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 시집 『유목의 시간』은 우리 삶에 어느새 깊이 자리한 노마드의 자유를 노래한다. 시인의 노마드는 정착민을 벗어나는 게 아니다. 여기서 저곳으로 옮겨사는 이주민의 것도 아니다. 삶은 한곳에 머물러 살되 정신은 자유 분방하게 사막을 돌아다닌다. 들뢰즈가 말하는 유목의 사유다. 시인의 정신은 집시처럼 바람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돌아다닌다. 익숙한 얼굴과 매일 만나는 삶이지만, 시인의 정신은 수억광년의 별을 지나서라도 너를 만날 때까지 너를 찾아나선다. 노마드의 삶은 외로움이다.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이 한 점 구름처럼 멀어져” 가지만 “수억 광년 전의 별”처럼 시간을 타고 다시 찾아온다. 그때까지 시인은 “매일 유목민이 된다.”
김진명의 시는 때로 니체의 글처럼 잠언풍으로 나타나지만, 그 글에서 유목의 사유를 찾아 읽는 들뢰즈처럼 우리 역시 문장과 문장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에 안개가 깊게 내린 계곡과 그 계곡을 환히 읽을 수 있는 “하늘거울”을 통해 낯선 시간을 타고 마침내 “너”에게 도달하는 유목민의 꿈과 마주친다. 김진명의 시를 나지막히 소리내어 읽어보자. 음절과 음절 사이의 침묵을 음미해 보자. 우리는 어느덧 유목의 사유 속에 깊이 가라앉아 한덩이 해처럼 빛나는 우리의 미학정신과 마주칠 수 있을 것이다.
―박제천(시인, 문학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