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9.28. 26—28. 사회선교기관장 리더쉽 훈련. 유낙준주교.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신 성전(1고린6:19)’인 ‘여러분은 자기의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1고린6:20).’
자기의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공회 성도인 리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몸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이 리더이고 성공회 성도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하느님을 사용하는 것은 두목(보스)입니다. 그렇게 두목과 리더는 차이가 있습니다. 성공회 성도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자신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리더인 성공회 성도인 사회선교기관장의 삶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리더인 성공회 성도로 인하여 지구가 더 나아지고 우주가 더 선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큰 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성공회 성도인 리더입니다. 그리하여 성공회 사회선교기관장의 큰 품으로 인하여 자신의 삶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확장되고 선한 삶이 깊어지고 사랑이 확대되는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내길 바랍니다. 그것이 하느님이 하느님의 사람인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마음이실 것입니다.
경쟁과 돈인 물질을 사람보다 중시여기는 최첨단을 달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인간을 존중하고 여럿이 함께 살고자 하는 성공회 리더인 성도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대세에 물타지 않고 하늘의 이치에 따라 ‘험하고 사람도 적은 좁은 길을 걷는 사람(마태오7:14)’으로 생명을 향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멈추게 하는 시대상황에서 생명을 세워내는 삶이 성공회 성도인 리더가 할 일입니다. 자기 스스로 명을 해치는 원인중 하나가 심각한 경쟁관계에서 실패할 때 나타난다고 합니다. 우리시대에 모든 것의 중심이 이익을 내는 것에 둘 때 나타나는 것이 생명을 중요하게 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단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게 하는 힘이 나옵니다. 스스로 일하여 살고 가족을 부양할 때, 스스로 일하여 남을 도울 때 인간의 존엄성이 확보되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버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을 하는가 안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인간의 일을 한다는 자체가 인간을 존엄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돈을 벌면 부를 쌓이게 할 수 있지만,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인간에 대한 가치가 떨어지게 됩니다. 너무 효율성을 강조하여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뒤로 숨겨서는 안 됩니다. 일을 하여 헌신할 때 남이 눈에 띄이게 되고 세상이 일을 안 할 때와는 다르게 보이게 됩니다. 결국 일을 할 때 남과 함께 살 마음가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로 인한 헌신은 함께 사는 좋은 배지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로 인한 헌신은 현실의 장벽을 넘어서게 하는 힘이 있고 하느님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주인이 되는 하느님의 뜻은 일로 인한 헌신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일이 없는 사람, 실업자는 자신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자괴감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가치없는 사람으로 인식을 하게 됩니다. 자기 안으로만 살게 되어 남과 함께 살기 어렵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는 빈민구제기관에서 일하시는 사회선교기관장들인 성공회 리더인 성도는 인간의 가치를 중시 여기는 것이 이러한 점에서 일차적인 과제이어야 합니다.
성공회 성도인 리더는 자신의 사랑이 매일 깊어지는가를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기존의 자기의 그릇을 크게 하여 선한 영향력이 확대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상상의 날개를 접지 않고 훨훨 날기를 자주 하고 더 높이 날기를 주저함 없이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용기있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에게 삶에서 도전을 하게 하는 용기를 갖게 합니다.
성공회 리더인 성도는 권위 authority를 갖는 사람입니다. 권위는 라틴어 augeo 아우게이오, 아우제오 라는 말에서 authority 권위가 생겼다고 합니다. augeo는 ‘성장하게 하다, 더 나아지게 하다, 질적으로 높이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권위는 성장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성공회 리더의 권위는 성장하게 지원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참된 리더입니다. 강제로 하는 권위는 세상적인 권위이지만 성공회 리더의 권위는 영적인 성장을 지원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하여 질적으로 높게 살게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모든 지혜와 힘은 하늘로부터 오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로 하느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는 사람입니다. 니케아 신조에 나오는 말씀인 “사람을 위하여” 하느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지금도 저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인간존중이 이곳에서 가장 드러나도록 저의 가슴이 울컥하게 했던 말씀입니다.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인간이 망쳤고 그래서 하느님이 예수님을 보내시어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대신해서 망가진 인간세상을 회복시키는 것이 성공회 성도가 사는 길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할 때마다 우주가 더 나아지게 되는 삶을 가진 이가 성공회 리더인 성도입니다.
세상에 빠지지 말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사람이 성공회 리더인 것입니다. 세상에 빠져서 자기폐쇄적인 삶은 남을 보지 못하는 삶이 됩니다.하늘을 볼줄 알아야 남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점에서 성공회 리더는 ‘함께 살기’를 실현하는 사람입니다. 함께 살게 하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부럽습니다. 어느 집단이나 공동체를 결속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인데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사람을 보면 대단해 보입니다. 가정, 교회, 기관의 결속력을 높이게 하는 사람을 보면 귀하게 보입니다. 남과 함게 살기는 연대의식의 표현입니다. 자기열정으로 남과 함께 산다는 그것 자체가 인간에 대한 예절이고 존엄입니다. 나이들수록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삶이어야 사랑이 확대되고 지구가 나아지고 우주가 나아질 것입니다.
