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글’이란 말은 수십 년 전부터 우리말과 한글을 사랑하고 빛내려는 이들이 쓰고 있다. 이들이 한말글사랑겨레모임(1991년 공동대표 리대로, 밝한샘), 한말글연구회(회장 정재도), 한글학회 부설 한말글문화협회(2006년 대표 문제안) 들들 모임 이름으로 지어 부르면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 말이 낯설다는 사람들이 있다. 토박이말을 싫어하는 이들과 말글에 관심이 적은 이들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일찍이 100여 년 전부터 우리 말글을 사랑하고 빛내려는 주시경 선생과 그 제자들을 중심으로 쓰던 우리말 이름인 ‘한말’과 우리 글자 이름인 ‘한글’을 한마디로 부를 때 쓰는 말이다.
왜정 때 ‘가갸날’을 ‘한글날’로 바꾸고 ‘한글’이란 우리나라 최초 학술지를 내면서 ‘한글’이란 말이 뿌리내리고, 광복 뒤 ‘한성’이나 ‘경성’이란 땅이름을 쓰지 않고 ‘서울’이란 우리 땅이름을 써서 뿌리를 내렸듯이 이제 우리 말글을 통틀어 부르는 ‘한말글’이란 토박이말을 널리 쓸 때이다.
주시경 선생은 1908년, 우리 말글을 살리고 빛내어 나라를 일으키고 튼튼한 나라를 만들고자 우리 말글을 연구하고 사랑하는 애국 시민․학자들과 함께 ‘국어연구학회(회장 김정진)’란 모임을 만들었다. 그런데 1910년에 일본제국에 우리나라를 빼앗겨 일본말이 국어가 되어서 우리말을 국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어연구학회’를 1911년에 ‘배달말글몯음’이라고 했다가 1913년에 ‘한글모’로 이름을 바꾸었다. 우리 글자와 토박이말을 살리겠다는 큰 뜻이 있었다.
▲ 1913년 주시경 선생이 ‘국어연구학회’를 ‘한글모’로 바꾸고 낸 ‘한글모죽보기’와 ‘한글배곧죽보기’ 책 겉장 찍그림, ‘한글’이란 이름이 공식으로 쓰인 첫 증거 자료다. © 리대로 | |
‘우리말’과 배달겨레의 말을 줄인 ‘배달말’은 고유한 이름이 아니라 일반 이름이기에 떳떳한 우리 말글 이름이 필요했다. 1443년 세종대왕이 만든 우리 글자도 처음에 ‘훈민정음’이라고 했으나 그 뒤에 “언문, 암클, 상글” 들들로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주시경 선생과 많은 분들은 우리 글자인 훈민정음에 떳떳한 이름을 지어 부르고 싶어서 ‘한겨레 글자’, ‘으뜸 글자’란 뜻을 담아 ‘한글’이라 이름을 달고 한글을 지키고 살리기로 했다. 그때 우리말은 마찬가지 뜻으로 ‘한말’이라고 이름을 지어 부르게 되었다.
위 찍그림은 주시경 선생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보성중학교 학생들에게 한말글을 가르치고 마친 이들에게 준 마침보람이다. '나남'이란 글자 옆에 빨간 도장이 있는데 "한말익힘곳짐"이라고 쓰였다. 우리말을 '한말'이라고 쓴 것을 보여주는 첫 찍그림이다. 여기서 '다나'란 말이 보이는데 이 뜻은 "다 끝나다. 다 마치다"란 뜻으로 보이고 '나남'이란 말이 나오는데 '마침표'나 '마침보람'이란 뜻으로 쓰였던 거로 보인다.
그런데 ‘한글’이란 우리 글자 이름은 왜정 때에 만든 ‘한글날’과 ‘한글’이란 학술지 때문에 널리 쓰이고, 광복 뒤에 조선어학회를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면서 뿌리를 내리게 되었으나 ‘한말’은 그렇지 못했다. ‘한말’이란 이름도 왜정 때에 우리 말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썼으나 세계 으뜸 글자인 ‘한글’을 살리는 것이 더 중대하고 절실했기에 ‘한글’이란 이름을 ‘한글날’과 학술지 ‘한글’이란 공식 명칭에 썼던 것이다. 그래서 한글이 널리 퍼지고 우리 글자로서 쓰이게 했다. ‘한말’이란 말도 1986년에 한말연구학회(회장 김승곤)가 생기면서 널리 쓰기 시작했다. 아래에 왜정 때 우리말은 ‘한말’이고, 우리 글자는 ‘한글’이라는 것을 알려준 동아일보 기사를 소개한다.
