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수 없는 나라
윤희상
자고 일어나 방 문을 열면 감나무 밑이 환했다 아침마다
누나와 함께 떨어진 감꽃을 주웠다 꽃밭에서
피는 꽃마다 하늘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꽃이 지면
들고 있던 하늘도 무너졌다 아버지의 양복 호주머니에서
돈을 훔쳤다 훔친 돈을 담장 기왓장 아래
숨겼다 앵두나무 그늘이 좋았다 둥근 그늘 밑으로
들어가 돗자리를 깔았다 해질 무렵, 어머니가
이름을 부르며 찾았다 대답하지 않았다 뒷뜰에서
죽은 것처럼 누워 있었다 비가 오면, 마당의
백일홍 나무는 비가 오는 쪽만 젖었다
(토풍시 사화집 『다시, 화양연화』에서, 2023)
*윤희상 시인은/
1961년 영산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남 나주시 영산포 조선시대 제민창 터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1학년 봄에 전남학생시조협회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고등학교 3학년 졸업 때까지 활동했다.
광주동신고등학교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9년 『세계의 문학』에 「무거운 새의 발자국」 외 2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줄곧 편집자로, 편집회사 대표로 오래 일했다.
시집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소를 웃긴 꽃』, 『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 머물고 싶다 아니, 사라지고 싶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