 유학생인 나와 우리 가족은 레오네에게 큰 신세를 졌다. 특히 레오엄마가 아내와 친해서 우리를 많이 도와주었다. 우리를 위해 맛있는 음식도 자주 만들어주고 외환위기 때는 등록금 내라고 돈도 빌려주는 등 여러 가지로 신세를 많이 졌다. 유학할 때 여러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레오네는 내가 잊어서는 안 될 은인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 출발 하루 전에 아내가 레오엄마와 국제전화를 하고 있었다. 언뜻 레오엄마의 고향이 벌교인가 보성인가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내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았고, 보성이라고 해서, 내가 그리 지나간다고 했더니 집 전화번호를 내게 알려주어 레오외할머니에게 인사도 할 겸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저녁과 아침을 잘 얻어먹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따뜻한 방에서 잘 잤다. 무엇보다 나를 한 번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레오네 외할머니, 외숙모, 외삼촌의 환대가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아침에 레오외삼촌이 어제 저녁에 픽업했던 금광마을 앞까지 차로 데려다 주었다. 9시에 금광마을을 출발했다. 오늘 목적지는 장흥이다. 완도를 경유해서 갈까 하다가 거리가 더 먼 거 같아서 장흥 - 강진코스로 노선을 바꾸었다. 무엇보다 이번 코스에서 김영랑생가와 다산초당, 백련사를 빼먹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키조개로 유명한 수문해수욕장에 있는 수문리에 ‘한승원거리’가 있다. 작가 한승원 선생은 지금 율산마을에서 집필활동을 하고 계신다. 한번 찾아가 볼까 하다가 일면식도 없고 문학도도 아닌 사람이 괜히 귀찮게만 할 거 같아서 그냥 발길을 돌렸다. 그의 소설집 ‘안개바다’의 후기에 나오는 한 대목에는 그의 고향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나는 내 살과 뼈를 키워 준 바다와 섬과 거기에 내린 안개와 이슬에 대하여 늘 고맙게 생각한다. 그리고 천 년을 산다는 갯강구와 하필 모래밭에 뿌리를 내린 채 짠바람을 맞으며 사는 갯방풍, 보리사초, 해당화, 순비기나무 따위와, 그것들처럼 갯벌물 뒤집어쓰고 짱뚱이 뛰듯 하며 사는 내 형제와 이웃들의 삶을 사랑한다.”
남도지방은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작가들을 많이 배출했거나 활동한 곳으로도 이름이 높다. 얼핏 살펴보아도 해남에 김지하, 황석영, 고정희, 김남주, 강진에 김영랑, 장흥에 한승원, 송기숙, 고흥에 이청준, 순천에 김승옥, 보성과 벌교는 조정래의 <태백산맥> 배경이다. 정말 우리 문학사에 자랑스러운 보배 작가들이다. 지금 내가 그 문향(文香)을 맡으면서 길을 걷고 있다.
안양이 여기에도 있다. 화장실에 일을 보러 안양파출소에 들렀다. 소장님과 순경 한 명이 근무하고 있다. 8명이 3교대로 근무한단다. 고맙게도 손창균소장님이 커피를 한 잔 타주신다. 도보여행 중에 화장실이 급할 때 가장 만만한 장소가 관공서다. 면사무소나 파출소, 보건지소, 농협, 하나로마트, 노인회관 등이다. 소장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사이클여행 중인 어떤 젊은이가 화장실에 들른다. “오늘은 우리 화장실에 외지 손님들이 만원이네.” 소장님 말씀이다. 우리 셋은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오후 4시에 장흥에 도착했다. 걸음을 멈추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다. 그렇다고 강진까지 14킬로를 더 걷기에는 상당히 무리다. 무엇보다 중간에 묵을 숙소가 없다. 에라 모르겠다. 어제 좀 많이 걸었으니 오늘은 좀 쉬자. 그래도 25킬로를 걸었다.
의외로 도시가 작고 우중충하다. 목욕탕을 함께 하는 모텔을 찾았다. 그런 모텔은 목욕을 공짜로 할 수 있고, 방이 따뜻하고, 값이 싸서 좋다. 오후 5시에 목욕탕에 들어가서 6시에 나왔다. 땀에 젖은 몸을 따뜻한 물로 씻어내고 냉온탕에 번갈아 들어가서 마사지를 했다. 발바닥과 다리에서 엉덩이를 집중적으로 주물렀다. 이제야 피로가 좀 풀리는 거 같다. 정신도 맑아진다.
방에 들어가서 짐을 정리하는데 여기저기 여자머리가 수두룩하다. 청소를 제대로 안한 거 같다. 내 옷에 여자 머리카락이라도 묻어 있는 날에는 마누라가 난리를 칠 텐데. 역시 싼티를 내는구나. 여관방에 싱크대도 있다. 이런 여관은 처음 본다. 무슨 팬션도 아니고. 방바닥은 예상대로 펄펄 끓었다.
짐정리를 마치고 장흥토요시장에 소고기를 먹으러 갔다가 6백그램씩 팔아서 그냥 나왔다. 나 혼자서 그걸 다 먹을 수는 없으니까. 동계삼거리에서 수퍼에 들렀는데, 거기 총각 주인이 오늘 장흥에 가면 소고기를 먹으라고 했던 것이다. 강진에 가면 한정식을 먹고. 장흥에는 소고기가 유명하고, 오늘이 소 잡는 날이란다. 토요시장에 갔더니 정말 한우고기집 대여섯 개가 모여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고기를 파는 장소와 구워먹는 집이 따로 되어 있었다. 횡성한우촌처럼.
꿩 대신 닭이라고 저녁으로 키조개탕을 먹었다. 육질이 질기기만 하고 별 맛은 없었다. 차라리 국물이 시원하고 깊은 맛이 있었다. 값이 1인분에 만오천원이나 한다. 원래는 수문리에서 점심으로 키조개를 먹고 싶었으나 고구마로 점심을 떼우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가 다시 만난 것이다. 배낭 무게 때문에 고구마를 빨리 처분해야 했던 것이다. 어제 고구마를 버리고 싶었으나 점심에 그걸 싸주신 중앙식당 아줌마의 정성 때문에 차마 그러질 못하고 오늘 점심까지 가지고 다닌 것이다. (2010년 1월 29일 - 30일)
교통
서울에서 순천행 버스는 무수히 많다. 용산역에서 전라선 기차를 이용해도 된다. 순천에서 낙안은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장흥에서 서울행 버스는 하루에 ?회 운행되며, 첫차는 ?, 막차는 ?. 소요시간은 ?시간 걸린다.
숙박
낙안읍성에서 율포 구간은 관광지가 아니어서 숙박업소가 거의 없다. 율포해수욕장과 수문해수욕장 그리고 장흥에 가야 민박, 여관, 모텔 같은 숙박업소를 이용할 수 있다.
식당
낙안읍성에서 득량방조제 구간은 관광지가 아니어서 식당이 거의 없다. 방조제 중간에 식당이 두 군데 있다. 방조제부터 장흥까지는 중간 중간에 식당이 다수 있다.
관광지
낙안읍성, 득량만 방조제, 보성다원, 율포해수욕장, 수문행수욕장 등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