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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암 국내 제2지장보궁 의 연혁기(內院庵國內第二地藏寶宮의沿革記)
내원암 : 경북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500번지 내원암(054-653-1180)
소백산 지장보궁 내원암 유래
내원암(內院庵) 연혁기(沿革記)
지장보궁(地藏寶宮) 내원암(內院庵)이 자리하고 있다.
소백산 내원암
소백산 내원암 지장보살님
소백산 내원암 아미타부처님
고려태조 5년(922년) 도선국사 창건(創建)
의 길지(吉地)로 여기시고 당대(當代)의 9승지(九勝地)로 꼽고, 원각산(圓覺山) 비연봉(飛燕峰) 아래에 현세(現世)의 부처님이신 지장보살진신(地藏菩薩眞身)이 상주현신(常住現身)하는 기도도량(祈禱道場)인 내원암(內院庵)을 천상(天上)의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을 비유(比喩)하여
내원암지장보궁(內院庵地藏寶宮)으로 명칭(名稱)하여 대명(代名)하여 온 것이다.
도선국사
독성각, 산신각,종각, 큰 대중방사동 등의 10동이 있었다.
소 실 된 유 물
국보급 유물 : 범종(500관)과 법당 용마루에 청기와 2점, 법당이 내9포, 외 13포로 된 문화가치가 모두 소실(消失)된 것이다. 소 실 원 인: 북한(北韓) 군인이 이곳 소백산(小白山)으로 집중(集中) 퇴각(退却)하는 길목으로 아군(我軍)에 의해 작전상(作戰上) 방화(放火)로 모두 전소(全燒) 되었음.
1988년 봉명당 성면선사(鳳鳴堂 性面禪師)큰스님이 명봉사 주지 재직때 중창(重創)하여 현재(現在) 국내 제2지장보궁 으로서 봉명케된다.
봉명당 성면선사(鳳鳴堂 性面禪師)큰 스님
◈ 고 승 ( 高 僧 )의 호 칭 조 사 ( 祖 師 ) :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통 법맥을 이어 받은 덕이 높은 스님 선 사 ( 禪 師 ) : 선정을 수행한 스승을 가리킴. 선가(禪家)에서 스님에게 붙이는 경칭 또는 칭호로서 널리 쓰이는 말. 선종(禪宗)의 스님을 가리키는 말 [봉명당 성면선사(鳳鳴堂性面禪師) 큰스님] 종 사 ( 宗 師 ) : 한 종파의 큰 스승 법 사 ( 法 師 ) : 선과교 즉 선교양교를 통달하여 법을 설하는 큰스님. 화 상 ( 和 尙 ) : 법랍이 많고 덕이 있는 스님을 지칭함 대 사 ( 大 師 ) : 큰 스님율 사 ( 律 師 ) : 계율을 전문적으로 연구했거나 계행이 철저한 스님 사 문 ( 沙 門 ) : 인도말로 쉬라마나 즉, 출가수행자의 비구를 지칭함 대 덕 ( 大 德 ) : 행과 품행이 모범이 되는 스님을 지칭함 국 사 ( 國 師 ) : 국민(백성) 전체의 스승이 되는 스님을 지칭함 왕 사 : 왕이 스승으로 삼는 스님을 지칭함 제 사 ( 祭 師 ) : 한 나라의 의식을 집전하는 스승이 되는 스님을 지칭함
* 지장보궁(地藏寶宮)의 역사적 내력(來歷)이 증험(證驗)하는 것으로는.
1. 6, 25 사변으로 전소 됐으나, 도량 옹호성중(擁護聖衆)이 복원(復元) 될 때 까지 도량을 떠나 지아니하고 보궁터를 지켜왔다.
2. 보궁을 복원하던 중 도량에 방광(放光)이 일어났다.
3. 산중에 아무도 없었는데도 부처님께 올리는 마지공양을 올리는 목탁소리가 아래 마을까지 들렸다.
4. 소실 후 복원 될 때까지 아래 마을에서 이곳을 처다 보면 깨끗하고 밝은 빛인 서기(瑞氣)가 내원암에서 계곡을 따라 정월초하루부터 보름날 까지 비추었다고 함.
5. 공부하며 고요히 정진하는 중에 유리문과 종이문이 분명히 여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면 아무도 없는 등 신기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으로 이름 있는 지장보궁
재1 보궁 : 철원 심원사
제2 보궁 : 예천 내원암 [소백산 내원암 ]
제3 보궁 : 선운사 도솔암
소 백 산 내 원 암 관련 기 록 1.출처정통사찰관광종합정보 : 고려 태조 때 자적선사(慈寂禪師)가 내원암(內院庵)과 법화암(法華庵)이 지었다고 하며, 옛날에는 100여 명의 수도승이 기거할 정도로 큰 절이었다고 한다. 이 후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빈터만 남았는데 현대에 들어와 내원암만 새로 복원하였다
2. 출처 달마넷 : http://www.dharmanet.net/library/scripture/board.asp 절의 창건은 신라 말 875년(헌강왕 1) 두운(杜雲) 선사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역사는 전하는 것이 없으며, 그 뒤 1662년(현종 3)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여러 스님들이 힘을 모아서 중건했다. 1668년에 다시 절이 전소되어 신익(信益)․행선(幸善) 스님 등이 시주를 얻어서 크게 중창하였다. 이후 1807년(순조 7)에도 한 차례 중수가 있었으나,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어 버렸다. 그 뒤 1955년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출처 네이버검색(두산백과사전)http://100.naver.com/100.nhn?docid=741060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신라 말 875년(헌강왕 1)에 두운(杜雲)이 창건하였으며, 그뒤 화재로 소실된 절을 신익(信益)·행선(幸善) 등의 승려들이 중수하였다. 6·25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었다가 1955년 주지 만준(滿俊)이 중건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대웅전과 요사채, 선실, 삼성각 등의 당우가 있고, 대웅전에는 6·25전쟁 때 유일하게 소실되지 않은 대세지보살상(大勢至菩薩像)이 봉안되어 있다. 부속 암자로는 고려 태조 때 자적선사(慈寂禪師)가 지은 내원암(內院庵) 이 있다. 이 암자도 6·25전쟁으로 소실되었으나 1988년 명봉사 주지 성면선사 큰스님이 재직시 재건한 것이다.
은법상좌 : 윤고암 대종사 큰스님
위 은사이신 윤고암 대종사 큰스님께서는 조계종의 종정직을 3대,4대,6대에 추대되어
거듭 3번이나 종정직을 역임하신 분이며
봉명당 성면선사는 윤고암 대종사의 은법상좌가 내원암 주지 큰스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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