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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지 : 고치령~죽령
◇ 산 행 코 스 : 고치령-마당치-늦은맥이 재-상월봉
국망봉-비로봉-연화봉-천문대-죽령
(약 25km 11시간)
◇ 산행출발일 / 시간
ㆍ산행일 : 2024년 월 일(일요일)
ㆍ출발일 / 시간 : 2024년 월 일 :
ㆍ출발장소 : 안동시청 앞
ㆍ차량경유 : 시청-서부초등학교-옥동(던킨 앞)
◇ 준비물 : 중식ㆍ간식ㆍ식수(충분히) 기타 안전산
행에 필요한 개인장비(스패츠ㆍ스틱ㆍ보 온용 여벌옷ㆍ 헤드랜턴ㆍ예비 배터리
아이젠 등)
◇ 회 비 : 60,000원
계좌 : 농협 739-02-165350 김신자
※ 안동산맥산악회에서는 차내 또는 현장에서 산행비
를 현금으로 받지 않습니다. 원활한 준비를 위해 반 드시 계좌로 선입금 부탁드립니다.
입금된 회비는 환불되지 않으며 사정상 산행이 불
가할 시 산행 2일 전에 연락 주시면 1회에 한하여
다음달로 이월하며 그달도 불참시 해당 회비는 본
산악회로 귀속 됩니다.
◇ 연 락 처
ㆍ회 장 : 강순구 010ㆍ3508ㆍ2033
ㆍ사무국장 : 김규상 010ㆍ6535ㆍ2572
ㆍ총 무 : 김신자 010ㆍ9311ㆍ4972
ㆍ산행팀
ㆍ산행대장 : 장재호 010ㆍ5270ㆍ4422
천성기 010ㆍ3522ㆍ7336
윤창식 010ㆍ8242ㆍ0130
◇ 주요 산행지 소개
고치령(古峙嶺·770m)
선달산(先達山·1236m) 구간 서쪽에 자리한 고치령(古峙嶺·770m)은 동국여지승람 영천군 산 천조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등에 의하면, ‘관적령(串赤嶺)’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고치령의 소리 옮김 표기로서, 같은 이름이라 생각된다. 串의 음 ‘곶’과, 赤의 일음(一音) ‘치’로 소리옮김한 곶치령→고치령으로 보인다.
국토지리원 자료에 古峙(옛 고개)로 기록 되어 있는 고치령을 양백지간(兩白之間) 또는 "고치재"로 부르기도 한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를 가로 지르는 고치령은 조선중엽 때 까지만 하더라도 죽령 다음으로 중요한 고개였던 것으로 보이나 세조에 의해 유배당한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던 이 곳 사람들의 노력이 발각되어 폐쇄되었다는 설도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영월 땅으로 유배되었던 단종이 어느 날 하얀 도포차림에 말을 타고 고치령을 넘어가고 있었다. 단종에게 "어디를 가느냐" 물어보는 백성들에게 단종이 답하기를 "태백산"에 놀러간다고 하였다. 이 날 오후 단종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단종의 혼백이 태백산으로 들어가 태백의 산신이 되었고 그의 숙부였던 금성대군은 소백의 산신이 되었다고 힌다. 이 고장 사람들은 양백지간인 이곳 고치재에단종과 금성대군을 위해 산신각을 짓고 매년 정월14일에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마당치
마당치는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서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를 잇는 고개로,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1,439.5m]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횡단하는 고개이다. [명칭 유래] 마당치는 과거 신라시대에 군마를 기르던 곳이라 하여 ‘마당모기’ 또는 ‘마당재’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자연환경] 마당치 남쪽의 유역분지를 흐르는 사천은 단산저수지에 유입한 뒤 다시 빠져나와 죽계천에 유입한다. 또한, 마당치에서 북동쪽으로 발달한 마락천 수계는 북북동쪽으로 흘러 마포천에 유입한다. 한편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에서는 남천이 발원하여 남한강으로 유입한다. 마당치 일대의 지질은 선캄브리아기의 미그마타이트질 편마암과 호상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서쪽 일부 능선은 선캄브리아기 율리층군 점선리층 흑은모 편암류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마당치로 향하는 등산로는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의 단산저수지 상류부에 있는 좌석탐방지원센터에서 사천을 따라 올라가는데, 연화동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연화삼거리에 도달하여 북동쪽 능선을 따라 걸으면 마당치가 나온다. 마당치에서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면 칼바위와 고치령, 마구령까지 이어진다.
