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일기를 쓴다.
학교 다닐 때는 숙제로 쓴 것이지만 그 후부터는 나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
나는 아름다운 기록을 위해 명상과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해가 갈수록 영적으로 점점 젊어짐을 깨닫는다.
내가 30~40년 전 일까지 기억하는 것은 일기 쓰기와 관계가 깊다. 그날그날 있었던 일 중에 좋았던 일, 감동적인 일만 기록하다보니 나의 기상 예보는 ‘언제나 맑음’이다.
김미희씨는 홍천 대명콘도의 캐디를 교육시키는 강사인데 2003년 2월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출근길이 빙판이 되어 자신의 차가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고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에 누워 있었고 척추수술을 한 의사는 강원래 씨보다 더 심하게 다쳤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은 정상인으로 회복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날 발가락 하나가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였다.
“엄마 발가락이 움직였어요.” “네가 하도 원하니까 그렇게 보인거다.”
김미희씨는 휠체어로 병원 안을 움직일 정도가 되었는데 지나다가 담당의사에게 말했다.
“선생님 8월 말에 걸어서 퇴원합니다.” “축하해요.”
지나치고 생각해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어 의사를 소집하여 누가 걸어서 퇴원한다고 했느냐고 호통을 쳤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의사들과 병실에 와서 누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느냐고 확인을 했다.
“누구에게 들은게 아녜요. 제 생각을 말씀드렸어요.”
의사들은 병실을 나가면서 정신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수근거렸다. 그러나 김미희씨는 휠체어 없이 당당하게 걸어 나가는 모습을 마음속에 생생하게 입력시켰고 8월 말 걸어서 퇴원하는 기적을 보여줬다.
‘이제는 좀더 공부하여 나 자신의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연세대학교에서 김경호 교수의 이미지 메이킹 과정이 개설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수강등록을 하려고 합니다.” “댁이 어디신가요?” “홍천인데요.” “밤 10시가 돼야 끝나는데 여자의 몸으로는….”
결국 이미지 메이킹 과정을 무리없이 이수하고 자기의 프로그램과 접목을 시켰는데 기업체와 각 기관에서는 기립박수가 나올 정도로 열광한다.
한번은 나의 사무실에 와서 “MBC마라톤 5km에 출전하려고 신청했어요”라고 말했다.
100m도 힘들게 걷는 그였지만 탁월한 선택이라고 격려했다.
2005년 10월 출전. 이를 악물고 뛰어 드디어 완주. 기록은 2시간 10분.
그의 상태로 본다면 황영조 선수보다 못할 리가 없다. 마음속에 프로그램을 입력시켜 기적을 만든 것이다.
2007년 2월 저서 희망학교가 출간되었다. 아픔을 겪고 이긴 인간승리의 기록이다.
2009년 4월 자신의 척추에 박았던 쇠를 의사의 손으로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제 머지않아 정상인보다 더 활발히 움직이는 김미희씨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기업체와 각 단체에 출강한지 5년 째 접어들지만 그는 이미 명강사로 우뚝 섰다.
면접 이미지 메이킹,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교육에 마인드 컨트롤까지 그의 인간승리는 계속된다.
영원한 불구로 끝날 수도 있었던 그는 마음의 핸들을 돌려 신화의 주인공으로 변신한 것이다.
() | 화광신문 : 09/09/25 846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