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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개의 은유
이어령
■어머니와 책
나의 서재에는 수천, 수 만권의 책이 꽂혀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나에게 있어 진짜 책은 딱 한 권이다. 이 한 권의 책, 원형의 책, 영원히 다 읽지 못하는 책, 그것은 나의 어머니다. 그것은 비유로서의 책이 아니다. 실제로 활자가 찍히고 손에 들어 펴볼 수도 있고 읽고 나면 책꽂이에 꽂아둘 수도 있는 그런 책이다.
나는 글자를 알기도 전에 책을 먼저 알았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잠 들기 전 늘 머리맡에서 책을 읽고 계셨고 어떤 책들은 소리 내어 읽어주시기도 했다. 특히 감기에 걸려 신열이 높아지는 그런 시간에 어머니는 소설책을 읽어 주신다. 나는 아련한 한약 냄새 속에서 <암굴왕>, <무쇠탈>, <흑두건>, 그리고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겨울에는 지붕 위를 자나가는 밤바람 소리를 들으며, 여름에는 장맛비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머니의 하얀 손과 하얀 책의 세계를 방문한다. 어머니와 책의 세계는 꼭 의사가 주사를 놓고 버리고 간 상자와 같은 것이었다. 주삿바늘은 늘 나를 두렵게 했지만 그 주사약의 샘플을 담았던 상자 속의 반짝이는 은지나 흰 종이솜은 포근하고 아름다웠다.
39도의 높은 신열 속으로 용해해 들어가는 신비한 표음문자들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상상력의 깊은 동굴 속에서 울려오는 신비한 모음의 울림소리를 듣는다.
조금 자라서 글자를 익히고 스스로 책을 읽게 되고 몽당연필로 무엇인가 쓰기 시작한 뒤에도, 나에게는 언제나 어머니의 손에 들려 있던 책 한 권이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담긴 근원적인 그 책 한 권은 지금도 나를 따라 다닌다. 그 환상의 책은 60년 동안에 수천수만의 책이 되었고, 그 목소리는 나에게 수십 권의 글을 쓰게 하였다.
빈약할망정 내가 매일 퍼내 쓸 수 있는 상상력의 우물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내가 자음과 모음을 갈라내 그 무게와 빛을 식별할 줄 아는 언어의 저울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어머니의 목소리로서의 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머니는 내 환상의 도서관이었으며 최초의 시요, 드라마였으며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 책이었다.
■어머니와 나들이
어머니는 최초의 외출, 집을 떠나고 마을을 떠나고 그리고 고향을 떠나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 집으로 돌아오고 마을로 돌아오고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법도 가르쳐주셨다.
그것은 우리말 가운데 가장 미묘하고 아름다운 ‘나들이’다. 나들이는 나가면서 동시에 들어오는 모순을 함께 싸버린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어머니는 나의 작은 손을 잡는다. 그리고 보리밭 사잇길과 산모퉁이, 마차 길, 신작로, 이렇게 작은 길에서 점점 넓어지는 길로 나는 어머니를 따라서 나들이를 한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사온 작은 가죽 구두를 신고 흙을 밟으면 이상한 소리가 난다. 그것은 새 가죽이 구겨지는 구두 소리가 아니라 눈부신 이공간(異空簡) 속으로 들어가는 내 작은 심장의 고동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길가에 있는 뱁풀을 처음 본 것도, 땅개비가 뛰는 것도, 하늘에 높이 떠서 원을 그리는 솔개도 모두 어머니의 등 너머로 본 풍경들이다. 나들이하실 때의 어머니의 몸에서는 레몬, 파파야나 박하분 냄새가 났다.
이 나들이의 절정은 십 리쯤 떨어진 외갓집을 찾아갈 때다. 그곳으로 가려면 장승이 서 있는 서낭당 고개를 넘어야 한다.(여기가 바로 나의 엣세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의 마지막 장에서 나오는 바로 그 서낭당 고개다.)
설화산 뒤편의 이 작은 분지에는 유난히 대추나무와 감나무가 많았고 그 나무가 우거진 곳에 외가가 있었다. 긴 돌담을 돌아 솟을대문과 십장생도가 그려진 어머니의 장롱 속 같은 안채로 들어가면 정말 믿기지 않도록 늙으신 외할머니께서 살고 계셨다.
미숫가루라도 외가에서 먹는 것은 집의 것과는 다른 맛 난다. 사랑채로 가는 일각 대문 너머로는 인기척이 없는 남새밭이 있었고 한구석에는 양 모양을 조각한 이상한 석물들이 모여 있었다. 벽장 그림이나 벽지의 무늬도 다 달랐다.
어머니가 원주 원씨고 외할머니는 덕수 이씨라는 것, 어머니의 어머니가 외할머니라는 것, 그리고 여자들의 성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이 나들이에서 배운 것들이다.
