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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의 길라잡이 / 10 원인의 세계, 11 사람의 몸
원제 : Talking with God (하나님과 이야기 나눔)
by Mrs, Gwyne Dresser Mark (귀네 드레서 마-크 여사 지음)
(이 글 원본은 예전에 김응남 목사님께서 올리신 것으로
여기서는 필요상 제가 일부 편집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의 증언에 대한 부분은
영판에는 없는 부분이기에 괄호 속에 참고로만 옮겼습니다.)
10 원인의 세계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요 6:63).
하나님에 대한 첫 기억으로부터 항상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삶의 외관 이면에 있는 영적 실재들에 대한 인식을
쉽게 발달시킵니다.(the spiritual realities beneath the surface of life)
사물의 외형적 측면 안에 있는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은
광범위한 혼란으로 이어집니다.
만약 과학의 연구가 ‘영적인 인과관계’로부터 출발되었다면
그동안 많은 신비한 것들이 이해되었을 것입니다.
간행물은 설명을 할 수 없는 것을 싣고 있으나
조사하는 이가 그 이상한 현상을 조사해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적의 기록이 있어도
과학자들은 거기 회답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불가능한 일을 입증(demonstrate)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설명은 못합니다.
의료행위에 최면을 사용하여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수술할 때 마취 대신에 최면술을 써서
최면술이 걸려 있는 동안에 암시가 주어지면
통증, 충격, 부작용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보통의 경우보다
더 빠른 회복을 가져옵니다.
이와는 반대로 최면술의 암시에 의하여
물집, 발진, 마비, 출혈, 그밖에 각종 고통의 증상을
생기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 의학적인 설명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최면술의 암시와 영적치유에 의한 결과가
유사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 두 접근 방식이 유사하지는 않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각각에는
몸과 마음 사이 동일한 연결원리(bridging mechanism)가 작용합니다.
사고(thought)의 힘은 현재 실험장에서 관측됩니다.
심은 씨앗은 그들에 집중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사고에 의해
성장에 눈에 띠게 도움이 되거나 방해를 받았다고 합니다.
전기장치로 뇌의 힘을 재어보았는데
강력한 기도를 할 때나 분노가 터질 때에 가해진
정신의 활동(mental effort)은
방송국이 전 세계에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사용하는
50kwt 에너지의 55배가 더 되는 기록이 나왔습니다.
또 기도의 에너지와 분노의 에너지는
질적으로 반대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활동은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감정(emotions)이 몸의 상태에 미치는
영향이 인정됩니다.
의사들은 감정의 긴장이 병을 일으키든가
감정의 집중의 변화가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예로 어느 이름난 배우는
척추타박상에서 오는 고통에 괴로움을 받다가도
연기에 빠져 있는 동안은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어떤 의사는 만약 완전한 긴장완화가 된다면
1도나 2도 화상(火傷)에서는
물집이 거의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감정의 긴장 때문에 생긴 근육의 긴장으로 인해
피의 순환이 방해받지 않는다면
회복도 빠르고 상처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 심리학 교수는 감정이 몸의 화학반응을 바꾼다는
실험 증거를 내놓았습니다.
그는 분노, 두려움, 슬픔의 상태에서 각각의 감정들마다
땀과 호흡이 다른 변화를 보인다는 시험관 증거를 얻었습니다.
그는 분노와 증오가 있을 때의 호흡을 화학적으로 분석하고
그렇지 않으면 생길 리가 없는 맹독 물질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만일 우리들이 마음작용(mind processes)을 조절하는 방법을 안다면
병을 고칠 수 있으리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감정이 몸에 그러한 결과들을 미치는 이유는
감정은 의지의 표현이며
따라서 그의 몸이 따르도록 설계된,
사람의 모든 동인(motivation, 動因)의 표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면 이해되지 않습니다.
(Why emotions have such effects on the body
is not understood except by those who know that
emotions are expressions of the will, hence of a man’s
whole motivation which his body is designed to serve.)
몸은 의지의 모든 전환에 충실하게 반응하며
동인이 어느 방면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나타냅니다.
의지가 좌절되거나 갈등을 겪을 때
긴장이 생기고
이것은 몸의 기능을 혼란시키고 방해합니다.
‘관찰할 수 있는 결과들’을 가진 연구자들이
영의 실재를 인정할 때
그들은 그때 당장 자신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많은 ‘관찰할 수 없는 원인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When students of observable effects
will concede the reality of spirit,
they will then find the non-observable causes of much
that at present mystifies them.)
모든 선한 결과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이
한결같은 종교적인 원칙이었지만
악한 결과의 근원에 대해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하나님이 악을 일으키지 않으시리라 믿으면서도
악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고 보기를 꺼려합니다.
지상의 무질서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 사이의
충돌(conflict)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인정하려면
영적인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충돌로부터 어떤 유형의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그 충돌에서 인간이 굴복함으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It is from this conflict
that certain kinds of mysterious happenings occur,
and it is from man’s yielding in the conflict
that “miracles” take place.)
