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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_여자의_바다[1]- 유승우 교수의 내 시에 대.hwp
그 여자의 바다
김명숙
바다가 길을 내어 놓는다
포구를 떠나간 사내가 돌아오지 않자
바다를 통째로 마시겠다던 그녀
사내를 기다리다 썰물이 되어 나섰다
바다 끝자락까지 가면 사내가 있을 것 같아
질퍽한 갯벌의 사타구니도 마다하고
수평선을 향해 내닫는다
바다만 바라보다 섬이 되고 팠던 여자
그 사내에게만 치마를 벗고 싶었던 여자
덕지덕지 바위에 붙어 있는 따개비 같은 상처가
그녀 안에서 구획을 넓혔다
뚝심 좋은 사내가 미끼를 던져도
아랫입술 질끈 깨물며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던 날들이
그녀 앞에 쌓여갔다, 깻단에서 깨 쏟아지듯.
섬을 떠난 그녀,
어부가 된 남자의 바다가 된다
강물, 둑에 이르다
김명숙
비오는 강에 갔습니다
강물이
가뭄에 줄어든 강폭을 점차 넓히며
허연 전갱이를 드러내놓고 있던 강둑을 향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쩌 억 쩍 갈라진 강바닥은 이내 피돌기가 돌고
목숨을 부지한 몇몇의 게들이
제 구멍 드나들며 부산을 떱니다
생기가 돈 풀잎들이 바람에 모로 눕다 다시 일어나고
술렁대는 갯벌을 다독이며
모든 것을 품어 안기 시작한 강은
가끔 생채기 난 갯벌의 앙탈에 못이기는 척
불어난 몸을 몇 번 뒤척이다가
강둑을 향해 나아갑니다
둑도 물이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물이 둑에 닿자
반가운 듯 찰랑찰랑 소리를 내는
물의 긴 허리를 감싸 안습니다
그런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나도 그 사람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봄밤
김명숙
느린 보폭으로 내려온 달이 흰 손을 내민다
달에 끌린 강이 손을 잡자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무수한 빛과 빛의 알갱이들이
물줄기를 흔들며 찰랑대는 그녀의 몸을 휩싸고 돈다
몸살 앓으며 뜨거운 가슴 여는 강
꼭꼭 여미어 가둔 가슴 속 봇물이
소리 내어 흐른다
둥두렷하게 떠오른 봄밤, 흰 달빛 아래
제 몸 다 드러내 놓고 흘러가는 강
환한 달이 강의 가슴에 뛰어들자
금침 펴들며 볼우물 가득 수줍게 웃는 그녀
그가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자
몸을 뒤척거리며
새벽을 건너가고 있다.
솟대
김명숙
우주목에 앉아
활주로 앞에 선 비행기처럼
하늘을 응시하는 새
새는 온몸으로 소리를 듣는다
풍년 들게 해달라고
만선 되어 돌아오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소리를 듣는다
기우는 해를 부리에 물고
날갯죽지에 힘을 뻗친다
지평선을 끊고
공중을 박차고 오른다, 솟구쳐 오른다
꿈꾸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으므로
새는 하늘을 향해 깃을 세우고
사람들은 꿈을 위해
지상에 안테나를 세운다
도꼬마리 씨앗
김명숙
길을 가다 도꼬마리 나무 곁을 지났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도꼬마리가
나에게 달라붙었다
떼 내려고 해도 잘 떨어지질 않았다
떼 내려 하자 거부하듯 가시로 손을 찔렀다
궁리를 거듭했지만
그럴수록 도꼬마리 씨앗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내칠 수 없으면 차라리 안고 가리라.
도꼬마리가 있는 것을 잊고자 하자
그제야 스르르 저절로 떨어진다
한 인연이 내게서
그렇게 툭 떨어져 나갔다.
