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寺院
강해림
벌떼들 잉잉대는 지리산 노고단을 오른다 오르기에만 급급한 마음 두 어깨가 무거워 바라보는 화엄의 누각, 무엇을 얻고 잃은 것인지 저 속수무책의 마음 나란히 흐를 수 있다면, 빚진 몸 하나 뜯겨나가는 줄 모르는 뭉클한 세월 빈 그루터기에 앉아 내려놓는 헛된 휴식이여
더러는 산허리쯤 걸려서 저 산 아래 소식도 끊고 새털 같은 마음도 끊어, 면벽불와 스승의 옷자락 같은 참회의 물계단 망연히 걸어가고픈 허한 속이여 저 홀로 속고 속아서 더 깊이 흐를 수 있다면
나 들어가 살만하면 등 떠밀던, 저 무심(無心)의 엷은 무늬들 사는 빈집
출전 : 시집『구름 寺院』(2001, 현대시)
《작품 해설》“노고단”은 지리산의 세 번째 봉우리이자 백두대간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머무는 곳이다.「구름 寺院」이란 시 제목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사찰, 혹은 인간의 집을 넘어선 자연의 성전(聖殿)을 떠올리게 한다. 노고단 위로 늘 감도는 구름의 바다는 장엄한 법문이다. 바위는 기둥이 되고, 바람은 목탁이 되고, 천왕봉 붉은 노을은 “화엄 누각”이 된다. 탁 트인 봄날 능선에 핀 산나리 군락에 “벌떼들 잉잉대는” 날갯짓 소리는, 얼마나 시적인가! 은은하면서도 고결한 자태를 지닌, 바람에 흔들리든 그 순순한 산나리 꽃대는, 얼마나 “뭉클”한가. 강해림(1954~, 대구 출생)의「구름 寺院」은, 속세의 번뇌를 내려놓는 기도처럼 읽힌다. “더러는 산허리쯤 걸려서 저 산 아래 소식도 끊고 새털 같은 마음도 끊어, 면벽불와 스승의 옷자락 같은 참회의 물계단 망연히 걸어가고픈”, 대자유의 길처럼 보인다. 그녀의 구도(求道)는, 집을 떠나야만 길을 얻는 고행의 정신이다. 시는 홀로 서는 방식이며, 존재의 고통과 첨예하게 맞서는 수행이다. 강해림의 시가 “무심(無心”의 “빈집”인 까닭은, 꺼지지 않는 불의 욕망이 있고, 자유로운 영혼이기에 가능하다. 그 장엄한 상상력의 분출은, 오로지 참된 자아를 향한 시 정신의 산물일 터이다. 그녀가 추구하는 시적 주체는, 시간과 기억의 “무늬”를 공(空)의 시법으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은폐된 “세월”의 “빈 그루터기에 앉아”, 잠시 “헛된” 이승을 돌아보는 묵상이다. 궁극에 강해림의 ‘빈집’은, 구름 사원에서 시도(詩道)를 찾는 일이다. 고뇌와 슬픔이 바람에 흩어지는 산 구름처럼, “허허”로운 울림과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의 몸은 그 자체가 법당이며, 탑이며, 사원(寺院)인 셈이다. 언젠가 사라지는 몸은, 생사에 머물다 가는 ‘구름 사원’인 셈이다. 김상환의 평처럼, 그녀 시의 “현상은 구름처럼 시시각각으로 변하지만, 본질은 불변함이 아닐까?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시가 다름 아닌 ‘말과 글의 사원’이라면, 사원의 정적과 고요, 비의(秘意)와 순수를 찾는 마음, 바로 그것일 수 있다.「구름 寺院」은 예의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며, 그 미적 실현을 꾀한 화두이다.”(김동원 시인·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