잇속을 챙기느라 세상이 중심을 잃고 헤멜 때일지라도 우리 성공회 성도인 리더는 사랑을 중심에 두고 방향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는 삶이 달라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성경에서 나오는 최고의 매력적인 분이십니다. 사랑에 빠져 온전히 사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매력적인 분이십니다.고통스러워도 사랑을 놓지 않는 예수님의 살밍 우리의 삶이길 빕니다.사랑은 증오보다 오래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명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랑은 사소한 일로 눈을 멀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름이 유명해지면 질이 떨어지기 쉽다는 말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합리성과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사람일수록 남과 복을 나누는 삶을 불편해 합니다. 남과 함께 어울려 사는데 어려워하는 분들이 대개 이러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분들은 복있는 사람이 못되는 것 같습니다. 이들에게 복있는 삶으로 다가가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함께 사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함께 살기가 자유스러운 사람이 부럽습니다. 어떻게 해야 함께 잘 살 수 있을까요?
어린 나이에 일찍 증오를 배운 사람은 함께 살기를 매우 어려워합니다. 아직 자기정돈이 안된 시기에 증오를 먼저 익히게 되면 종합적인 판단보다는 순간적으로 빨리 자기방어를 갖는 판단을 먼저하기에 오류를 지닌 판단을 하게 됩니다. 증오에다가 오류까지 겹친 삶이 되다보니 삶이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됩니다. 때로는 그 삶을 감당하기조차 어렵게 복잡하게도 됩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증오를 가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누군지 아는 것이 일을 제대로 하는데 중요합니다. 자신이 누군지 모르면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일을 하게 됩니다.그래서 자신이 누굴까? 자신이 사랑에 진짜 빠졌을 때가 진짜 자신이야 라고 규정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에서 떨어져 나갔을 때는 자신이 아니라는 생각을 확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 자신이 사랑을 가장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영광인 사랑이 자신에게서 드러나게 됩니다.
좌절이 지속되면 사람이 무기력하게 됩니다. 그래서 좌절속에서도 잠깐의 성취를 지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좌절만 지속하면 자신의 안으로만 들어가게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밖으로 나갈 출구를 찾지 못하게 됩니다. 남과 어울릴 수가 없는 존재가 되어함께 살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성공회 리더인 성도는 좌절이 지속되는 사람에게 좌절을 잠깐이라도 멈추게 하여 자신만 보는 삶이 아니라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을 보게하는 사람입니다.
성공회 리더인 성도를 만나면 ‘내 심장이 멈추게 됩니다’라는 고백이 넘치는 공동체이길 바랍니다. 사랑이 강해 심장이 멈출 정도가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진짜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일 때 가능할 일입니다. 그러하기를 빕니다. 성공회 리더인 성도는 슬픔이 횡행하는 곳에서조차 슬픔 너머에 있는 희망을 이야기 하는 사람입니다. 희망을 이야기 한다고 무모한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슬픔속에서만 있게 되면 남을 보지 못하게 되니까 함께 살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슬픔 너머에 있는 희망을 꼭 얘기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필요한 사람이 성공회 리더인 성도입니다.
기쁨을 앗아가는 고통은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삶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자신의 고통만 바라볼 때 남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성공회 성도는 고통의 와중에 하느님께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왜 이 고통을 주셨습니까?.” 하느님이 고통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고 이 고통을 주신 하느님의 뜻이 어디있는지를 분별하려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고통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고통으로 아프지만 믿음이 성장되는 사람인 성공회 성도가 되는 것은 참된 삶인 것입니다. 고통으로 하느님께 질문하여 보이지 않던 남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으로 함께 살기가 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에게서 하느님 체험을 하여 남에게 하느님을 체험하게 이끄는 사람이 성공회 리더인 성도인 것입니다.
성공회 성도인 리더는 망가진 세상인 부정성을 선전하는 사람이기 보다는 하느님의 세상 창조의 긍정성을 더 많이 선전하는 예수님의 대리인입니다. 나도 하느님의 창조물인 자연의 일부라는 인식만 가져도 사람과 자연인 세계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아 사신 얼굴에 주름이 패인 어르신들에게서 삶의 경륜을 배우며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영혼에 병이 난 사람을 보면 아퍼하는 사람이 성공회 리더입니다. 인생이 다시올 수 없는 길을 걷는 삶임을 인식하여 전적인 존중으로 살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성공회 성도이길 바랍니다.
나이가 들수록 항상 잃어버리는 삶이 된다면 남과 함께 사는데 참으로 부적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이 버는데고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의 삶이라면 자기 안에만 파묻혀 사는 사람인 경우입니다(하개1:9참조). 그때 하느님을 찾으십시오. 하느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느님이 계신 제단 아래서요. 하느님의 집에서 기도하면 뭔가 길이 열릴 것입니다. 하느님의 집인 베델 안에 머무십시오.
창세기 28:15절부터 야곱의 꿈이야기.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 800Kms. 베델까지는 200리. 꿈 속에서 천사가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는 광경을 보고, 옆에는 하느님이 함께 게시고. 땅과 후손을 주리라는 하느님의 말씀. 꿈깬후. 이곳에 하느님이 계시다고 선포. 변화된 야곱의 삶.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