늦은맥이 재(1,260m)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관련항목 보기와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를 연결하는 고개. [개설] 늦은맥이재[1,260m]는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서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1,439.5m]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비로봉-국망봉[1420.8m]-상월봉[1,396m]-늦은맥이재로 이어진다. [자연환경] 늦은맥이재에서 세 방향으로 능선이 갈라진다. 비로봉으로 향하는 남서쪽 능선은 상월봉과 국망봉을 지나 비로봉까지 이어지고 다시 제1연화봉과 연화봉[1,394m]까지 뻗어있다. 늦은맥이재의 북서쪽 능선은 바둑판바위를 지나 신선봉과 민봉으로 이어져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의 덕절문봉까지 연결된다. 늦은맥이재 일대의 지질은 선캄브리아기의 반상변정질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능선에 따라 지질 구조가 달라진다. 남서쪽 능선은 선캄브리아기 흑운모 화강암질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북서쪽 능선은 선캄브리아기의 흑운모 화강암질 편마암 및 화강암질 편마암이 나타나지만 덕절문봉 인근에서부터는 고생대 캄브리아기 양덕층군 장산규암층과 조선계 대석회암층군 풍촌석회암층으로 지질이 변화하며 경사 급변점이 나타난다. 한편 동쪽 능선은 시대 미상의 페그마타이트질 미그마타이트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늦은맥이재로 향하는 등산 코스는 순흥면 배점리에서 석륜암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있다. 등산로의 초입에 탐방지원센터가 있으며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죽계구곡과 초암사, 석륜암계곡 등 다양한 볼거리가 나타나며, 돼지바위 인근에서 북동쪽 능선을 타고 이동하면 국망봉을 지나 늦은맥이재에 도달하게 된다.
상월봉(上月峰 1,396m)
상월봉(上月峰1,396m)은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 사이에 있는 봉우리이다. [명칭 유래] 상월봉 밑에 있는 주먹바위는 구인사를 창건한 승려 상월이 도를 깨우쳤다 하여 ‘상월불(上月佛)바위’라고도 부르는데 이 상월불바위가 있어 ‘상월봉’이라 하였다. [자연환경] 상월봉은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1,439.5m]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자리한 봉우리로, 상월봉과 비로봉 사이에는 국망봉[1420.8m]이 있다. 상월봉의 북쪽 능선은 늦은맥이재[1,260m], 칼바위, 고치령까지 이어지며, 동쪽 능선은 비교적 낮은 참신내기재[750m]로 뻗어있다. 상월봉의 남쪽에는 두 개의 골짜기가 있는데 하나는 북간터골이고, 다른 하나는 석천폭포골이다. 이 골짜기들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은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에 있는 순흥저수지로 유입한다. 석천폭포골을 따라 흐르는 계곡에는 석천폭포가 나타난다. 상월봉의 정상부에는 매우 가파르고 뾰족한 형태로 발달한 크고 작은 암석들이 노출되어 있는데, 주요 지질은 선캄브리아기의 변정질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북쪽과 동쪽 능선 그리고 남쪽의 골짜기들도 선캄브리아기의 변정질 편마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황] 상월봉으로 향하는 주요 등산로는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의 점마마을에서 석천폭포골을 따라 올라가는 코스이다. 상월봉 정상에서는 신선봉, 형제봉[1,177m], 국망봉과 같은 소백산의 주봉들을 조망할 수 있고, 남동쪽에 자리 잡은 순흥면 배점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상월봉 남쪽에 있는 바위에는 ‘상월불’이라는 글자가 있는 상월불바위가 있다.