물의 주름
김명숙
물도 주름이 있냐구요
구름이 바다를 딛고 건너가는
바다에 한번 나가 보면요
햇살 쨍하고 바람 없는 날은
어머니 입가의 미소처럼 잔잔한 잔주름이 일구요
바람 불고 비오는 날은
성난 아비 구리 빛 이마의 주름처럼 겹주름이 져요
주름이 보이지 않는 날도 있는데요
한 달에 두 번 조금 때가 되면 바닷물은 노동을 접어요
이때만큼은 당신, 바다에 배를 띄우지 마세요
우리도 때론 쉬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바닷물도 바다에 이르기까지
가파른 오르막길도 있었다는 걸 기억하세요
구겨진 날의 지나온 길,
자식에게 보이기 싫은 어미의 속내처럼
바닷물도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지 않겠어요
이때만큼은 지친 몸 잠시 놓아두고
백중에 머슴놀이처럼 홀가분하게 쉬도록 놔두자구요
조금 때가 되면 방방한 자세로 이마의 주름을 펴고 있지만
마냥 쉬고 있는 건만은 아니예요
살아온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당신의 가슴 열어 한 번도 내비치지 않던 어미의 모습처럼
걸어왔던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고개 묻고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흰 물뱀 한마리 키운다
김명숙
수도꼭지를 튼다
쏴쏴 호스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호스가 제멋대로 머리를 흔든다
흰 물뱀의 대가리.
평소에는 납작 엎드려 죽은 듯이 있다가도
내 손이 딸깍 닿기만 하면
고개 빳빳이 쳐들고 혀 날름거리며
반갑다는 듯 무섭게 소리를 낸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부끄러워 얼른 통 속으로 숨어버리는.
한 번도 저 스스로 똬리를 틀어본 적 없고
댓 자 남짓 흰 몸뚱이를 움직여
앞으로, 또는 뒤로 갈 줄도 모르는.
돌아갈 숲을 잊어버린 길들여진 고것은
내손이 닿기만 하면
독사가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조용한 밤
아무도 없는 욕실에서
쪼그리고 앉아 둘만이 나누는 은밀한 대화,
욕실 안이 환하다
오색쌈지
김명숙
돌아가신 어머니 꿈에 뵈질 않는다
의지하고 살던 외아들 품에서 운명하신 뒤
그날, 보이지 않는 바늘귀 꿰며
종일 바느질을 하셨다지
한 땀 한 땀 기우면서 무슨 생각 하셨을까
시린 바람 드나들던 구멍
촘촘히 꿰매고 있었는지 몰라
살아온 생을 다시 박음질하고 싶으셨을까
엉키면 끊어내야 풀리는 매듭
똑똑 끊어내며
이제 그만 고삐를 놓고 싶다고
줄을 놓아버리셨을까
툭, 끊어진 고무줄처럼
세상과 인연을 마치신 어머니
친구에게서 오색 반짇고리 세트를 선물로 받은 날,
꿈속의 어머니 웃고 계신다
봄 운주사
김 명숙
봄꽃이 벙근
운주사에 가면
꽃향기에 취해 길바닥에 주저앉은 돌부처가 있고
꽃향기를 하도 맡아 콧등이 문드러진 돌부처도 있고
꽃향기에 어지러워 산중턱에 드러누운 와불도 있고.
화답(和答)
김 명숙
꽃잎 날리듯 가랑가랑 눈이 내리는 겨울밤,
소일거리 없는 사내들이 이른 저녁상을 물리고
무장 심심하여 암내 맡은 고양이들처럼
슬금슬금 박가네 골방에 모여들어 화투판을 벌인다
너 댓 번 돌아간 화투판 열기는 금세 달궈지고
입이 심심해진 사내의 걸쭉한 농짓거리가
웃음소리와 섞여 담을 넘는다
천연덕스럽게 내뱉은 사내의 짙은 농에
마당가에 소복이 눈을 맞고 있던 동백이
늦 눈 녹아 질척거리듯 아랫도리가 가려워 와
얼결에 부풀어 오른 꽃잎을 잠깐 열었다 도로 닫고
정지문 열어 제치는 마른 기침소리에
누군가 넌지시 건너다보고 있었음인지
희미한 그림자 눈밭 속에 숨어든다.
김명숙 시인의 시 세계
물의 시, 여체의 노래
유 승 우(시인, 문학박사, 한국현대시인협회장, 인천대 명예교수)
몸은 ‘모으다’라는 타동사에서 온 전성명사이다. 다시 말하면 <모으다→모음→몸>이라는 변화의 과정을 거쳐 전성된 명사이다. 타동사는 ‘무엇을’이라는 목적어를 취해야 의미가 완성된다. 그러니까 무엇과 무엇을 모은 것이 몸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무엇과 무엇을 모은 것이 몸인가. 그것은 <육체+영혼=몸>이라는 것이 정답이다. 그래서 몸은 육체도 아니고 영혼도 아니다. 몸은 곧 인간존재를 의미하는 낱말인 것이다.
