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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과 쌍무지개
모퉁이가 아름다운 건물을 보면
사람도 모름지기 모퉁이가 아름다워야
아름다운
입체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향기로운
내부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퉁이가 둥근 말, 모퉁이가 귀여운 사랑
이들에게는
한결같이 모난 부분을 둥그렇게 구부린 흔적이
바라보는 사람을 황홀하게 한다.
나는 이 아름다운 옆구리를 한번 돌아가보면서
모퉁이란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될
건물의 중요한 한 분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부까지 품위 있게 해주는
의식의 요긴한 한 얼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퉁이를 가꾸는 사람들...
경제학적으로 검토하면 비효율적 투자이겠지만
모두가 모퉁이를 가꾸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또 어디를 돌아가보고 살아야 하나?
향기로운 넓이와 높이를 가진 입체물들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아름다운 모퉁이에 관하여 / 김영남----
Boston거리의 집들을 떠올리면 이 시가 생각난다.
언뜻보면 다닥다닥 붙어있는듯한 연립주택들도 곡선으로 마무리를 하면서 단조로울 수 있는 건물을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했었기 때문이다.
모나지않고 둥그렇게 처리되어 부드러운 아름다움이 내재한 건물들을 Boston에서 자주 대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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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 Freedom Trail 과 저녁식사*
Boston College로 가을에 입학할 친구 딸의 예비 모임겸 1박2일 여행길에 동행하게 되어, 거의 9년만에 두번째로 조우
하게 되는 Boston에 대한 기대는, 비가 예보되면서 살짝 실망의 먹구름부터 끼였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기회가 오기만 한다면 여행을 놓칠리 없는, 넓은 어깨와 두둑한 중부지방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날씬한(?) 하체의 소유자이지만 걷는 일이라면 2인자의 자리도 아쉬운 튼튼한 육체의 소유자가 아닌가.
비따위가 날 멈추게 하진 않으리라, 큰소리치며 여행길에 올랐다.
등뒤로 멀어져가는 New York의 하늘은 조금씩 맑아져 가는데, 먹구름이 가득 끼인 먼 앞쪽의 하늘도 개의치 않고, 네비
게이션에 의하면 30분이면 통과할 곳에서 두시간이나 지체되어도 꿋꿋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Connecticut도 지나고 지루한 여정이었지만 준비했던 간식거리들로 입의 심심함을 달래고 거의 도착했을때 평소엔 거들
떠 보지않는 McDonald’s에 가서 가벼운 Snack Roll 하나씩만으로 끼니를 때웠다.
New England 지역의 하나인 Massachusetts주의 도시인 Boston에서 유명한 Lobster와 Clam Chowder Soup을
마음껏 맛보기 위해서였다.
도착했을땐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오후 4시가 지나서 얼른 예약된 숙소에 짐을 풀고서 길을 나섰다.
5시가 가까운 시각에 유명한 곳을 일일이 다니긴 힘들 것 같아서 Freedom Trail이라는 이름을 가진 빨간 선이 그어진 거리
를 걷기 시작했다. Boston에는 영국 청교도의 이주부터 미국 독립까지의 역사를 더듬어 불 수 있도록 빨간 선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빨간 선이 시작되는 건 ‘관광 안내소’ 부터라지만, 일단 공용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뒤에 가까운 선을 찾아서 무작정 걷기 시작
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기에 우산까지 들고서 처음 장소를 찾기가 좀 번거로웠던 탓이다.
King’s Chapel Burying Ground라는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잠들어있다는 Boston 최초의 영국 성공회 교회 묘지를 시점
으로 걸어가던 빨간 선은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시간의 흐름은 어쩔 수 없었는지, 가끔씩 빨간 색의 흔적이 바래어져 있거나
지워져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비가 내려서 대지도 눅눅하게 침잠해 있는것 같아서, 밝고 화사한 날씨속에서 눈앞에 펼쳐지던
역사의 현장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하여 설레이기도 했던 9년전의 느낌이 빨간 선만큼이나 시들어 버리는 걸 뇌리속에서
강하게 떨쳐내며 걸어야 했다.
Old City Hall 이라는 고풍스러운 건물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스테이크 식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번쯤 그 안에 들어가서
스테이크를 먹으면 기분이 어떨지 느낄 기회가 오겠지만, 오래 머물 수 없어서 우산을 든 채 발길을 재촉했다.
