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남선 교수님과 함께하는 풍수답사입니다. *
정기답사는 홀수 달 두번째 주 일요일에 실시하며
일정에 변동이 생길 시 미리 공지하겠습니다.
"아풍동"이 17번째 생일을 자축하는 날입니다.
만나이로 17년이니 어엿한 고교생의 품격을 지닌 멋지게
자란걸 보면 대견하고 뿌듯한 마음입니다.
귀한 시간 함께 동행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은 날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총무 김 은희 올림*
1. 답사일 : 2025년 5월 11일 (일)
2. 장소 및 시간 : 아주대 정문 오전 8시 정각 출발
3. 답사지
1) 17주년 발족식 행사 및 스승의 날 행사
부안군 줄포면 줄포만 노을빛 정원 (야외)
2) 벽송당 지응대사 어머니 묘소 (부안군 부안읍 )
지금부터 3백여년전 조선왕조 중엽에 정읍시 태인 출신으로 송벽송이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일명 지응대사라고도 불렀다 한다.
그의 어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슬하에 일점의 혈육도 없음을 항시 허전하게 여기다가 여산송씨 집안으로 개가하여 얻은 아들이 바로 벽송이었다. 벽송은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속에서 총명하게 자랐으나 당시의 서얼에 대한 인간이하의 차별 대우와 구박은 어린 벽송으로 하여금 어머니 곁을 떠나 수도승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태인 근처에 있는 용문암이라는 암자에서 수도하면서 풍수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벽송은 풍수공부에 심취해 꽤 깊이 공부하여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하루는 무엇을 생각했음인지 태인의 고현내에 있는 도강김씨 집안으로 시집가서 살고 있는 매씨를 찾아갔다.
뜻밖에 찾아온 벽송을 보고 누님은 반가히 맞아 주며 대접을 잘하여 주더니 명당 한 자리 잡아 주기를 간청하는 것이었다. 송은 배다른 서 동생이라고 차별도 하지 않는 누님이 고맙기도 하고 지금까지 공부한 풍수를 시험도 하여 보기 위하여 좋은 명당자리를 잡아주고 떠났다. 그 후 도강김씨 집안은 크게 흥하여 부귀가 끊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다시 수도의 길을 떠난 벽송은 부안의 변산으로 들어가 내소사와 청련암의 중간쯤에 벽송암이라는 암자를 짓고 수도에 열중하였다. 한편 그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의 행방을 몰라 팔방으로 수소문하며 찾아 헤매다가 변산에서 아들 벽송을 발견하고 눈물을 흘리며 귀가 할 것을 간청하였으나 이미 불도에 깊이 귀의한 도승의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부득이 작별을 하면서 서로 한 가지 굳은 약속을 하였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초하루와 보름, 한달에 두 번 어머니의 사랑으로 지은 옷을 가지고 오늘 작별하는 이 고개에서 상봉하기로 하였다. 아무리 어머니지만 수도승이 지켜야 하는 청계의 영역안에는 부녀자가 들어 올 수 없었으므로 암자로부터 십리가 넘는 이 고개 마루에서 서로 만나고 모자의 정도 나누고 새 옷과 헌옷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이 고개를 옷을 바꾸는 고개라 하여 환의치, 또는 모자가 기쁘게 만난다고 하여 환희치라 지금도 부르는데 지금의 원암리에서 진서초등학교로 넘어가는 산마루 고개가 그곳이라 한다. 그의 어머니가 아들 벽송과 상봉하고 헤어질 때마다 하는 말이
“나는 너 하나만을 믿고 살아 왔는데 네가 이렇게 수도하는 중이 되어 출가하였으니 네 한몸은 수도하여 도통한다 한들 너의 후손은 끊어지고 말 것이니 그것이 한스럽구나”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벽송은
“어머니 염려 마시옵소서. 어머니께서 천수를 다 하고 가신 후라도 어머님을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에 모셔 향불이 끊이지 않도록 할 것이오니 조금도 염려 마시옵소서.”
하고 그 어머니를 위로하였다고 한다.
그 후 벽송은 대오하여 고승이 되었으며 돌아가신 그 어머니 묘를 지금의 동진면 동성초등학교 뒤 봉덕리 산에 손수 길지를 잡아 장례를 치루었는데 이 지방 사람들이 이 묘에 명절날 치성을 드리면 집안 식구들이 일년내내 무병하고 재수가 좋다 하여 다투어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이 무덤의 풀은 '야니락(학질의 일종)'이라는 병에 특효가 있다고 하여 다투어 뜯어 가므로 자손이 없어도 저절로 벌초와 제사가 지내지게 되는 셈이어서 과연 무자손 천년향화지지의 명당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벽송대사의 깊은 효심과 신통력을 칭송하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출처-[ichpedia 무형유산지식백과] (지역설화, 벽송대사와 환의고개)
3) 내소사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세운 절로 원래 이름은 소래사이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조선 인조 11년(1633) 청민 대사가 절을 고칠 때 지은 것이라 전한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지붕은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장식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들의 포개진 모습은 조선 중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대웅보전의 꽃문살에서 당시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으며, 불상 뒤쪽 후벽에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 좌상’이 그려져 있다.
