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크레이지 호스를 벗어나 빗길을 달렸다. 차창의 와이퍼가 연신 빗물을 닦아내도 벅찰 정도로 비가 내렸다. 이러다 오늘의 일정을 여기서 접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싶었다. 얼마를 달리다 꼬불거리는 산길로 들어섰다. ‘니들 하이웨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87번 도로다.
이곳부터는 이차선 도로가 구불거리며 이어지고 있었다. 20여 분을 달렸을까 빗줄기가 조금씩 가늘어지고 있을 즈음 왼쪽으로 시원한 호수가 나타났다. 분명 87번 도로를 들어선 이후로는 줄곧 산길이었는데 호수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호수 위에는 물안개가 잔뜩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들은 비가 오니 돌아올 때 가보자고 했다.
‘실번 레이크’라고 한다.
나는 그곳의 어딘가에 무엇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없었으므로 아들의 말에 이의를 달 수가 없었다. 다시 길을 구불구불 따라 오르다보니 곧 길 양쪽으로 거대한 바위들이 우뚝 우뚝 솟아 있었다. 길을 오를수록 바위들은 점점 더 정교해지는 듯했다.
어떤 바위는 거의 수직을 이루고 있었다. 바위 끝부분은 오랜 풍상을 견뎌낸 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뭉툭한 모양이었다.
그런 길을 따라 얼마쯤 더 경사진 도로를 따라 오르다보니 사방이 거대한 돌로 막힌 제법 너른 공간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막다른 곳이었다. 그 마당 주변으로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곳을 둘러싼 돌은 모두가 제각각의 모습으로 장엄하게 솟아있었다. 마치 중국의 황산 같기도 하고 삼청산 같기도 하고 어떤 곳은 터키의 카파도키아가 같기도 하고, 어떤 곳은 설악산의 울산바위 같기도 하고, 또 어떤 곳은 책에서 본 금강산 같기도 했다. 이런 곳에 이런 멋진 돌산이 있다니.
내가 미국으로 올 때 자료를 통해 알아본 곳은 대부분 러시모어나 크레이지 호스 그리고 16A 도로를 달리면서 볼 수 있는 동물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니 마치 무슨 횡재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기가 막혔다.
길이 그곳에서 끝나는가 싶었더니 거대한 암석 사이로 빛이 새어 들었고 그 빛을 가로막은 물체가 서서히 앞으로 다가왔다. 거대한 암석을 뚫어서 만든 네모 모양의 터널이었고, 그 터널로 지금 막 반대편에서 자동차 한 대가 오는 중이었다.
자동차가 빠져나가자 네모난 암석 터널 뒤로 반대편의 구름 낀 하늘이 하얗게 내다보였다. 아직도 비가 부슬거렸으므로 자동차 안에서 터널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이쪽에서 자동차 한 대가 터널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저 자동차 안에서 갇혀 있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여전히 비가 부슬거리는 곳으로 나와 터널 앞으로 가보았다. 터널 옆 거대한 암석 벽면에 터널 이름이 붙어 있었다.
‘Needles eye tunnel’
그제야 어떤 자료에서 ‘Needles eye’라는 이름을 들어본 것 같았다. 그때는 16A 도로와 함께 설명이 되어 있어서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터널이겠거니 하고 지나쳐 버렸었다. 그곳이 니들스 아이 터널이라니 그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 위로 거대한 암석에 틈이 조금 나 있었고 그 틈 사이로 하늘이 내다보였다. 나름대로 그 위의 암석 틈은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아, 저곳을 보고 ‘Needles eye’라고 하는구나.”
거대한 암석과 어울려 터널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터널을 배경으로 사진 찍던 중에 마침 비가 그쳤다. 그제야 주변에 둘러선 암석들을 다시 찬찬히 둘러보았다. 전체적인 모양이 금강산이라면 뒤쪽의 암석은 카파도키아의 버섯 바위 형상이고, 앞쪽 탁 트인 공간으로 보이는 돌산은 황산이나 삼청산 같은 모습이었다. 사방을 둘러보다보니 마치 내가 신선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아들과 터널을 차로 지나가 보기로 했다. 천천히 들어서며 한손으로는 카메라 동영상을 찍었다. 마치 원초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 나오지 못할 것 같은 동화 속 이야기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 나오면서 터널 내부를 살펴보았다. 천정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조금 전까지 비가 온 때문인 모양이었다. 터널은 자연의 힘과 인간의 힘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자연의 힘이 대단한 것인지 인간의 힘이 대단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터널이 주는 분위기는 참으로 묘했다. 터널을 빠져나와 혹시 못 본 풍경이 있을까 싶어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보고 차에 올랐다. 그러자 아들이 한 마디 한다.
“다 봤어?”
“응, 실컷 봤어.”
“니들스 아이도?”
“그럼, 당연히 봤지. 그게 핵심이라며.”
그러면서 아들에게 카메라로 찍은 터널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아들이 나를 데리고 뒤쪽 암벽으로 가더니 그곳에 세원진 안내판을 가리켰다. 그곳에 니들스 아이의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내가 찍은 터널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진이었다.
“어라, 이게 뭐지? 그럼 니들스 아이는 다른 곳인가?”
그러자 아들이 손가락으로 내 머리 위쪽을 가리키며 웃었다. 머리 위에는 정말로 바늘구멍을 빼닮은 거대한 돌구멍이 올려다 보였다. 아들은 내가 차에 오를 때까지 니들스 아이를 보지 못한 것을 눈치 채고 일러준 것이다. 올려다볼수록 신기했다.
자연의 힘이란 참으로 오묘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어쩌면 오랜 옛날 사방이 기묘한 돌들로 막힌 이곳은 인디언들의 축제 장소였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만큼 아늑한 곳이었으며 외부의 눈에 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공간 같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처음 이곳을 오는 사람이라도 니들스 아이를 보면 정확히 그 장소를 알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