몸은 곧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몸이라는 말은 사람에게만 쓰인다. ‘돼지를 잘 먹였더니 몸이 좋아졌다’라고 쓰지는 않는다. 동물은 육체만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육체만의 존재는 육감(肉感)으로 살고, 사람은 육감과 함께 영감(靈感)으로 산다. 사람은 ‘살다’라는 동사에서 전성된 명사이다. 곧 <살다→살음→삶→사람>이라는 과정을 거쳐 전성된 명사이다. 이것은 살아 있어야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개나 돼지는 살아서 뛰어다녀도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이 살아 있어야 사람이 되는가. 그것이 바로 영혼이며, 이 영혼을 살리는 것이 곧 영감이다.
자연은 스스로 있는 것이다. 사람이 만들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래서 자연은 완성품이다. 개의 새끼는 강아지이고, 소의 새끼는 송아지이다. 강아지나 송아지는 아무리 잘 키워도 개나 소 이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개나 소로서 완성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무엇인가가 되어야 할 미완성품이다. 사람도 육체는 자연이다. 그래서 육체가 살아 있다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육체만 가지고는 사람 곧 몸이 될 수 없다. 육체나 영혼이나 살아 있는 것은 느낌(感)과 움직임(動)이 있어야 한다.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육감으로만 사는 동물도 육체에 자극을 주면 그 반응으로 느낌과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는 동물의 육체와 다르다. 인간의 육체는 영혼과 함께하는 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육체의 자극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영혼에까지 그 감동이 전달되고, 영혼의 자극도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육체의 모세혈관에까지 그 감동이 전달된다.
그래서 인간을 가리켜 신비한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미완성의 존재이기 때문에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고, 마려우면 싸야 하는 동물적 삶으로 끝나고 만다. 인간은 신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끝낼 수가 없다. 인간은 예술가의 운명을 타고났다. 예술(藝術)의 예(藝)자는 ‘사람이 나무를 심는 모습을 상형해서 만든 글자’라고 한다. 사람은 하나의 씨앗일 뿐이다. 나무를 심는 것은 곧 씨앗을 심는 것이다. 그 씨앗이 어떤 나무가 되어 어떤 열매를 맺을 지는 그 사람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 상상(想像)은 우리말로 ‘그리다’이다. 미완성이라기보다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무언가가 되기 위해 그리는 것이 상상이다. 그래서 상상은 예술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내가 처음 김명숙 시인의 작품을 대했을 때, 말을 다듬는 표현의 솜씨는 세련되지 못했지만 그의 작품엔 무언가 신비한 울림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일까. 영감(靈感)의 울림이다. 천재는 99프로의 노력과 1프로의 영감이라고 한다. 모든 예술가는 작품을 위해 열심히 작업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마지막 1프로의 영감이 없으면 그 노력이 육체의 고달픔으로 끝나고 만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영감이 있다. 예술가는 이 영감의 1프로만으로 천재가 된다. 이 1프로의 영감을 살리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상상의 우리말은 ‘그리다’이다. 언제 상상력이 활동하는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없음(無)’이라고 느낄 때 상상력은 활동한다. 사춘기가 지나고서도 연인이 없을 때 남자는 여인상을 그리고, 여자는 남성상을 그린다. 부모가 없는 고아는 부모의 얼굴만 그리며 산다. 눈으로 볼 수 있게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속으로만 그리면 그리움이 된다. 그리움은 곧 사랑이다. 인생은 영원히 미완성이기 때문에 언제나 그리움 속에 산다. 그래서 예술가는 영원히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다. 가슴속에 영원한 그리움을 품고 산다. 이 그리움이 곧 1프로의 영감이다. 김명숙 시인의 시에는 이 영감의 신비한 울림이 있다.
인간은 참으로 신비한 존재이다. 몸으로 쓴 시에서는 인간존재의 신비한 울림이 있다. 이 신비한 울림은 꾸며서 하는 일이 아니다. 인간존재의 원형에서 나오는 바이오리듬이다. 하늘은 남자, 땅은 여자를 비유하는 것은 원형상징이다. 땅은 육체, 하늘은 영혼, 물은 여자, 불은 남자로 비유하는 것도 원형상징이다.
