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적암 ~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산8
(묘적암은 대승사(大乘寺)의 산내 암자로 고려 말의 선승 나옹 혜근
(懶翁 慧勤, 1320∼1376) 스님이 출가한 암자이다. 고려 충숙왕 복위 8년
(1339) 나옹 스님은 친구의 죽음을 보고 이 절 요연(了然) 스님에게 출가했다.
당시 요연 스님은 출가하기 위해 찾아온 나옹 스님에게 `여기 온 것이 무슨
물건이냐`고 물었고, 나옹은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습니다만 보려 해도
볼 수가 없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요연 스님은 자신도 잘 알지 못한다며 `눈 밝은 스님을 찾아가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나옹이 하루는 공양 준비를 위해 상추를 씻는 중에 가야산 해인사에서 불이
난 것을 알고는 상추 씻은 물을 해인사쪽을 향해 뿌렸다.
큰 불이 난 해인사에서는 갑자기 북쪽 하늘에 검은 구름이 생기더니 상추
잎이 섞인 소나기가 내려 불길이 잡혔다. 그러자 해인사의 노장 스님들은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틀림없이 도인이 한 도술일 것으로 보고, 그 주인공을
찾기 위해 스님들을 파견했다.
한편 묘적암 스님들은 늦게 돌아온 나옹에게 그 이유를 묻자 해인사 불을
끄고 오느라고 늦었다고 대답했다.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고 꾸짖자 나옹은
실수한 것처럼 하면서 일부러 물그릇에 부딪혀 물을 방바닥에 쏟아버렸다.
스님들은 다시 나옹을 꾸짖으며 물을 치우라고 하자 나옹은 스님들이
보는 앞에서 방바닥의 물을 모은 뒤 공중에 빙빙 돌게하다가 밥주걱으로
그 물방울을 마당으로 탁 쳐내었다. 그러자 그 물방울이 마당의 작은 바위에
부딪치더니 그 자리에 한자로 '심(心)'자가 새겨 졌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묘적암
스님들은 나옹을 법석으로 모시고 법문을 들었다고 한다. ~ 옮긴 글)
묘적암의 전경이다.
여기까지 올라오는 길은 승용차 한대가 겨우 오를수 있는 좁은 길의 연속에다
경사가 심하여 초보 운전자들은 입구에 주차를 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을듯 ~~
누가 보아도 순수한 맛과 조용하니 수행정진에 아주 적합한 곳으로 생각할수
있을만큼 적막한 곳이기도 한것을 느껴보았다.
주변 산세와 바람소리까지 멈춘듯한 고요가 깃들어 있는데 발걸음 죽여 조용히
래방을 한다.
너무나 규모가 적은 관계로 들어오는 문이 겨우 한두사람 같이 통과할수 있을까...
그 문위에 걸려있는 작은 현판. 현판이라 하기엔 너무나 초라하다.
하여 그저 문의 명칭을 써 걸어 놓았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았다.
글씨가 크고 화려하게 써 놓아야 그 깊이를 알수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
하여튼 불이문을 통과하여 조용조용 안으로 발을 들였다.
댓돌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하얀 고무신 한켤레~~~~~~~!
일년에 두차례. 여름과 겨울에 정진하는 하안거와 동안거 기간이 아니라 다행이다
싶을 만큼 조용하다.
妙寂庵(묘적암 ~ 묘하게 고요한 암자) 현판이 걸려 있는 바로아래 법당문이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가 참배를 하고 밖으로 나올려는데 마루 끝에서 인기척이 났다.
이름모를 보살님이 참배를 마치셨으면 점심공양이라도 하시고 가라신다.
가만히 시계를 보아하니 12시가 조금 지났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보살님을 따라
법당옆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에 젊은 비구스님이 한분 계셨는데
반갑다고 어서 오시라고 합장을 하신다.
합장하여 반배하고 한자리에 앉아 스님과 겸상을 여타 사찰에서는 보기드문 일...
죄송스럽고 황송한 마음인데 괜찮다고 하시면서 ~~~~~.
각별한 점심 공양과 후식과일까지 융숭한 대접을 받고도 법명을 묻지 못하고 돌아 온
것이 아쉬운 마음이다.
묘적암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상 스님께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하였다.
건물이 여러채가 있는것도 아니고 법당옆 작은 요사채건물인듯 한데 여기에 걸려있는
글귀 일묵여뢰(一默如雷) ~ '침묵은 우뢰와 같다" 는 뜻으로 유마경에 나오는 말이란다.
수행정진 하시는 스님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일반 인 들도 쓸데없이 많은 말을 하지
말라는 뜻도 담겨있는 것은 아닐런지.....
법당옆 축대위에 피어난 할미꽃 옛적에는 흔히 볼수 있는 꽃이지만 요즘에는
아무곳에서나 볼수 없는 귀한 꽃이 되었다.
할미꽃에 얽힌 이야기도 재미가 있는데~~~~~~~~~.
큰것 작은것 아기자기하게 법당뒤 한켠에 일년 아니 여러 해를 묘적암과 같이 하였을
장독들~~~~~~~~~.
아주 작은 산신각. 법당과 묘적암 전체 규모가 작은데 산신각이야 말 할것도
없지 않겠는가. 그래도 사불산(공덕산) 신령님이 뭇 중생을 돌봐주시겠지~~~.
내려오는 길 섶에는 이렇게 다람쥐들을 흔히 볼수가 있었으니 작은 산 짐승들의
낙원인가 ~~~~~~.
내려오는 길에 부도전에 들러보았다.
왼쪽은 동봉당님의 부도 오른쪽 하얀부도는 동산당 일초선사 부도다.
오른쪽을 몇발짝 올라가보면 또 다른 부도가 자리하고 있다.
이것이 나옹선사의 부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안내판등은 전혀 없었다.
여기 이 우물 또한 나옹선사께서 사용하던 석간수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깨끗하게 정리하여 누구나 먹을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 물 맛이 시원하였다.
이 불상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대승사마애여래좌상" 인데 묘적암을 가는
길목 우측 자연암벽에 새겨져 있고 조성년대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한단다.
또한 어느 님들은 나옹화상이 조성하였다고도 하나 정확한 근거는 알수가 없다.
(20100429)
(나옹선사 (懶翁禪師 1320 ~ 1376)는 고려 말기의 고승으로 휘는 혜근(慧勤),
호는 나옹(懶翁), 본 이름은 원혜(元慧)이다.
속성은 아(牙)씨인데 고려 말 예주부(지금의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
에서 출생했다. 그는 원나라 유학을 했고 인도의 고승 지공스님의 제자로서
인도불교를 한국불교로 승화시킨 역사적 인물로서 조선태조(朝鮮太祖)의
왕사였던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스승이다.~ 옮긴 글)
첫댓글 언제단녀가셔나요 우리땅 지나가실때 보고해야합니다 참좋은사찰이지요 묘적암에 오시면 마음부터 달라집니다
다음부터 지나갈때 신고 하고 가겠습니다 남기신 맑고 고운 향기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