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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독립하기: 네 번째 만남
삶 나눔하면서 처음 뵙는 분들이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퍼머컬쳐 리스트인 소란님을 초대해 인생의 우연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전환마을에 대한 꿈을 키웠는지 청해 들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철학적 자세와 실용적 자세에 대한 지혜를 공유받은 것 같다.
공동체는 단순 주거 공동체에서부터 공동의 인생 프로젝트 개발을 함께하는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공동체 별로 개인 공간이나 다른 사회(?)로부터의 자율성 정도가 매우 다양하다보니 나는 어떤 공동체와 잘 맞을지 또 맞지 않는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늘 고민이 많다. 어떤 공동체의 설립과정에서부터 내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진입하게 되는 공동체가 중시하는 문화나 정치적 이상이 무엇인지 잘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그 이상이라는 우산 아래 모였다 하더라도 분명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며, 그런 갈등을 완화하고 관리하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리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다. 네 번째 만남은 이런 의문과 갈증들을 해소하는데 어느 정도 밑거름이 되어준 시간이었다.
소란님의 삶과 퍼머컬쳐리스트로서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생태공동체를 이루고 그 공동체의 물리적 자원을 관리하고 공동체를 보전하고 재생산하는데 기여하는 과정, 믿음, 규범을 확립해 가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어떻게 물리적 토대를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이상과 규범의 균형을 형성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들을 접할 수 있어서 상상들을 시각화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성문화된 어떤 규칙이나 매뉴얼이 없더라도 스스로 조직한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서 움직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성격과 개인의 통합 방식이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결정이 되는 것 같아 어떤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좀 덜어낼 수 있었다.
소란님과 소란님의 공동체가 지역을 넘어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고 있음을 보면서 글로벌 캐피털리즘에 대한 저항방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도 되었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일은 과도한 소비를 부추기는 상품과 서비스를 배제하고 글로벌화에 저항하는 방식 이외에도 더 교묘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 같다. 자본생산량식이 지정해 준 욕망과 다른 방식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활용하면서 비체가 된 고유한 욕망을 가려내고, 또 서로를 수탈의 대상으로 몰개성화시키는 글로벌화가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공동체들과 교류하면서 고유한 것을 발견해 나가는 것으로도 우리는 대안적 이상에 가까워지고 체제가 초래한 위기를 건너갈 구조선에 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 공동체의 다양한 정체성과 형태에 대해 고려하게 될수록 공동체라는 것이 닫힌 경계가 있다고도 느껴진다. 이런 생각에 다다르면 공동체주의에 동참하도록 나를 인도한 결핍들이 채워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감을 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공동체를 취향으로 이해하라는 소란님의 말씀이 관념적인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치라는 준위에서 무언가를 평가하다 보면 언제나 아버지의 질서가 가르친 것들을 나 자신과 타인에게 종용하게 되는데 취향이라는 미감을 바탕으로 대상이나 현상을 바라보면 대타자에 대한 무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어서 타인에게(동시에 나 자신에) 더 관용을 품을 수 있는 것 같다. 참과 거짓, 옳고 그름에 기반한 평가가 아니라 이것이 아름다운가 아닌가 가 기준이 된다면 개인적인 수준으로 모든 만족의 준위를 끌어내릴 수 있다. 그를 통해서 나와 타인이 다를 수 있음 더욱 손쉽게 수용하게 되고 공동체의 도덕을 나 스스로가 선택하는 길이 열릴 것 같다.
파마컬처 공동체로 자립과 대안적 삶에 대한 영감을 제공하는 소란님의 행보를 응원한다. 소란님이 참여하는 공동체의 행보는 제도적 지원을 마다하면서 외부의 통제와 조작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 같고, 그런 공동체는 필요를 충족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대안적 이상에 대한 실현은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동시에 이상과 충돌할 수도 있는 실용적인 자세에도 어느 정도 실현여부가 달려있는 것 같다. 어느 정도의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오랫동안 성공과 실패를 반복해야 하며 경험이 쌓인다고 해서 쉽사리 결론 내리기 힘들겠지만, 나의 공동체를 만나고 삶을 연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 공동체 구성원들이 내핍을 강제하거나 스스로를 착취하지 않아도 되는 길을 현명하게 모색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네 번째 만남을 통해 시작된 것 같다.
(앞의 공백과 기호들은 저희 집 고양이가 남긴 흔적입니다. 도움을 받아 이 후기를 쓰게되어 지우고 싶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