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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우라명상원(Aura Meditation Center) 원문보기 글쓴이: 광규
단군의 치세
<단기고사> 제2세 단군 부루-재위 58년
임금께서 태자였을 때에 중화의 우(禹)와 더불어 친하다가, 임금께서 보위에 오르니, 우도 순의 자리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그 때에 홍수가 9년동안 천하에 범람하여 중화는 우가 치수하는데 곤란을 겪고, 조선은 팽오에게 치수를 맡겨 치수가 완료되니, 우가 도산회의를 각 나라에 요청하였다. 임금께서 팽오를 특명대사로 삼아 우에게 보내어 치수하는 법을 설명하셨다.
......
38년 나염연이 아뢰기를 "신이 지난 해에 남염땅에 건너가서 범경빈을 만나 말을 들으니, 이쪽은 고해(苦海) 저쪽은 극락(極樂)인데, 고해에서 극락에 가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업흑계를 해탈한 후에야 거기에 이를 수 있다 하며, 이런 도를 알지 못하면 공연히 어지러운 생각과 망상이 일어난다 합니다. ...... 태어나고 늙고 병에 걸려 죽는 사고를 해탈하면, 이것이 더없는 올바른 깨달음이라 하였습니다. 제가 가만히 거듭 생각해 보니 이것은 진실한 공부인데, 마음이 곁길로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 원하옵기는, 폐하께서 사자를 남염지에 보내시어 그 도덕과 정치를 사찰하고 와서, 나쁜 점은 버리고 좋은 점은 본받아 백성을 다스리는 데 시행한다면, 나라가 문명하고 진보하는 데 좋은 길이 될까 합니다."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사람의 도에 있어서 진리는 하나이며, 두 점 간의 직선도 하나이다. 그 나라와 민족은 서로 달라도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바른 도리는 하나이다. 내가 일찌기 선제에게 지켜야될 바를 물으니, 유정(惟精)하고 유일(惟一)하여 그 중추(中樞)를 잡아야 하는 것은 바른 것(正)을 잃(失)지 않는 것이라 하셨는데, 하필이면 다른 나라의 도덕과 정치를 빌리겠는가. 새와 짐승은 땅에 살고 고기는 물에서 사는 것이니, 물고기를 육지로 옮겨 놓으면 오래 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나라가 다른 나라를 본받고자 하면 반드시 나라가 오래가지 못하리라." 하시니, 모든 신하들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단군세기> 제3세 단군 가륵-재위 45년
..... 경자 2년(B.C. 2181년), 아직 풍속이 하나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참글이 있다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 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이 서로 이해키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라 하니 그 글은 다음과 같았다.
<단기고사> 제5세단군 구을-16년간 재위
15년에 감성관 황포덕이 임금께 아뢰기를 "제가 천문을 관측한 지 50년이 되므로 천체의 대강을 추측하였습니다. 천체 중에 제일 큰 것은 북극성 같은 항성입니다. 그 다음은 태양의 종류이며, 다음은 수성, 금성...같은 행성이 있어 태양을 중추로 삼아 회전하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역시 태양계의 하나인 행성입니다..... 지구의 외곽에는 붉은 막이 포위하고 있어, 지면의 각종 기체를 보전함으로써.... 태양의 뜨거운 빛을 받아 바람과 구름도 되고 우박도 되고.. 사계절이 달라집니다. ...사람이 자연의 이치를 헤아리지 못하면 음양을 따라 사시를 쫓지 못할 것입니다. ..... 그러니 먼저 역법을 정하시어 우리나라 기후에 맞도록 하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인 줄로 압니다."하였다.
임금께서 그렇다 하시고 국력(國曆)을 새로 만드니, 이것이 조선 역서(曆書)의 시작이다.
<단기고사> 제9세단군 아술-35년간 재위
6년 봄에 을성문덕이 아뢰기를 "국가는 모든 백성의 국가이며, 임금 한 분의 사유가 아니므로 임금과 신하가 합의하여 국사를 정하는 것입니다. 매년 부와 군의 대표가 의사원에 모여 국사를 의논하여 결정한 후에, 천제의 허락을 얻어 정부 책임자로 하여금 실행하게 하면 임금과 백성이 합의하는 정치가 되는 것이니, 바라옵기는 회기를 정하시어 백성에게 참정권을 허락하옵소서."하였다.
