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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 114편1~8절
제목 : 출애굽의 찬미
출애굽 때의 여호와의 능력을 찬미하며,
이로서 바벨론에서 해방되는 백성을 격려합니다.
아름다운 서정시로 단테가 이를 애송하고, 그의 신곡에 응용하였다고 합니다.
70인역에는 다음 편과 합쳐 있습니다.
내용은 1~2절 이스라엘이 주의 성소가 됨,
3~6절 홍해와 요단강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7~8절 이런 주 앞에 두려워 떨 것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1. 출애굽으로 이스라엘이 주의 성소가 됨(1~2절)
“[1]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2]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1)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1]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때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 70인역(LXX)은 이 부분을 '엔 엑소도 이스라엘'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 뜻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시에'가 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출애굽과 바벧론에서의 귀환은
쌍벽을 이루는 주요한 사건으로서,
이는 그리스도를 통한 전 인류의 구속을 예표합니다.
따라서 출애굽 사건은 구약 신학의 주된 대상이 되고 있으며,
시편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이런 점에서 어떤 학자는 출애굽을,
언약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탄생이라고까지 합니다(Kirkpatrick).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때에 - 전반절과 대구를 이루는 이 어구(語句) 역시 출애굽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야곱의 집'이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환유법적 표현으로서
흔히 '이스라엘 집'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언어가 다른 민족' 이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백성'을 뜻하지만,
칼빈(Calvin)은 이를 '야만적인 백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칠십인역(LXX)은 이를 '바르바루'로 번역하여 칼빈의 번역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애굽은 당시 최고로 번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가리켜 야만적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고,
아마도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애굽인들의 가혹한 행위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Parkhurst).
언어가 다른 민족이란 성경에서 가끔 적대적인 민족을 가리키기도 합니다(사 28:11; 렘 5:15).
2)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2절)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 어떤 이는 이곳의 유다가 솔로몬 사후(死後) 분열된 남쪽 유다 왕국을 가리키고,
다음 어구의 이스라엘의 북쪽 이스라엘 왕궁을 가리킨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출애굽 사건을 노래하고 있으므로 약 300년 후에 일어날 사건과 이것을 결부시킨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부적절한 해석입니다.
또한 어떤 이는 그 당시 유다 지파가 하나님 섬기는 일을 위임받았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어구가 다음 어구인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란 말씀과 대
구를 이루며 같은 개념을 반복 표현한 내용이란 점에서 이곳의 유다를 유다 지파 하나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은 부적절한 해석입니다.
이는 솔로몬 이후의 북쪽 이스라엘을 가리켜 '에브라임'이라고 지칭한 것과 같이,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그 당시 유다는 모든 지파들 중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었고,
또 가장 강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유다 지파의 지역에 보존되어 있었다는 점과
신약적 관점에서 메시야가 유다 지파에서 나온다는 점도 이런 관점을 뒷받침합니다.
한편 '성소'를 뜻하는 '카데쉬'는 거룩한 장소나,
거룩한 사물을 가리킬 때 흔히 쓰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족속으로 삼아,
거룩한 통치가 임하도록 하셨음을 뜻합니다(Anderson, Mowinckel).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 때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휘장을 만들어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출 26:31-37).
그리고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이라 불리웠습니다(사 52:1).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흔히 가리키는 바, 시108:7에는 '하나님이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란 말씀이 있는데 이는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시행하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유다를 하나님의 성소로 삼는다는 것에는 오래 전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신다는 개념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2. 홍해와 요단강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3~6절)
“[3]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4]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5]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6]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
1)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3절)
(1)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직역하면 '그 바다는 보았고 그리고 달아났다'입니다.
여기서 '바다'는 홍해를 가리킵니다.
홍해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갈라져 그들을 건너게 하였습니다.
*출14:21~28절 “[21]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22]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23]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24]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25]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26]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27]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28]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2) 요단은 물러갔음.
요단강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흐르기를 멈추고 역시 길을 내었던 것입니다
*수3:11~17절 “[11]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12]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13]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14]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15]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16]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17]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1절의 두 평행 어구와 2절의 두 평행 어구가 동일한 내용을 재차 반복하여 표현한 것임을 감안한다면, 이것 역시 전반절의 내용을 반복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홍해를 건넌 사건과 요단을 건넌 사건은 둘 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또한 가나안을 목적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이 둘이 대구를 이룰 만한 동일한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광야의 모든 난관들을 만나기 전에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인자를 체험함이 필요하였던 고로,
하나님께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신 기적을 보이셨고,
또 가나안 정복의 어려운 일을 당하기 전에도 그런 체험이 필요하였던 고로,
다시 요단강을 육지 같이 건너는 체험을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2)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4절)
*이 귀절은,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에 땅이 진동하고 연기가 떠 오른 사실을 염두에 둔 말씀입니다(출 19장 참조).
