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코끼리 - 이근택

[시인의마을]

바다코끼리

이근택

삶이 특별히 불행하거나 잔인하여도 괜찮다 유빙을 찍어

오르던 상아는 잘린지 오래 비좁고 차가운 수족관에서 홀

로 사는 이유는 눈부신 설산과 살을 에는 바람이 그리워서

가 아니다 본래부터 외롭고 뜨거운 몸을 타고났기 때문이

다 차가운 물에서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830킬로의 거

구를 비틀어 올라 물 위에서 숨을 쉬고 다시 물 아래 바닥

에서 수조 밖의 사람들을 쳐다본다 사람들에게 크고 검은

눈 을 껌벅이며 황막한 북극의 평화와 눈을 찌르는 아침 해

의 열망을 이야기한다 그 눈을 마주본 사람들들은 지워지지

않을 커다란 슬픔이며 외로움이며를 보지 못한다

보조개가 예쁜 담당 수의사와 함께 톳밥을 먹었다 수컷

인가요? 암컷이에요. 우리나라에는 암컷만 두 마리 있지

요. 왜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을 쳐다보죠? 호기심이요.

호기심 때문에요.

(토풍시 사화집 『다시, 화양연화』에서, 2023)

*이근택 시인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 다섯살 이후 광주에서 살았다.

광주 시내 여러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시집으로 『장미를 사랑하고 있어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