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남선 교수님과 함께하는 풍수답사입니다. *
정기답사는 홀수 달 두번째 주 일요일에 실시하며
일정에 변동이 생길 시 미리 공지하겠습니다.
벌써 올해 마지막 답사를 준비합니다.
유난히 길고 더웠던 여름이 지나나 싶으니
고운 단풍에 낙엽지는 가을이 짧게 우리곁에 머물다 가려나 봅니다.
야외 활동하기 좋은 계절에
좋은 분들과 자연을 탐구하러 가면 좋겠습니다.
올해도 답사에 동행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
1. 답사일 : 2024년 11월 10일 (일)
2. 장소 및 시간 : 아주대 정문 오전 8시 30분 출발
3. 답사지
1) 영국사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1397)
충북의 설악이라 불리는 천태산 중턱에 위치한 영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법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8년(668년)에 창건되고, 고려 명종 때인 12세기에 원각국사에 의해 중창이 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고종 때 왕명으로 탑과 승탑, 금당을 새로 지어 국청사라 명명했다. 그 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 곳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함으로써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가 평안하게 되었다 하여 영국사로 개명하게 되었다.
영국사에는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 영국사 승탑(보물 제532호), 영국사 삼층석탑(보물 제533호), 망탑봉 삼층석탑(보물 제535호), 영국사 후불탱화(보물 제1397호)와 높이 31미터가 넘은 천연기념물 제223호인 수령 1,000살 가량의 은행나무 등을 비롯한 지방유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영국사가 위치한 천태산(해발 715m)은 100대 명산 중의 하나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암릉 산행지로 유명하여 등산인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네이버 검색 -- 천태산 영국사 홈페이지]
2) 김수온 선생 묘소 (영동군 용산면 한곡리 18-1)
조선시대의 문신 김수온의 묘소. 1987년 3월 31일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김수온은 1438년(세종 20)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441년(세종 23)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다. 그후 집현전(集賢殿)과 승문원(承文院)에서 《치평요람(治平要覽)》 《의방유취(醫方類聚)》 《석가보(釋迦譜)》의 편찬과 증수(增修)에 참여하였다.
세조 때에는 한성부윤(漢城府尹), 중추부판사(中樞府判事) 등을 지내면서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1471년(성종 2)에는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어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에 봉해졌으며 1474년(성종 5)에 중추부영사(中樞府領事)에 이르렀다.
당대의 명문장가인 서거정(徐居正), 강희맹(姜希孟) 등에 견줄 정도로 학문과 문장에 뛰어났다. 특히 사서오경의 구결(口訣)을 정하였고 《명황계감(明皇誡鑑)》 《금강경(金剛經)》등을 국역(國譯)하는 등 간행과 번역에 많은 업적을 남겨 국어와 불교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묘역에는 호석(護石) 등의 장식이 없는 소박한 봉분 1기와 묘비(墓碑)·상석(床石)·명등석(明燈石)·문인석(文人石)이 갖추어져 있다. 묘역에는 사당이 따로 없고 성종(成宗)의 명으로 건립되어 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보은 김수온 부조묘(충북기념물)는 보은군 보은읍 지산리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동 김수온 묘소 [永同 金守溫 墓所]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3) 황간 향교 (영동군 황간면 남성리 150-1)
황간향교는 태조 3년(1394)에 마을 뒷산에 세웠으나 현종 7년(1666)에 흙으로 쌓은 성안으로 옮겼으며, 영조 28년(1752)과 고종 9년(1872)에 수리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과 고직사 등의 부속건물이 있는데 앞쪽은 배움의 공간, 뒤쪽은 제사공간을 형성하는 전학후묘의 배치형태를 따르고 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으로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해 여러 성현들을 모시는 제사공간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집이다.
또한 주춧돌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것으로 보아 사원건축양식과 정자, 주택양식이 절충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걸쳐 제사만 지내고 있다.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책들은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황간향교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4) 난계 박연 묘소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산49-1)
1987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박연은 음악에 밝은 조선 초기의 문신(文臣)으로 초명(初名)은 연(然), 자는 탄부(坦夫), 호는 난계(蘭溪), 시호는 문헌(文獻)이고,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문헌공의 시호는 영조 3년인 1767년에 내려졌다.
난계는 삼사좌윤(三司左尹) 박천석(朴天錫)의 아들이며, 어려서 영동향교에서 공부하였다. 28세(태종 5년인 1405)에 생원(生員)이 되었고, 34세에 문과급제하여 집현전 교리(集賢殿校理)·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세자시강원 문학(世子侍講院文學) 등을 역임했다.
세종이 즉위하자 관습도감 제조(慣習都監提調)로 임명하여 음악에 전념하도록 하였다. 1425년(세종 7)에는 관습도감의 악학별좌(樂學別座)로서 향악·당악·아악의 율조와 악기의 그림 및 악보를 실은 악서(樂書)를 편찬하였다.
1427년(세종 9) 5월에 난계는 편경 12교를 만들어 자작한 12율관(律管)에 따라 음율을 연구하는 한편, 조회향악을 아악으로 대체했다. 1431년(세종 13)엔 남급(南汲) 정양(鄭穰)과 함께 회례(會禮)때에도 아악을 사용하게 하여 궁정음악을 전반적으로 개혁하였다.
1433년(세종 15)엔 회례아악을 제정한 공으로 말과 안장을 하사받았다. 그 이후로도 공조참의(工曹參議)·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지냈고, 세종 27년에 명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다녀 와서는 인수부윤(仁壽府尹)·중추원부사(中樞院副事)·예문관 대제학(禮文館大提學)에까지 이르렀다.
1453년(단종 원년) 계유정난 때에 아들 박계우가 처형되었으나, 그는 3조에 걸친 원로라 하여 화는 면했으나 파직당했다. 고향인 영동으로 내려와 살다가 1458년(세조 4) 3월 23일에 서거하였으며, 그 유해가 심천면(深川面) 고당리(高塘里)에 모셔졌다.
난계의 음악사적 업적으로는 ① 악서 편찬 ② 편경 및 각종의 아악기 제작 ③ 조회아악 및 회례아악의 제작 ④ 제향아악, 특히 종묘악의 정정을 꼽는다.
박연 묘소의 묘역에는 묘비와 망주석 상석이 갖추어져 있는데, 소유자는 ‘밀양 박씨 종중’이다. 지정 당시의 관리자는 박윤현이었고 1997년 현재는 박응용이다. 신도비(神道碑:무덤 앞 또는 무덤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사람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는 대제학 황경원(黃景源)이 지었다. 묘소 앞의 난계사(蘭溪祠)에다 영정을 봉안하고 제향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박연묘소 [朴淵墓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4. 회비 : 5만원 (차량 대여비 및 중식 석식 기타 비용 포함)
(당일 총무에게 납부)
5. 연락처 : 총무 김 은희 (010 - 3228 - 6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