임금께서 허락하시고 매년 8월 1일을 정기회의 날짜로 삼으니, 민권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단기고사> 제10세단군 노을-58년간 재위
이아한이 아뢰기를 "임금께서 부리지 않는 신하가 있어야 하니, 의논하고자 하시면 친히 찾아 물으시어 의문을 풀어야 합니다. 바라옵기는, 폐하께서 마땅히 설치하시옵소서." 하였다.
임금께서 그 말을 따라 자문기관을 만들었다.
5년에 각도의 고을에 신원함(伸寃函)을 설치하여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으로 하여금 이 함에 신원서를 넣어 억울함을 풀게 하였다.
<단기고사> 제15세단군 벌음-51년간 재위
29년에 임금께서 심양태수(瀋陽太守)를 불러 이르시기를 "경이 심양을 지키면서부터 오늘까지 헐뜯는 말이 끊이지 않으나 내가 사람을 시켜 심양을 살피니, 밭과 들이 크게 개발 되었으며, 백성은 잘 살고 소와 말이 많이 번식되었으니, 이것은 경이 내 좌우 신하에게 아첨하지 않은 까닭이라." 하시고 벼슬을 높이고 상을 주셨다.
청해(靑海)태수를 불러 이르시기를 "경이 청해를 지키면서 오늘까지 칭찬의 소리가 끊이지 않으나 내가 사람을 보내어 청해를 살펴보니, 밭과 들이 황폐해지고 백성은 가난하여 가축이 번식하지 않으니, 이것은 경이 내 주위 사람들에게 아첨하여 자랑했기 때문이라. 겉모양만 내는 사람은 세상이 다 미워하는데 하물며 군주된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내가 이미 경의 재능을 알았으니, 경이 일부러 한 일이 아니며 또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니, 다시 청해에 가서 백성을 선하게 다스리라." 하시고 청해로 보내셨다.
창해(滄海)태수를 불러 "경이 창해를 지키면서 오늘까지 칭찬도 헐뜯는 말도 없으니, 관원된 도리는 임금에 충성하고 백성을 잘 다스리는 데 있으니, 책임을 잊고 벼슬자리를 빼앗아 녹을 탐하는 자는 신하가 할 일이 아니다. 경은 명심하라." 하시고 창해로 보내니, 이때부터 모든 관직에 거짓 자리를 차지하고 먹고 사는 자가 없었다.
<단기고사> 제16세단군 위나-58년간 재위
45년에 풍년이 들었다. 임금께서 세우신 기왕(杞王)과 모든 제후들이 다 임금께 왔다. 제후들을 보시고 묻기를 "너희들이 다스리는 나라의 민생형편은 어떠한가." 하시니, 제후들이 한결같이 대답하기를 "집집마다 잘 살고 있어 별다른 우려가 없고, 다만 하늘이 기울까 하여 우려할 따름입니다." 하니, 임금께서 웃으셨다. 후에 사람들이 우려할 것 없는 일을 가리켜 기우(杞憂)라 하였다.
<단기고사> 제19세 단군 종년(구모소)-55년간 재위
첫 해에 맏아들 고흘을 태자로 삼고, 아우 종선을 청아왕으로 삼으니, 청아왕의 증손은 서여인데, 이 분이 조선기자(朝鮮奇子)의 태조(太祖)가 된다.
3년에 국문서당을 세워 백성들에게 학습하게 하였다.
10년에 패엽전을 만들었다.
16년에 공창을 세워 닥나무껍질로 종이를 만들고 칡껍질로 베를 짜 옷감을 만들었다.
45년에 황운갑이 지남차와 목행마를 발명하니 임금께서 후하게 상을 내리셨다.
51년에 목아득이 우주원리론을 저술하였다.
54년에 지이숙이 태양력과 팔쾌상중론을 저술하였다.
<단기고사> 제 23세 단군 아홀-재위 76년
55년에 임금께서 영고탑을 친히 시찰하시고 정전법(井田法)을 가르치셨다.
<단군세기> 제 30세 단군 내휴-재위 35년
청구의 다스림을 둘러보시고 돌에 치우천왕의 공덕을 새겼다. 서쪽으로 엄독골에 이르러 제후국의 여러 한(汗)들과 만난 후 병사들을 사열하고는 하늘에 제사지내고 주나라 사람과도 수교를 맺었다.
5년에 흉노가 공물을 바쳤다.