대웅보전 현판은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 1705~1777)가 쓴 글씨이며, 부속 암자로는 입구의 지장암과 청련암이 있다. 현존하는 당우 및 중요문화재로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비롯하여 보물 고려동종(高麗銅鐘), 보물 법화경절본사경(法華經折本寫經), 보물 괘불 등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요사채, 설선당(說禪堂), 삼층석탑이 있으며 내소사 일원은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600m의 전나무 숲길은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으며 사계절 색다른 모습으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내소사)
4) 김명환 묘소 (부안군 변산면 변산해수욕장 뒤 능선)
인촌 김성수 선생의 증조부.
풍수계에서 울산김씨 집안의 풍수에 대한 믿음은 익히 정평이 나있으며,
일명당 일묘(一明堂 一墓)로 전라도 일대(전북 고창과 순창, 부안, 전남 장성 등) 에
명당이라는 명당은 다 골라 썼다는 울산김씨!
우리 나라의 신라, 고려, 조선조에 걸쳐 공자를 모신 문묘(文廟)에 배향된
인물은 모두 18명이며, 이를 해동18현이라고 하는데 이중 호남출신은
유일하게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선생 한 명으로 전남 장성 출신입니다.
이분을 있게 한 발복지로 전남 장성군 북이면 명정마을에 있는 "정부인 여흥민씨" 묘소로,
하서 선생의 5대조가 되십니다.
참고로 울산김씨 주요 음택을 인촌 선생을 기준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9대조 김창하(金昌夏)와 순천박씨(順天朴氏) 합장 묘 : 순창군 복흥면 반월리 자포마을
증조부 김명환(金命煥) 묘 : 부안군 변산면 변산해수욕장 바로 뒤
증조모 전의이씨(全義李氏) 묘 : 순창군 쌍치면 보평리 금평교 맞은 편
조부 김요협(金堯莢) 묘 : 고창군 아산면 도솔산 선운사 뒤 옛 암자 백련암 자리
조모 영일정씨(迎日鄭氏) 묘 :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호암마을
인촌 선생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호남 제일의 명문가로 이름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조상의 묘(음택)와 집터(양택)를 잘 잡아서라는데
풍수를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해야만 가능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 전에 선행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적덕을 쌓으면
'積善之家(적선지가) 必有餘慶(필유여경)' 이 아닐까요??
5) 새만금 방조제 (전북 부안군 대항리~군산시 비응도)
새만금 지역은 한반도 서남쪽의 군산시, 부안군, 김제시를 중심으로 그 외곽의 고창과 정읍, 전주와 완주, 익산까지를 아우르는 권역입니다. 이 드넓은 지역의 명칭인 '새만금'은 1986경에 생겨났습니다. 김제평야와 만경평야를 합쳐 예로부터 금만평야로 일컬어져 왔고, 이곳에 새로운 땅이 생긴다고 하여 금만을 만금으로 바꾸고 앞에 '새'자를 붙여 '새만금'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와 산업, 관광을 아우르면서 녹색성장과 청정생태 환경의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는 “새로운 만금의 땅”이 될 것입니다.
1991년 11월에 공사가 시작된 새만금방조제는 전북 부안군 대항리에서 군산시 비응도를 잇는 초대형 둑으로 그 길이가 33.9km입니다. 2010년 방문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는 중국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한국에는'바다의 만리장성'이 있다며 경탄했다고 합니다. 기존 네덜란드의 쥬다치방조제(32.5km)보다 1.4km가 길어 2010년 8월에 세계기네스월드레코드에 등재되며 세계 최장의 방조제가 되었습니다. 새만금방조제는 폭이 평균 290m(최대535m)이고, 높이는 평균 36m(최대 54m)에 이르는 대형해상구조물로서, 대부분 물속에 잠겨있고 바깥에 드러나는 부분은 평균해수면 위로 11m입니다.
푸른 바다 위에 그려진 길고 긴 선하나
하늘에서 내려다 본 새만금방조제의 모습은 길고 긴 선하나.
그 빛나는 선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올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출처-[새만금개발청] (새만금의 어원과 방조제)
4. 회비 : 5만원 (차량 대여비 및 중식 석식 기타 비용 포함)
(당일 총무에게 납부)
5. 연락처 : 회장 이 영기 (010-9001-4561)
총무 김 은희 (010-3228-6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