질병이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 중 하나이며
또 인간의 제한된 이해력으로는 그 질병의 치유가 종종
기적과도 같은 이유는
인간이 그의 몸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이 바깥쪽 외관이
실은 영적인 기원과 영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 모두 하나님의 법과 뜻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는 아직 배워야 합니다.
(참고 : 스베덴보리 증언
* 천계의 지배자는 지상의 세계도 지배한다.
왜냐하면 하나는 다른 하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의 세계는 원인의 세계요 자연계는 결과의 세계다.
자연계의 사물은 영계와 관계가 없이 있는 것은 없다.
생물, 무생물 모든 자연의 형체는 영적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
* 자연계에 있는 것은 결과일 뿐이요 그것들의 원인은 영계에 있다.
결과는 그의 원인이 언제나 그 안에 있지 않으면 있을 수 없다.
* 사람에게 있는 것으로
영적인 원인에 의존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신체의 감각과 행동까지)
육체의 생명은 육체의 것이 아니고 영혼의 것이요
다시 말하면 영혼을 통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육체에 느껴지는 것은 영적인 것에 기인한다.
육체는 마음의 형상이므로
영의 사람에게서 몸에 내려오는 것은
원인에서 생기는 결과 같은 것이다.
신체의 행동 동작은 마음의 것을 나타낸다.
사고는 영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얼굴, 근육을 움직여서
그 자신의 표정을 나타내는 것이요 또 말하는 기관도 움직인다.
의지는 근육을 움직인다.
* 바깥에 있는 것에 관해서 사람은
안으로부터 받아서 사는 것만큼만 산다.
또 내적인 것은 주님께 받아 사는 것만큼 산다.
주님만이 홀로 스스로 사는 분이시오
만물은 주님의 유입에 의하여 생존하고 있다.)
11 사람의 몸
“주께서 몸소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세웠으니..
내가 이렇게 태어났다는 것이 오묘하고 주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을 찬송하리로다.”(시119: 73, 139:14)
사람의 몸은 사람에게 알려진 최대의 기적입니다.
그러나 많은 기적이 그렇듯
그것은 거의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몸이라는 기계는
스스로 성장하고 스스로 낡은 부분을 갈아 바꾸고
스스로 상처 난데를 고치고
그 주인이 아무런 계획이나 결정을 하지 않는데도
지속적으로 작동합니다.
사람이 발명한 어떤 것을
사람의 몸이라는 이 기계에 비교할 수 있을까요?
우리들은 그것을 혹사시키고 그 필요를 무시하며 극도로 남용하지만
그것은 스스로를 적응시키고 보상하며
사람이 설계하지 않은 청사진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고자
충실하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는 이러한 기계를 가지고 있으며
또 그것은 어찌하여 그렇게 되어 있을까요?
만일 영적인 의미와 쓰임새가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제각기 육체를 지니고 살게 하지 않으셨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도 당신 스스로 몸을 입고 나타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는 자연계의 모든 것은
영적 실재(realities)들을 표징하기 위해 창조된 것입니다.
따라서 각각의 물리적 창조물과 어떤 영적 사실(fact) 사이에는
관계와 유사함이 있습니다.
영적 실재는 존재(existence)의 물질적 평면에
자신을 내쏘고(project, 투영)
그렇게 해서 표현된(expressed) 것은
그것의 보다 더 높은 근원과 원인을 정확하게 반영합니다.
사람은 영적 사실들을 이해하기 위해
외부의 '실물 교육(object lessons)'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물리적 환경에서 삶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마치 사과를 쌓아놓고서
더하고 빼는 셈본을 어린아이에게 가르치는 것과 같아서
이때의 사과는 추상적인 수를 배우기 위한 보이는 교재입니다.
마찬가지로 몸은 학습을 위한 기계입니다.
이를 통해 각 사람은 우주와 소통할 수 있고
우주로부터 인상(impressions)을 모으고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몸의 오감(五感)과 움직임을 통해
영적 실재의 셀 수 없이 다양한 표현들을 가진 존재의
물질적 평면과 접촉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관찰하고 기억하는 것을
우리는 지식이라고 부릅니다.
생각이 지식에 적용될 때 이해가 발달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영적 성장을 관리하고 지도할 기반을 갖게 됩니다.
독실한 성도들 중에는 설비(equipment, 몸)를 고려하지 않고도
영적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종교는 영혼의 기계와는 아무 관계도 없고
다만 필요한 것은 지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지식은 물질의 도움이 없으면 영에까지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무시합니다.
그들은 중생과 몸의 건강이 관련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우리가 ‘천국’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영적 실재를
물리적인 평면에서 보여주는 축소판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 일하시는 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일하는 중생된 사람들의
놀라운 협력 장치(co-operative arrangement)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 몸 안에 있는 수많은 세포들은
내부에서 우리의 영을 표현하기 위해 살고 일합니다.