외갓집은 공간만이 아니라 그 시간도 달랐다. 벽시계는 모양도, 시간마다 치는 종소리도 우리 집 시계와는 달랐다. 종소리는 깊은 우물 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소리를 냈고, 문자판 에는 알 수 없는 글자들과 십이간지의 동물들이 그려져 있었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이 외갓집은 기왓골의 이끼처럼 훨씬 오래된 시간으로, 이곳에 오면 어머니는 나처럼 작은 신발을 신은 아이가 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떠날 때가 되면 어머니와 할머니는 서로 우신다. 외할머니는 긴 돌담을 돌아 우리가 서낭당 고개를 넘어갈 때까지 서 계시고 뒤돌아보기만 하면 빨리 가라고 손짓을 하신다.
늦은 날에는 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별들이 나오고, 이 나들이로 나의 장단지에는 조금 알이 배고ㅡ 키는 한 치가 더 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떠나는 것과 돌아오는 것, 만남과 헤어짐. . . 번쩍이는 비늘을 세우고 먼 이국의 바다로 헤엄쳐 나갔다가 다시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연어 떼처럼, 어머니는 나에게 떠나는 법과 돌아오는 법을 가르쳐주신다.
이제는 돌담도 다 무너지고 감나무도 잘리고 없는 빈 마당뿐인 외갓집인데도, 가죽 소리가나는 작은 구두를 신고 나는 어머니를 따라 이따금 외갓집 나들이를 한다.
■어머니와 뒤주
바깥 하늘이 눈부시게 개일 때일수록 대처마루는 어둡다. 그 그늘진 곳에 게목나무의 묵직한 뒤주가 있고, 그 위에는 모란꽃 무늬를 그린 청자백자 같은 것이 놓여 있다. 나보다 키가 커서 그 뒤주 속을 들여다보려면 까치발을 떼야만 한다. 네 기둥과 두꺼운 나무판자로 짜여진 뒤주 모양은 어머니가 안방에 앉아 계신 것처럼 늘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
끼니때가 되면 이 뒤주에서 ‘수복강령’이라고 손수 붓글씨로 쓰신 복 바가지로 어머니는 하얀 쌀을 퍼내신다. 대식구가 먹어야 하는 그 양식은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화수분 단지처럼 그 뒤주 속에서 어머니의 바가지 속으로 넘쳐 나온다. 많을 때에는 족히 30여명이 넘는 식솔을 거느리시는 어머니는 이 뒤주처럼 묵직하고 당당하시다.
그러나 어머니는 밖에 나가실 때마다 끼니때가 아닌데도 꼭 뒤주 문을 여신다. 그리고는 엎드려서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신다. 왜 그러시는지를 몰라 하루는 어머니께 여쭈어보았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살 위에 글씨를 써놓으면 남들이 양식을 퍼내 갈 수가 없게 된단다. 글씨 자국이 지워질 테니 말이다. 양식이 아쉬운 사람이 있으면 그냥 도와주어야지 훔쳐 가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양식이 아까워서가 아니란다. 뒤주를 자물쇠로 잠그면 남을 의심하는 것이니 그들이 상처를 받게 되고, 그렇다고 그냥 놔두고 집을 비우면 나쁜 짓을 할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도 나쁜 짓을 하게 되는 거지. 쌀을 퍼 간 사람보다 그런 틈을 준 사람이 더 죄를 짓는 거란다.”
어머니는 어렵게 사는 사람과 불쌍한 사람을 늘 돕고 후한 덕을 베풀어주시는 분으로 소문이 나신 분이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뒤주처럼 대청 한복판에 떡 버티고 앉아 집안을 지키신다. 어머니는 어두운 대청마루에 신전처럼 자리하고 있는 뒤주다.
■어머니와 금계랍
나는 막내였다. 늦게까지 어머니의 품에서 떠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계랍을 바르셨다고 한다. 금계랍은 하루거리(학질)에 먹는 키니네다. 그 맛이 얼마나 쓴 것인지 나는 잘 안다.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몸으로부터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의식(儀式)이기도 하다. 그것이 나에게는 금계랍의 맛일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으로부터 우리는 그 아픔을 겪어야 한다. 모태로부터 태어나는 순간 어머니와 연결된 그 탯줄을 끊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어머니의 가슴에서 떨어져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 금계랍의 맛을 맛보게 한다.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은 이런 고통을 자진해서 받아들인다는데 있다. 두 살 터울인 윗 형과 나는 많이 싸웠었다. 어머니는 어느 날 우리가 몹시 싸우는 것을 보고 끝내 회초리를 드셨다. 처음으로 호된 매를 맞게 된 것이다. 우리 형제는 묵묵히 그 자리에 서서 매를 맞고 있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때리다 말고 이렇게 소리치셨다.
“ 이 바보들아. 너희들은 남의 애들처럼, 그래, 도망칠 줄도 모르니.”
이 말에 용기를 얻어 바깥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어머니는 우리를 매질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도망치기를 속으로 원하셨던 것이다. 내가 금계랍의 쓴맛을 빨고 있을 때, 어머니는 그보다 몇 배나 더 쓴 맛을 맛보고 계셨던 것이다. 어머니의 금계랍 맛은 어떤 꿀보다도 달다.