그 때에 대자연도 하나님의 장엄하신 임재에 대하여 경외(敬畏)를 표하여,
임금의 행차에 예포를 터뜨리듯이 불과 연기로써 그의 장엄을 축하한 것입니다. 이 자연계의 약동은, 조물주의 초자연적 위세와 능력에 끌리어 나타난 진동입니다. 쇠가 자석(磁石)에 끌리움 같이, 대자연은,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동(動)합니다.
산들은 수양 같이 뛰놀며 - 이는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법이 주어질 때 일어난 지진을 시적인 기교로 묘사한 것입니다(출19:18).
*출19: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여기서 '뛰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카드'는 짐승이 '깡총깡총 뛰다', '춤추다'라는 의미입니다(사 13:21).
작은 산들은 어린 양같이 뛰었도다 - 이것 역시, 하나님의 거룩하신 위엄 앞에서는 산들도 떨면서 굴복한다는 뜻입니다.
진동하는 산들의 모양이 수양이나 어린 양들이 뛰노는 것 같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작은 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브아' 는 '언덕'이란 뜻으로서,
작은 도시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3)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찜이며, 산들아 숫양과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5~6절)
“[5]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6]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찜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 3절과 4절에 '바다-산'의 비유가 쓰였던 것과 똑같이,
5절과 6절에 다시 '바다-산'의 비유가 나타납니다.
스스로 지혜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사역을 망각하는 사람들은
자연의 이러한 엄청난 변화를 보고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비록 이 시가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는 하나, 하나님의 명령 없이,
요단 강의 물이 저절로 물러설 수 없다는 점에서,
이는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재촉하는 노래인 것입니다.
“[6]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
- 4절 내용의 반복입니다.
기자가 이렇듯 반복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이유는 구속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와 권능을 강조하여 언급함으로써,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경배케 하기 위함입니다.
자문 자답식으로 뜻을 강조하며, 또 시적표현도 극치에 달합니다.
홍해나 요단강, 또 시내산 등 자연을 의인화하여,
사람에게 하듯 질문하고, 독자로 스스로 대답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홍해가 도망함이 어찜이냐,
여호와를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며,
요단강이 물러감은 어찜이냐,
여호와의 명에 순종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또 시내산이 수양과 어린 양같이 뛰논 것이 어찜이냐,
여호와의 임재에 두려워함이 아니었던가 하는 것입니다.
3. 주 앞에 두려워할 것(7~8절)
“[7]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8]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1)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7절)
앞 두 구절에서 시인은 산과 바다의 동요가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질문하였습니다.
그리고 본절에 와서 그는 땅을 의인화시켜서 자신의 질문에 대해 답합니다.
한편 '떨지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훌리'인데 어떤 주석가들은 고대 역본의 예를 들어 이를 과거 완료형으로 보고 '땅이 떨었다'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거 완료형이라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해석하고 있는 바와 같이 명령형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상 '떤다'는 전능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임하심을 감당할 수 없이 떤다는 의미입니다(계 20:11 참조).
영역본 NEB의 경우는 하나님의 임재와 강림을 땅이 즐거워한다는 의미에서,
'춤추다'(dance)로 번역하였습니다.
물론 히브리어 '훌'은 '춤추다'는 의미도 지닙니다.
그러나 문맥상으로는 오히려 '떨다'가 무난합니다(Tremble, KJV, NIV, RSV).
한편 여기에는 하나님을 '주' 곧 '아돈'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땅의 소유주이며 세상 만물의 주인이심을 뜻합니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요단강을 건널 때에는 여호와 하나님은
이 '아돈'이란 말로 호칭되었습니다(수 3:11, 13).
2)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8절)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 이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방황할 때 반석에서 물을 내신 하나님의 또 다른 이적을 찬양하는 부분입니다(출 17:6).
이스라엘 자손이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백성들은 물이 없어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출17:1~7 “[1]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2]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3]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4]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5]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6]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7]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이것은 돌이 물로 변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돌에서 물이 나왔음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차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할라미쉬'인데,
신명기에서는 '굳은 반석'으로 번역되었습니다(신8:15;32:13).
[여호와를 잊지 말라]
신8:11~20절 “[11]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12]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13]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14]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15]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16]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17]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18]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19]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20]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신32:13 “[13]여호와께서 그가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14]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
그런데 이처럼 출애굽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하나님의 기적은 오늘날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게 하심으로,
애굽과 같은 세상을 떠나게 하시며,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의 생명수를 공급하여 주고 계신 것입니다.
*고전 10:1-4 “[1]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2]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3]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4]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출애굽의 찬미의 시를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전능하심과 전지하심과 사랑하심을 잊지 말고 하나님만 경외하며 섬김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누리며 사는 우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