역사적인 느낌이 물씬나는 또다른 몇개의 건물을 지나쳐서 Quincy Market에 도착했을때 날은 조금씩 저물어 가기 시작
했고, 조금씩 추위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숙소에 풀어 둔 가방에 외투가 있었던 걸 깜빡 잊고서 나왔다가 걷다보면 더워지겠지 하던 안일한 생각이, 맞닥뜨린 현실
앞에 살짝 불안감으로 변한 것이다.
일단 따뜻한 Clam Chowder Soup 한잔씩으로 추운 배라도 데우고나서 노점상에서 Boston이란 로고가 적힌 스웨트
셔츠를 사서 입었더니 훨씬 따뜻해졌다.
같은 이름의 조개스프라고 다 같지는 않았다. New York에서도 가끔 사먹던 New England Clam Chowder와는 일단
주재료로 쓰인 조개의 크기부터 달랐고 신선함도 달라서, 본고장의 맛을 실감했다.
80년대부터 시대를 풍미했던 미국의 시트콤인 ‘Cheers’가 촬영된 술집의 앞에서 사진도 한장씩 찍고 Quincy Market을
나서는데 어느새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무작정 선을 따라 걸어가다보니 선이 이끄는대로 갔다가 돌아오는 곳도 가끔 있어서 바보스러운 자신들의 발자취에 한바탕
웃기도 했고, 발이 아프다며 잘 걷지 못하는 친구가 조금 신경이 쓰이기도 하는 우리의 앞 혹은 곁으로 옛날 Boston시민의
토론장이었다는 Old South Meeting House 와 Old State House 도 스쳐갔다.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Freedom Trail의 마지막 지점과 가까운 Charlestown Bridge를
건너가면서 USS Constitution 배의 역사가 존재하는 Navy Yard를 지나갔고, 마침내 종점인 Bunker Hill Monument
에 도달했다.
남들이 다 찍는다며 싫어했던 건물앞 증거사진(?)이라도 아쉬울 듯 해서 한장씩 찍고서, 그대로 다시 왔던길로 돌아만 가면
되는데, 친구와 딸의 불평으로 도저히 계속 함께 걸을 수 없어서, 돌아가는 길에 있다는 유명한 Lobster 식당인 Atlantic
Fish Co.로 가기위해 택시를 잡아야만 했다. 하지만 퇴근시간이 가까워서인지 다시 다운타운으로 가겠다는 택시 기사가
없어서 30분을 택시를 잡기위해 안간힘을 써야하는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겨우 잡아탔지만, 도착했던 식당에선 예약
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당하고 말았다.
허탈함을 잠시 묻고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위해 다시 Quincy Market 으로 돌아간 우리는 바로 가까운 곳에 있는 McCormick
& Schmick’s 란 Seafood Restaurant에서 그곳에서 생산되는 생굴 한접시와 작은 바닷가재 두마리씩을 쪄서 적당히 잘라
서 내어주는 요리 한접시씩을 먹었다. 사실, 허기의 무게는 음식의 그것을 능가하지 못해서 다 먹기가 버거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치웠다.
마음같아선 보스턴의 야경을 멋지게 볼 수 있다는 Westin Hotel Lounge Bar에서 칵테일 한잔을 하고 싶었지만, 피곤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대학교에 가야 한다는 모녀를 더이상 무리하게 만들 수 없어 숙소로 돌아갔고 과한 식사와 지친 다리로
힘겨워하는 친구와 딸에게 내가 알고있는 요가와 스트레칭을 사사(?)했고 그들이 잠든 후 책이라도 읽을까 했지만, 함께 나서
야 하는 이른 아침의 기상 생각에 나도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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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쨋날 – Boston College 와 쌍무지개*
더 일찍 일어나 머리감고 준비를 마친 나를 보고 눈을 크게 뜨며 일어난 친구는, 간밤에 따라했던 요가와 스트레칭 덕인지
편히 잤다며 미소를 보냈다.
New Ivy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이 알고있는 Ivy학교들을 능가할 인기를 얻고있는 학교들 중의 하나인 Boston College는
생각보다는 작았지만 이쁜 돌들로 지어진 웅장한 건물들과 독특한 건축양식이 돋보이는 멋진 건물들로 이름에 걸맞는 매력을
느끼게 했다.