국망봉(國望峰 1420.8m)
국망봉(國望峰 1,420.8m)은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 북동쪽 능선에 있다. 신라 마의태자와 조선시대 배순(裵純)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며, 특별보호구로 지정된 북간터골이 있다. [명칭 유래] 『여지도서』 「영춘현」에 의하면, “소백산은 현 동쪽 40리에 있다. 강원도 강릉 오대산으로부터 뻗어 나와, 경상도 순흥부와의 경계를 이룬다. 수많은 산줄기와 산기슭을 품고 있는데, 소백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국망봉이다.”라고 수록하고 있어 ‘국망봉’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난다. 『1872년 지방지도』「순흥부지도」에는 읍치 북쪽 영춘현과 경계에 국망봉이 표기되어 있다. 국망봉에는 마의태자와 관련된 지명 유래가 전해진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56대 경순왕의 왕자 마의태자가 신라를 회복하려다 실패하자 망국의 한을 달래며 개골산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 올라 멀리 옛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이곳을 ‘국망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국망봉에는 충신이자 효자인 배순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배순은 대장간을 차려놓고 좋은 물건을 만들었고, 행실이 착하고 부모와 조상에 대한 정성이 지극하였다. 당시 소수서원을 창건할 때 배순이 철물을 정성껏 공급하여 지역 유림사회로부터 칭찬이 자자하였고, 퇴계 이황이 직접 칭찬할 정도였다고 한다. 배순은 이황이 죽고 난 뒤 쇳곳[鐵]으로 상(像)을 만들고 삼년복(三年服)을 입었으며 선조가 세상을 떠나자 매 삭망(朔望)에 정성 들여 음식을 장만하고 뒷산에 올라 북쪽 궁궐을 향해 3년간 곡제사(哭祭祀)를 지냈다. 이후 배순에 대한 소식이 궁 안에까지 들리자 나라에서 정려를 내리게 되었다. 당시 궁궐을 바라보며 곡을 했다는 산을 후에 사람들이 ‘국망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환경] 국망봉은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있는 봉우리이다. 국망봉의 북동쪽으로는 상월봉[1,396m]과 늦은맥이재[1,260m]까지 이어진다. 국망봉의 주요 지질은 선캄브리아기의 반상 변정질 편마암과 화강암질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상부에는 초원이 펼쳐지고 주봉은 암석으로 되어있다. 국망봉의 남동쪽은 가파른 계곡이 나타나며 이곳을 북간터골이라 부르며 특별보호구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서 발원한 하천은 계곡을 빠져나온 뒤 남쪽으로 흘러 순흥저수지로 유입한다. [현황] 국망봉으로 향하는 등산 코스는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에서 죽계구곡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 주요하다. 등산로 초입에 탐방지원센터가 있으며 1곡부터 9곡의 계곡이 발달하여 죽계구곡이라 불린다.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초암사가 나온다. 국망봉 아래 월명봉 동남쪽 기슭에 있는 성혈사에는 영주 성혈사 나한전[보물 제832호]이 있다. 나한전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단층 맞배지붕에 다포계 건물이며 연꽃과 봉황 등을 장식한 창호가 유명하다.
소백산 비로봉(小白山 毘盧峯 1,439.5m)
충북 단양군,경북 영주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겨울철이면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어 소백산이라고 불리우는 소백산은 봄철이면 광활한 능선은 온통 기화요초가 만발하며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 도솔봉 등 많은 영봉들을 거느리고 있다.죽계구곡과 연화봉에서 이어진 희방계곡, 북으로 흐르는 계곡들은 단양팔경의 절경이 되며, 계곡의 암벽사이는 희방폭포를 비롯한 많은 폭포가 있다.5-6월이면 철쭉군락, 여름에는 초원, 가을의 단풍, 겨울 눈꽃의 환상적인 자태 등 사계가 아름답다.소백산의 장관은 비로봉 서북쪽 1백m기슭의 주목군락(천연기념물 244호), 5-6m에 몇 아름씩되는 1만여평에 2백~6백년 수령의 주목 수천그루가 자생하며 한국산 에델바이스인 솜다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소백산은 천년고찰을 자락에 품고 있는 한국불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국망봉 아래 초암사, 비로봉 아래 비로사, 연화봉 아래 희방사, 산 동쪽의 부석사, 그중 구인사는 천태종의 본산으로 1945년에 개창되었으며, 높이 33m에 이르는 5층의 대법당을 비롯 연건평 3,000평이 넘는 대규모의 사찰이다.