바다 끝자락까지 가면 사내가 있을 것 같아
질퍽한 갯벌의 사타구니도 마다하고
수평선을 향해 내닫는다
-<그녀의 바다>에서.
둑도 물이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물이 둑에 닿자
반가운 듯 찰랑찰랑 소리를 내는
물의 긴 허리를 감싸 안습니다.
-<강물 둑에 이르다>에서.
달에 끌린 강이 손을 잡자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무수한 빛과 빛의 알갱이들이
물줄기를 흔들며 찰랑대는 그녀의 몸을 휩싸고 돈다
-<봄밤>에서.
물은 여성과 육체를 상징한다. 육체는 거짓을 모른다. 작은 가시만 박혀도 그냥 지낼 수가 없다. 그러나 정신은 다르다. 속에는 비수를 숨기고도 양의 탈을 쓰고 위선의 춤사위로 거짓을 폴폴 날린다. 물은 살아 있다. 그 자체가 생동이며, 감동이다. 김명숙 시인의 시는 물의 시이며, 여체의 노래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물이 둑에 닿자’ 같은 표현은 육감적인 촉각적 이미지다. 촉각적 이미지를 대표하는 말이 ‘닿다’이다.
김명숙 시인의 시는 몸으로 쓴 시이다. 육체로 쓴 시도 아니고, 정신으로만 쓴 시도 아니다. 정신으로만 쓰는 시는 공허한 관념의 놀이가 되고, 육체로 쓴 시는 말초신경의 자극을 일삼는다. 그러나 몸으로 쓴 시는 생명 자체의 노래이며, 신비한 영감의 울림으로 전해온다.
김명숙 시인은 몸으로 시를 쓰기 때문에 공자의 말대로 즐거우나 음란에 빠지지 않는다.(樂而不淫) 몸은 육체도 아니고, 영혼도 아닌 생명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솟대>나 <봄 운주사> 같은 작품은 종교적인 제재를 다루면서도 시적 형상화에 성공한 절창이다. <물의 주름>이나 <나는 흰 물뱀 한 마리 키운다> 같은 작품은 생명감의 절정이다.
참으로 좋은 시인을 알게 된 것이 기쁘다. 둑이 물을 반기듯이 시인은 좋은 시를 만나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김명숙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오래간 만에 시를 읽는 즐거움에 빠졌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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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육체도 정신도 아닌 몸으로 쓴 시다.에 공감하며.....너의 시를 보며 너의 어릴적 모습을 떠 올려보곤 했다.축하한다.
ㅎㅎ/ 어릴적 모습이라..흰카라에 단발머리...그때가 그립다. 친구야~~축하해 주어 고맙다..좋은 하루 열어 가렴. 안녕.
문학상 수상 축하하며 좋은 작품과 해설 잘 읽었습니다.. 더 큰 영광과 건필 기원합니다 ^^
고맙습니다. 유영애 시인님1 유시인님도 좋은 글 많이 쓰시고 더욱 더 사랑받는 가곡 많이 쓰십시오!^*^
시 한편 한편이 감동입니다 시평또한 시인의 마음을 꿰뚤어 보고있어 영혼의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목련화님! 좋은시 잘 감상하고 허낙도없이 스크랩/해 감니다 ,고흥 도덕면 도덕초등(도양동교)학교 26회에서.....율동 박병삼.....?
오랫만이네..부족한 글을...고맙네...오늘 명희 아들 결혼식에서 만날 수 있으려나?
목련화님!! 시인님의 글을 감상하려니 글속에 내맘이 푹~~~~빠져듭니다 축하합니다~~
멋진 詩 입니다. 오금이 저릴정도로..
감사합니다. 부족한 시를 잘 봐 주셔서...^*^
버다와 여인,사랑이 느껴지는 시였습니다.
시를 감상하고서 바다에 가고 싶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다가 쓴 물결의 편지를 읽고 사는 섬에도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마워요. 비가 오네요.비오는 날 바다를 보러가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
이런 날은 환절기라서 감기 걸리기 딱 좋으니 건강관리 잘하십시오.^^*
물과.봄을노래하고옛추억이
새롭게기억나네요ㅇ어머니의모습이생각남니다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