모든 세포는 모든 천사처럼
그것의 특별한 용도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모든 세포와의 협력 안에서만 이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 협력은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로서 한 사람, 한 천국을 만듭니다.
각 사람은 만일 그가 뜻한다면 천국의 일부가 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생을 시작할 때
그 안에 천국이 있는 실물 교육(object-lesson)이 주어집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당신의 천국에서 행하시는 것처럼
그 안에서 일하고 누릴 수 있는 잘 조직된 몸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은
그들의 그 장치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르고
따라서 그것을 영적으로 그리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소중히 여겨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안달하고 걱정하며 장애들을 치료하려고 할 수 있지만
이는 다만 그들이 느끼는 불편함이 싫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천사의 성품을 갖도록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놀라운 기계가
바로 물질로 된 몸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들은 그것을 귀중한 선물로 여겨
가장 높은 목적을 위해서만 그것을 드리고
언제나 주님의 보살핌 속에 그것을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몸은 영혼에 관한 것 외에는 전혀 의미를 가지지 못하며
또 영혼은 몸에 의하지 않으면
이 땅 위에 아무 표현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은
몸이 질서 안에 있을수록 영혼은
그만큼 더 쉽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땅 위에서 사는 동안
몸은 영혼의 궁궐이요 영혼은 하나님의 거처입니다.
몸은
내면 깊숙이 계시는 신성한 존재(divine Presence)가
우리의 바깥에 있는 것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한 사람의 영이 다른 사람의 영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The body is that which makes it possible for the divine Presence
deep within to touch what is outside of us - that is,
for the spirit of one to have contact with the spirit of another.)
만일 거기 감정의 충돌이나 이기적 성향 등과 같은
장애나 방해가 있다면
신성한 존재의 방사(radiation, 발산)는
자신을 넘어 다른 사람들에게 가 닿지 않게 될 뿐 아니라
몸이라고 하는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에도 가 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몸이 하나님의 설계에 속한 것이라면
(장애나 방해를 받지 않는 상태에 있는 경우의 몸이라면)
그 몸의 고침 또한 그것을 의도하시고 뜻하시는
그분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고
자연적, 영적인 하나님의 법에 충분히 협력하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법을 알고 지상에서의 그의 생존(existence)과 활동에 대한
지속적인 기적을 지각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은 기본 해부학과 생리학을 배워야 합니다.
몸에 대한 연구는 흥미진진한 것으로
이는 사실 인간의 형태(form)를 반영하는
다섯 개의 서로 맞물린 체계마다 그 각각이
몸의 완전한 형상(image)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은 이 형상을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서로 끊임없이
협력하고 있는 것을 그 연구가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The study of the body is an exciting one,
revealing as it does the five inter-meshed systems
which mirror the human form, each a full image of the body,
ceaselessly working with one another to keep this image intact.)
피부, 근육, 혈관, 신경, 그리고 마지막으로 뼈 등
그 각각의 체계는 저마다 사람의 형상으로 있고 함께 짜여져
물질적 실체로 된(즉, 신과 같은) 사람의 형태를 만들어냅니다.
이 형태는 진정 그것이
영혼의 운명에 근저가 되고(underlies),
수행해야할 영적인 직무를 가진 것으로 이해될 때
그것은 소중히 여겨지고 질서에 간직되고
하나님의 의도대로 사용될 것입니다.
(참고 : 스베덴보리 증언
* 영혼은 몸을 통해 이 세계 안에서 일하고 몸을 살린다.
영혼이 어떤 결과를 낳게 하는 데는
그것이 몸을 통해서 일하지 않으면 안 되고
또 영혼이 없으면 몸은 어떤 능력도 없다.
영혼과 몸으로 한 사람을 형성한다.
사람 안의 노력은 의지라 부르고
몸은 의지가 그것으로 일하기 위한 도구다.
* 주님은 사람의 안과 함께 바깥도 다스리신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생명은 영혼을 통하여 사람 안에 흘러들고
영혼을 통하여 그의 마음 안에 흘러들고
마음을 통해서 몸의 감각과 행동 안으로 흘러든다.
* 몸에 나타난 감각적 능력은 영의 것이다.
왜냐하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느끼고 하는 따위의 일을 하는 것은
몸은 아니고 영이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영은 몸을 잃고서도
몸을 가졌을 때보다 더 날카로운 감각을 갖는다.
* 사람은 손발, 기관, 내장, 섬유조직, 신경, 혈관, 따위의
많은 여러 부분으로 되어져 있지만
사람이 행동할 때에 이 모두는 하나가 되어서 일한다.
한 사람 안에는 전체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무슨 일이라도 해서 선용을 행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각자 전체와 그 이익을 존중한다.
* 사람 몸의 모든 부분은
천계라고 하는 ‘거대인(巨大人)’ 안에 있는
영적인 것이나 천적인 것에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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