28년에 주태보가 신주역서(新周易書) 13권을 임금께 바쳤다. 그 편집내용은 태양태음설(太陽太陰說)과 현공설(懸空說)과 복서(卜書)와 천문설(天文說)과 지수설(地水說)이다. 임금께서 훑어보시고 불쾌하여 이르시기를 "후세에 이글로써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자가 있으리라." 하셨다.(단기고사)
<단기고사> 제33세 단군 감물-재위 24년
4년에 황선문이 유황발사총을 만들었다.
<단기고사> 제36세 단군 매륵-재위 58년
25년에 오경박사 우문충이 토지를 측량하고 지도를 만들며 유성설(遊星說)을 저술하여 바쳤다.
30년에 우세숙이 성리학(性理學)과 심리학(心理學)을 지어 임금께 바쳤다.
52년에 단제께서 병력을 보내 수유의 군대와 함께 연나라를 정벌케 하였다. 이에 연나라 사람이 제나라에 위금함을 알리자 제나라 사람들이 크게 일어나 고죽에 쳐들어 왔는데 우리의 복병에 걸려서 싸워 보았지만 이기지 못하고 화해를 구걸하고는 물러갔다(단군세기)
55년에 손숙문이 의학(醫學)과 화학(化學)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단군세기> 제 47세 단군 고열가-재위 58년
58년에 단제께서는 어질고 순하기만 하고 결단력이 없었으니, 명령을 내려도 시행되지 않는 일이 많았고 여러 장수들은 용맹만을 믿고 쉽사리 난리를 피웠기 때문에 나라의 살림은 시행되지 않고 백성의 사기는 날로 떨어졌다. 3월, 하늘에 제사하던 날 저녁에 마침내 오가들과 의논하여 가로대,
[옛 우리 선조 열성들께서는 나라를 여시고 대통을 이어가실 때에는 그 덕이 넓고 멀리까지 미쳤으며, 오랜 세월동안 잘 다스려졌거늘 이제 왕도는 쇠미하고 여러 왕들이 힘을 다투고 있도다. 짐은 덕 없고 겁 많아 능히 다스리지 못하니 어진 이를 불러서 무마시킬 방책도 없고 백성들도 흩어지니, 생각컨대 그대들 오가는 어질고 좋은 사람을 찾아 추대하도록 하라]
고 하시고 크게 옥문을 열어 사형수 이하의 모든 죄수들을 돌려 보내도록 하였다. 이튿날 마침내 왕위를 버리시고 입산수도 하시어 신선이 되시니, 이에 오가가 나라 일을 함께 다스리기를 6년이나 계속하였다.
이보다 앞서 종실의 대해모수는 몰래 수유와 약속하고 옛 서울 백악산을 습격하여 점령하고는 천왕랑이라 칭했다. 수유의 제후 기비를 권하여 번조선 왕으로 삼고, 나아가 상하의 운장을 지키게 하였다. 대저 북부여의 일어남이 이에서 시작되니 고구려는 곧 해모수의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에 역시 고구려라 칭하는 바라.
58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대를 이을 후사가 없으므로 종친 해모수가 옛 도읍지 부여에서 반기를 들어 나라를 세우니, 북부여라 하였다.
후단제는 이것으로 대가 끊기니, 전단조 1222년, 후단조875년 모두 2096년이다.(단기고사)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대변경 大辯經>에서 말한다. 단군 구물은 국호를 바꿔 대부여라고 하고 수도를 장당경으로 바꾸었다. 지금의 개원이며 역시 평양이라고도 한다. 삼조선의 칭호는 단군 색불루에게서 시작된다. 그렇더라도 아직 완전하지 못하더니 이에 이르러 갖추었다. 삼한이란 분조관경의 뜻이 있으니, 삼조선이란 분권관경의 제도가 있다는 말이다. 먼저 큰 가르침은 매우 복잡하였으니 사람들이 능히 행하지 못하였고 연나라의 침입이래 전화가 여러차례 있어 왔다. 해를 거듭하여도 일은 잘 풀리지 않으니 치화를 잃고 국력은 날로 약해져 갔다. 어느날 단제께서는 꿈에 천제의 가르침을 얻으셨다. 이에 다스림을 크게 바꾸려고 했다. 천제의 묘 마당에 큰 나무를 세우고 북을 매어 달도록 하고 3ㆍ7을 기한으로 하여 연령순으로 서로 마시면서 권화하여 성책하였다. 이를 구서의 모임이라 하고 항상 구서의 글을 사용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