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구락지가 태어나다.
1949. 10.20.
음력으로 10월 20일이니 양력으로는 12월 9일이 된다.
어머니는 열달동안 뱃속에서 품고있던 5번째 자식을 낳았다. 어머니는 먹고 살기 어려운 때라 영양이 부족하니 태어난 아기도 덩치가 작은것이 당연하리라. 낳아 놓고 보니 깨구락지만 했다고 말했었다.
그 당시에는 산모나 애기나 영양상태가 부족하고 환경도 취약해서 태어나서 1-2년 이내에 죽는 경우가 많았다. 피임은 할줄도 몰랐고 자연 출산으로 보통 자식은 10명 정도 낳아서 잘 하면 7명 정도가 성장하게 된다.
둘째 아들로 태어난 내 이름은 천만이라 불었다. 그러나 출생신고에는 효(孝)자 돌림을 붙여 효선으로 신고하여 학교에서는 효선이라 하고 집에서나 동네에서는 천만이라고 불렀다.
나 까지 어릴때 부르던 이름들이 호적과 다른 백환 백선 백만 천만으로 불렀왔고 그 뒤로는 돌림으로 붙였다.
천만이는 조막만하게 태어나서 여러번 까무라치며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 남았다고 한다.
어느정도 살아날것 같으니까 1년 훨씬지나 출생신고를 하게 됐는것 같다.
천만이는 어릴적 농사일에 바쁘신 어머니보다 시각이 희미한 할머니와 누나들의 보살핌으로 자랐던것 같다.
호적이 늦어 9살이 되는 57년 3월에 국민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나는 학교 들어가기 전 8살때부터 아버지가 나에게 맞는 지게를 만들어 줘서 나무하려 따라 다니기도 하고 집안일도 돕기 시작했다.
학교에 다닐때는 오후에 나무를 해오고 밭일을 거들었으며 감자, 무우, 나락 들도 지고 나르며 겨울에는 사랑방에 군불을 때는것은 도맡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