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인물한국사의 논문 <허준>에 기록된 유의태 모습
이제부터 1965년 노정우가
인물한국사에 발표한 논문 <허준>에서
허준의 스승 유의태와 허준을
어떻게 기술하였는지 그 내용을 알아 보겠습니다.
“그(허준)의 생애에 대한 뚜렷한 기록이 적어 이를
다방면으로 장시간을 두고 고증(考證) 답사한 결과,
그는 지금의 김포군 양촌면 공암리 능곡동(金浦郡
陽村面 孔岩里 陵谷洞)에서 고고의 소리를 내었고,
자라기는 경남 산청군(慶南 山淸郡)에서 였다고 믿어진다.”
“그의 선대(先代)는 거의 대대로 중선(中鮮)지방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활동하였으나,
허준의 할아버지가
경상도우수사(慶尙道右水使)를 오래 역임했고,
그 할머니가 진주(晋州) 출신의 유(柳)씨인 점으로 미루어
그의 어렸을 때의 생장은 역시 경상도 산청이라고 생각된다.”
“더욱이 당시로부터 근세까지도 허ㆍ유 양씨가
그 지방의 쌍벽인 대성(大姓)이었던 사실과
그 당시 산청지방에 유의태(柳義泰)라는 신의(神醫)가 있었는데,
그는 학식과 의술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인품이 호탕하고,
기인(奇人)으로서 많은 일화와 전설을 남기고 있는데,
이 유의태가 바로 허준의 의학적인 재질과 지식을 키워 준
스승이었다는 것이 여러 각도로 미루어 보아
부합되는 점이 있어 수긍이 간다.”
“이 유의태는 의술이 고명하고, 박학다재일 뿐만 아니라,
당시의 외척전횡(外戚專橫)의 정치와 양반계급의
횡포와 노략질 등 부패한 세태에 대한
매도(罵倒)와 의분으로 날을 보냈었다.
그는 풍자와 정론(正論)으로
사회를 통박하고,
늘 헤어진 옷과 세립(細粒)을 쓰고
산천을 유랑하며,
자유분방한 멋으로 생을 즐겼으므로,
당시 경상도 일대의 뜻있는 인사들 사이에
흠모의 대상이 되었었다.”
노정우 박사는 논문에서
“허준의 성장지를 산청이고,
스승이 유의태(柳義泰)이다.”라고
말하지 않았고
“허준의 성장지를 산청(山淸)이라고 생각된다.”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이었다는 것이
여러 각도로 미루어 보아
부합되는 점이 있어 수긍이 간다.”라고 발표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노정우가 허준 조모 친정의 족보를 읽고
조모의 친정 조부와 부친, 오라버니, 조카의 묘소를 답사했다면
허준 조모 친정이 산청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의태를 허준의 스승이라고
논문에 발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노정우 박사가 확정하지도 않았고, 고증하지도 않은 유의태는
소설가 이은성에 의하여 드라마와 소설에서
허준의 스승이 되고, 허준이 산청에 와서 성장하고,
유의태로부터 의학을 배운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노정우의 고증하지 않고 발표한 논문으로 인하여
유의태가 산청의 인물, 허준의 스승, 실존 인물이 되는
역사 왜곡의 출발점입니다.
이제부터 1965년 노정우가 인물한국사에 발표한 논문 <허준>에서
허준의 스승 유의태와 허준을
어떻게 기술하였는지 그 내용을 알아 보겠습니다.
“그(허준)의 생애에 대한 뚜렷한 기록이 적어 이를
다방면으로 장시간을 두고 고증(考證) 답사한 결과,
그는 지금의 김포군 양촌면 공암리 능곡동(金浦郡
陽村面 孔岩里 陵谷洞)에서 고고의 소리를 내었고,
자라기는 경남 산청군(慶南 山淸郡)에서 였다고 믿어진다.”
“그의 선대(先代)는 거의 대대로 중선(中鮮)지방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활동하였으나,
허준의 할아버지가
경상도우수사(慶尙道右水使)를 오래 역임했고,
그 할머니가 진주(晋州) 출신의 유(柳)씨인 점으로 미루어
그의 어렸을 때의 생장은 역시 경상도 산청이라고 생각된다.”
“더욱이 당시로부터 근세까지도 허ㆍ유 양씨가
그 지방의 쌍벽인 대성(大姓)이었던 사실과
그 당시 산청지방에 유의태(柳義泰)라는 신의(神醫)가 있었는데,
그는 학식과 의술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인품이 호탕하고,
기인(奇人)으로서 많은 일화와 전설을 남기고 있는데,
이 유의태가 바로 허준의 의학적인 재질과 지식을 키워 준
스승이었다는 것이 여러 각도로 미루어 보아
부합되는 점이 있어 수긍이 간다.”
“이 유의태는 의술이 고명하고, 박학다재일 뿐만 아니라,
당시의 외척전횡(外戚專橫)의 정치와 양반계급의
횡포와 노략질 등 부패한 세태에 대한
매도(罵倒)와 의분으로 날을 보냈었다.
그는 풍자와 정론(正論)으로
사회를 통박하고,
늘 헤어진 옷과 세립(細粒)을 쓰고
산천을 유랑하며,
자유분방한 멋으로 생을 즐겼으므로,
당시 경상도 일대의 뜻있는 인사들 사이에
흠모의 대상이 되었었다.”
노정우 박사는 논문에서
“허준의 성장지를 산청이고,
스승이 유의태(柳義泰)이다.”라고
말하지 않았고
“허준의 성장지를 산청(山淸)이라고 생각된다.”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이었다는 것이
여러 각도로 미루어 보아
부합되는 점이 있어 수긍이 간다.”라고 발표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노정우가 허준 조모 친정의 족보를 읽고
조모의 친정 조부와 부친, 오라버니, 조카의 묘소를 답사했다면
허준 조모 친정이 산청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의태를 허준의 스승이라고
논문에 발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노정우 박사가 확정하지도 않았고, 고증하지도 않은 유의태는
소설가 이은성에 의하여 드라마와 소설에서
허준의 스승이 되고, 허준이 산청에 와서 성장하고,
유의태로부터 의학을 배운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노정우의 고증하지 않고 발표한 논문으로 인하여
유의태가 산청의 인물, 허준의 스승, 실존 인물이 되는
역사 왜곡의 출발점입니다.
이제부터 1965년 노정우가 인물한국사에 발표한 논문 <허준>에서
허준의 스승 유의태와 허준을
어떻게 기술하였는지 그 내용을 알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