소백산에 진달래가 시들면 4월말부터 철쭉과 원추리 에델바이스 등이 잇달아 피어난다. 그래서 소백산은 봄이면 꽃이 피지 않는 날이 거의 없어 "천상의 화원"에 비유된다.소백산은 초원과 철쭉, 주목군락과 철쭉이 어우러진 철쭉명산이다. 정상 비로봉에서 동북쪽의 국망봉, 구인사 못미쳐 신선봉, 연화봉 등 능선을 따라 철쭉이 무리지어 피어있다. 희방사에서 오르는 연화봉은 철쭉능선이 수천평에 달하지만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살아 천년 죽어천년」을 간다는 주목숲과 어우러져있는 소백산 철쭉은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다. 비로봉일대는 천연기념물 제244호로 지정된 주목군락이 이들 불그스레한 철쭉꽃과 대조를 이뤄 더욱 장관이다. 소백산 철쭉은 5월말에 만개한다. 이 기간에 철쭉제가 열린다.소백산은 겨울이면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전개되는 대설원의 부드러움과 장쾌함이 돋보이는 겨울산의 대명사이다. 눈과 바람, 주목군락의 특이한 눈꽃은 다른 산에서는 보기 힘들다.주목단지와 능선에 늘어선 고사목에 눈꽃이 만발하여 멋진 설경을 자아낸다.북동에서 남서 방면으로 뻗어 내린 능선이 늘 북서풍을 맞받기 때문에 특히 상고대가 아름답기로 이름 났다.설화가 활짝 피면 벚꽃 터널을 방불케 한다. 천문대에서 제1연화봉으로 치닫는 길에 눈이 쌓여있으면 신나는 눈썰매를 즐길 수 있다.소백산은 주변의 산들이 낮고 소백산 만이 우뚝 솟아 겹겹이 싸인 능선 위로 솟아오르는 일출 장면 또한 속진에 물든 정신을 맑게 해준다.
연화봉(蓮花峰 1,394m)
연화봉(蓮花峰 1,394m)은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수철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천동리의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이다. 연화봉에서 북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약 1.5㎞ 위치에 제1연화봉[1,394.4m]이 솟아있고, 여기에서 북동쪽으로 약 2.3km 이동하면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1,439.5m]으로 이어진다. 연화봉에서 서남서쪽으로 약 1.8㎞ 떨어진 곳에 제2연화봉[1,357m]이 솟아있다. [명칭 유래] ‘연화봉’이라는 명칭은 전국 산지에서 종종 확인되는 이름으로, 이와 같은 이름은 산의 생김새가 연꽃처럼 생겼다 하여 유래한 경우가 많다. 소백산 연화봉의 경우 『재향지』의 희방용추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연화봉(蓮花峰) 아래에서 발원한다.”라 하여 산의 이름이 전해진다. [자연환경] 제1연화봉-연화봉-제2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대략 북동-남서 방향의 능선은 비교적 평평하여 기복이 작은 편으로 주로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일대의 주요 지질은 선캄브리아기의 흑운모 화강암질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동-남서 방향의 주능선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들은 약 2.3㎞ 지점부터 지질이 선캄브리아기의 미그마타이트질 편마암으로 변화한다. 제1연화봉은 정상부가 비교적 평평한 초원으로 펼쳐지며, 초본 식생 및 관목 식물들이 주로 자라고 있다. 제1연화봉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정안동계곡을 따라 풍기읍 삼가리로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으로 이어진다. 대강면의 선바위와 백자골을 지나면 단양군 단양읍 천동리가 나오는데, 여기에는 단양 사람들이 영주의 풍기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던 민백이재가 있다. 또 제1연화봉의 북동쪽에는 노랑무늬붓꽃 특별보호구역이 있다. 노랑무늬붓꽃은 백합목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4~5월 사이에 백색 바탕에 노란 줄무늬가 있는 꽃이 만개한다. 또 이 일대에는 소백산 원추리 군락지가 있어 8월 하순이면 원추리꽃이 한창이다. 연화봉 일대에는 소백산 철쭉 군락지가 펼쳐져 있어 매년 5월 영주소백산철쭉제가 열리며 다양한 행사가 함께 개최된다. 또한, 연화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희방계곡과 희방폭포가 나오며, 천년고찰인 희방사가 자리하고 있다. 연화봉의 서쪽 능선에는 소백산천문대가 자리하고 있다.