1930년 동아일보 한글날 특집호에 조종현 님이 “한말 ․ 한글-구월 이십구일(훈민정음 반포 484주년)을 맞으며”란 제목으로 쓴 동요가 ‘한말’과 ‘한글’이란 두 말뜻을 잘 알려주고 있다. 한글날 특집 신문에 이런 동요가 실린 것만 봐도 이 두 말을 우리 겨레에게 알려주려고 애쓴 말글 학자와 민족 운동가들이 얼마나 우리 말글을 사랑하고 널리 알리고 지키려고 애썼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뒤 우리 한글을 살리려는 조선어학회에 반대해 일본처럼 한자를 섞어서 쓰고 혼용하자는 박승빈과 윤치호 들은 우리 글자를 ‘정음’이라고 했으나 많은 배달겨레가 한글을 좋아해서 ‘한글’이 자리를 잡았다.
- 한말․한글 - 구월 이십 구일(훈민정음 반포 484주년)을 맞으며-
趙宗玄(조종현)
-가-
방실방실 어린이 재미스럽게 말이 뛴다 소 뛴다 말은 하여도 하는 이말 이름을 모른다 해서 “한말”이라 이름을 일러 줫지요. -나-
방실방실 어린이 얌전스럽게 가갸거겨 책 들고 글을 읽어도 읽는 그 글 이름을 모른다 해서 “한글”이라 이름을 갈처 줫지요.
-다-
쉽고 고운 우리글 “한글”이라요 좋고 좋은 우리말 “한말”이라요 방실방실 어린이 잘도 읽는다 방실방실 어린이 잘도 부른다.
―동아일보 1930.11.19.4면
그리고 대한민국을 세운 지 42년이 지난 1990년까지도 최만리를 닮은 한글 반대 세력이 일본처럼 한자를 섞어서 쓰자며 한글전용법을 한자혼용법으로 바꾸자고 나서고,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면서 한글을 못살게 굴었다. 나라가 어려울 때 백성들이 의병을 일으키듯이 그때 젊은 한글사랑꾼들이 ‘한말’이란 우리말 이름도 되살리자는 운동이 일어났고 ‘한글’과 ‘한말’이란 두 말을 통틀어 우리 말글이란 뜻으로 ‘한말글’이라고 부르자고 했다. 그리고 그때에 한자파에 맞서 싸우자고 만든 우리 말글사랑 시민운동 모임을 만들면서 ‘한말글사랑겨레모임’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어서 ‘한말글연구회’, ‘한말글문화협회’, ‘한말글이름을사랑하는사람들’ 들들, ‘한말글’이란 이름을 붙인 모임이 많이 나온다. 1996년 한국어정보학회는 중국 연변에서 북한 학자들과 정보통신 용어를 통일하자는 논의를 한 일이 있다. 그 때 우리 말글 호칭 때문에 혼란이 있었고 논쟁을 한 일이 있다. 우리말을 남쪽은 ‘한국어’로 북쪽은 ‘조선어’로 하자고 하고, 우리글은 남쪽은 ‘한글’, 북쪽은 ‘조선글’이라고 하자고 해서다. 그래서 말은 ‘우리말’, 글자는 ‘정음’이라고 합의한 일이 있다. 그러나 이 합의된 말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우리말’이라는 호칭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 명사여서 좋지 않다. ‘한말’과 ‘한글’은 남북이 나뉘기 전인 왜정 때부터 우리 말글을 살리려는 선열들이 쓰던 말이다. 또 나라 이름이 바뀔 때마다 그 나라 이름에 따라 명칭이 고려말, 조선말, 한국말처럼 바뀌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배달겨레는 반만년 역사를 가진 겨레이며 우리 글자는 온 누리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를 가진 겨레다. 반만년이란 역사를 가진 겨레말과 우리 글자에 뒤늦게 ‘한말’이란 떳떳한 이름을 지어 부르고, 우리 글자가 태어나고 500년이 지나서 뒤늦게라도 그 이름을 ‘한글’이라고 지어 부르며 한글을 지키고 살린 것은 아주 잘한 일이고 좋은 일이다. 이제 우리 겨레말 이름은 ‘한말’, 우리 글자의 이름은 ‘한글’, 우리 말글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은 ‘한말글’이라고 부르며 우리 말글을 더욱 사랑하고 빛내어 우리 말꽃을 활짝 피우고, 온 누리를 밝히자. 이 일은 오늘 우리가 우리 겨레의 새로운 발자취를 적는 뜻 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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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말글의 발자취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