■ 어머니의 귤
수술을 받기 위해서 어머니는 서울로 가셨다. 이른바 대동아 전쟁이 한창 고비였던 때라 마취제도 변변히 없는 가운데 수술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런 경황에서도 어머니는 나에게 예쁜 필통과 귤을 보내주셨다.
필통은 입원 전에 손수 사신 것이지만, 귤은 병문안 온 손님들이 어렵게 구해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귀한 것이라고 머리맡에 놓고 보시다가 끝내 잡숫지를 않으시고 나에게 보내 주신 것이다.
그 노란 귤과 거의 함께 어머니는 하얀 상자 속의 유골로 돌아오셨다. 물론 그 귤은 어머니도 나도 누구도 먹을 수 없는 열매였다. 그것은 먹는 열매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태양이었고 그리움의 달이었다. 그 향기로운 몇 알의 귤은 어머니와 함께 묻혀졌다.
서울로 떠나시던 마지막 날, 어머니는 나보고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셨다. 열 한 살이었으니까 이젠 어머니의 다리를 주무를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성장한 것이다. 정말 다리가 아프셔서 그러셨는지, 혹은 막내라고 늘 걸려 하셨는데 그만큼 자란 것을 확인하고 싶으셔서 그러셨는지, 혹은 내 손을 가까이 느끼시며 마지막 작별을 하려고 하신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셨다.
왜 그랬던가. 나는 숙제를 해야 한다고 꾀를 부리고는 제대로 다리를 주물러 드리지 않았다.어머니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나는 어머니의 신병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것이다. 그것이 정말 마지막인지 몰랐던 것이다.
나는 더러 산소에 갈 때 귤을 산다. 홍동백서에는 지정되어 있지 않은 색갈이지만 제상에다가 귤을 고인다. 그리고 귤을 살 때마다 나는 귤 값이 너무나 싼 것에 대해서 절망을 한다. 분노를 한다. 어머니가 머리맡에 놓고 가신 그 귤은 지폐 몇 장으로 살 수 있는 그런 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이제 어디에 가 그 귤을 구할 것이며, 내 이제 어디에 가 어머니의 다리를 주물러드릴 수 있을까?
■어머니와 바다
나는 열한 살에 어머니를 잃을 때까지 바다를 본 적이 없다. 그림책이나 사진에서 본 바다 말고는 하얀 모래밭, 소금기 있는 해풍, 해안의 바위와 파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한히 퍼진 수평선을 몸으로 체험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분명히 나의 어린 시절에도 그 바다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다.
한자의 바다 해(海)에는 어머니의 모(母)자가 들어 있다. 그리고 바다를 가리키는 불란서의 ‘메르’는 어머니를 뜻하는 ‘메르’와 똑같다(mer와 mere 차이밖에 없다). 그래서 불란서에는 어머니 속에 바다가 있고, 중국에는 바닷 속에 어머니가 있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바다는 넓고 깊다.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과 은혜는 바다와 같다. 그리고 인류의 생명은 바다에서 탄생했다. 바다는 생명의 시원이며 최초의 인류를 잉태한 양수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생명의 발원이 된 모태는 태초의 바다인 것이다. 그러나 그만한 이유로, 그리고 그러한 관념적인 풀이로 내가 바다를 보기 전에 이미 바다를 보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어머니와 바다의 동질성은 보다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다.
바다는 늘 나에게 살아 있는 죽음으로 다가온다. 바다는 살아 있는 어떤 것보다 생명력에 가득 차 있다. 어떤 짐승이 저렇게 강렬하게 숨 쉴 수 있고, 소리칠 수 있고, 쉴 쌔 없이 생동할 수 있겠는가. 어떤 풀, 어떤 나무가 저렇게 늘 푸른빛으로 번지고 뻗쳐서 이 지상을 덮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바다의 생명체는 가상현실일 뿐 실제로 살아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다의 표면은 끝없이 변화하지만 결코 살아 있는 꽃처럼 꺾을 수는 없다.
파도는 말보다 힘차게 뛰지만, 그리고 그 부력으로 우리를 잔등이에 태울 수도 있지만, 그 푸른 말갈기를 손으로 잡을 수는 없다. 슬프게도 바다에는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원하면서도 공허한 그 바다는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살아 있는 것 같으면서도 죽어 있는 것. 꽉 차 있으면서 텅 비어 있는 것. 이것이 바다의 역설이다.
돌아가신 어머니, 그러나 늘 내 눈앞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시는 어머니, 살아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가깝게 계신 어머니, 기쁠 때 제일 먼저 달려가 자랑하는 어머니, 슬플 때, 고통스러울 때 아직도 응석을 부릴 수 있는 어머니, 그러나 언제나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딱딱한 흙의 저편 밖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어머니, 이 ‘현존하는 거대한 부재’. 그 바다가 바로 나에게 있어서의 어머니다.
나는 오늘도 이 갈증의 바다 앞에 서 있다.
출처 : <아름다운 우리 수필> 문예출판사 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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