죽령(竹嶺 689m)
죽령은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에 있다. 소백산맥에 나란히 자리한 여기 죽령과 문경새재·추풍령을 일러, 영남과 기호지방을 통하는 관문의 삼형제라면 죽령은 바로 그 맏형격이다. 그 연대, 그 자리, 그 높이, 그 구실이 단연 으뜸인 때문이다.소백산 제2연화봉과 도솔봉이 이어지는 잘록한 지점에 자리한 해발 689m가 죽령이다. 삼국사기에 『아달라왕(阿達羅王) 5년(서기158년) 3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 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달라왕 5년에 竹竹이 죽령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사(殉死)했고,고개마루에는 죽죽을 제사하는 사당(竹竹祠)이 있다고 했다. 유구한 역사와 온갖 애환이 굽이굽이 서려있는 죽령은 삼국시대 한동안 고구려의 국경으로 신라와 대치, 삼국의 군사가 뒤엉켜 엎치락 뒤치락 불꽃튀는 격전장이기도 했다. 고구려가 죽령을 차지한 것은 장수왕 말년(서기 470년경) 신라 진흥왕 12년(서기 551년) 왕이 거칠부(居漆夫)등 여덟장수를 명하여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략, 죽령이북 열 고을을 탈취했으며, 그 40년 뒤인 영양왕 1년(서기 590년) 고구려 명장 온달(溫達)장군이 왕께 자청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가면서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등의 기록(삼국사기)으로 당시 죽령이 얼마나 막중한 요충이었음을 짐작할 만한 하다. 서기 1910년대까지도 경상도 동북지방 여러 고을이 서울 왕래에 모두 이길을 이용했기에, 청운의 뜻을 품은 과거선비, 공무를 띈 관원들이며, 온갖 물산을 유통하는 장사꾼들로 사시장철 번잡했던 이 고갯길에는 길손들의 숙식을 위한 객점, 마방들이 목목이 늘어 있었다. 장장 2천년 유구한 세월에 걸쳐 우리나라 동남지역 교통대동맥의 한 토막이었던 이 길은 근래 교통수단의 발달로 행객이 끊겨 수십년 숲덩굴에 묻혀 있었던 바, 이제 옛자취를 되살려 보존하는 뜻에서 '99. 5월 공공근로사업으로 이 길(2.5km)을 다시 열었고 '99. 8월 죽령 옛길 안내판(희방사역 및 죽령고개 2개)과 전설안내판(옛길 요소요소에 5개)을 설치하여 관광객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죽지령(竹旨嶺)의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죽지는 진덕여왕 대의 재상 술종(述宗)의 아들이다. 술종이 삭주(지금의 춘천)의 도독사로 부임하는 길에 죽령(삼국유사에는 죽지령이다)에서 한 거사(居士, 이 거사가 해동 고승 원측법사라는 설도 있다)를 만나 서로 정겹게 사귀고 헤어진 후, 삭주에서 꿈을 꾸었다. 죽령의 거사가 방안으로 들어오는 꿈이었으니 부인도 같은 꿈을 꾸었다. 술종이 죽령에 사람을 보내 알아본 즉 거사가 죽은 날이 바로 꿈을 꾼 날이었다. 이에 술종은 거사가 자기 집에 환생하였음을 굳게 믿었다. 마침내 아들이 태어나 이름을 죽지라 불렀다. 효소왕 때 화랑 득오(得烏)는 향가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를 후세에 남겼다.득오가 문관인 익선(益宣)에게 징발되어 고생할 적에 상관이었던 죽지를 그리며 지은 노래라 한다.
가는 봄이 그리워/ 모든 것이 서러워 우네/
아담한 얼굴에/ 주름살 지는 것을/
잠시 사이나마/ 만나 뵙게 되었으면/
님이여 그리운 마음으로 가시는 길/
쑥대마을에 자고 갈 밤 있으실까
◇ 산행지도 및 참고사진
안 동 산 맥 산 악 회 회 장 강 순 구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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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기
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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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교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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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신청합니다
신청~~
※백두대간 14차 산행신청명단 (존칭생략)※
1~10
김수자.신창훈.장재호.권기상.천성기
강순구.김장현.윤창식.서선교.김명숙
11~20
김영희.박경순.권순창.강수림.조춘섭
김명수.김신자.권창혁.오상봉.정광수
21~30
이정태.김은옥.류수기
※산행비이월&납입명단 (존칭생략)※
1~10
남경호.전중원.김명숙.천성기.권창혁
박경순.강순구.김수자.류수기.
감사합니다 ~~
권창혁님 신청
정광수 이정태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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