환영의 메세지를 전하는 교수님 (정확히 누군지는 기억 안 나지만…) 의 재미있는 강의 이후에는 관심있는 과별로 진행되는
설명회를 친구의 딸이 참여하는 동안 친구와 나는 캠퍼스를 걸으며 사진찍는 놀이를 하며 지루한 시간을 죽였다.
학교로 오는 길에 거리 곳곳에 설치된 임시화장실(?)들이 즐비한 걸 봐서 그 유명하다는 ‘보스턴 세계 마라톤 대회’의 준비인가
싶기도 해서 물어봤더니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들 한다. 얼마나 유명하고 큰 행사인지 마라톤이 열리는 월요일은
학교도 다 쉴 만큼 보스턴에서는 그야말로 공휴일이라고 한다.
여유가 있었다면 하루쯤 더 머물면서 마라톤 대회도 보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바닷가재가 질렸다는 친구딸의 의견을 반영해서 점심으로는 다시 다운타운으로 가서 ‘Tapeo’라는 멕시코 요리 전문 식당에서
처음 맛보는 몇가지 음식을 먹었다. 무화과와 살구가 통째로 들어가있는 스테이크가 좀 특이했던 것 같았고, 미리 검색해서
알아본 오징어 먹물 요리도 맛보고 싶었지만, 지금 메뉴에는 있지 않다는 이유로 단념했다.
아담한듯 단아한 보스턴 시내에 자리잡은 그 식당 주위로 번화가라는 Newbury Street과 바로 다음 블럭으로 평행하게 자리한
Boylston Street의 거리들을 하염없이 걸으며 건물들과 상점들도 하나씩 구경하고싶었고, Homemade Ice Cream으로 유명
한 J P Licks에 앉아서 아이스크림과 차도 한잔 하면서 창밖으로 거리도 내다보고 싶었지만, 친구딸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한
단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길을 재촉해 학교로 가서 친구딸이 꼭 사야한다는, 학교 로고가 찍힌 스웨트셔츠를 구입한뒤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랐다.
나의 미련이나 아쉬움은 그렇게 숨가쁜 여정의 그것처럼 급한 박자로 다시 등을 진 도시와 함께 묻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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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쯤 이었을까, 비가 내리고 그치고를 반복하다 다시 커네티컷을 통과하고 있을때엔 눈이 부시게 환한 햇살이 비추이는가
했더니 이내 또 비가 내리고, 마침내 비와 햇볕이 같은 하늘을 동시에 공유하는 순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희한한 광경을
보던 내가 무심코 “이런 날엔 무지개가 뜨는 거 아닌가?”하고 돌아보는데 뒷좌석에 앉아있던 친구딸이 “무지개닷~!”하는것이
아닌가. 얼마만에 만나 본 무지개인지, 색깔도 선명한 무지개가 뚜렷하게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일곱빛깔인가를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밝은 여러 색들의 향연은 어느새 오랜 장거리 여행에 지친 우리의 입가에 미소를 선물해 주었다. 내친김에
사진을 찍어 보았지만, 사진에 담긴 무지개는 실제 눈으로 보는것의 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색감이 축소되어 보였다.
그러다가 잠시 후, 친구의 딸이 또 한번 소리를 지른다. “무지개가 두개야, 엄마~!” 태어나서 처음 대한 쌍무지개였지만, 이미
펼쳐진 무지개의 옆에 오롯이 더해진 두번째의 무지개는 존재감이 조금 희미하긴 했고, 역시 디카에서는 거의 존재감조차 느껴
지지도 않았지만, 그래도…틀림없는…쌍무지개였다!!!
묘한 반가움을 선사하는 무지개는, 여러가지 좋은 생각들을 한꺼번에 선사하고 가슴과 뇌리도 환하게 밝혀주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여행했을 당시에도 시간이 너무 짧았고 아쉬웠기에 그보다 더욱 빠듯했던 이번의 여행은 많이 실망스러웠고 더 큰 아쉬
움이 남은 것이 사실이다. 함께 많은 길을 걸을 수 없었던 동행한 이들과의 체력의 차이와 좋지않은 날씨로 인해 더욱 더 보고
싶고 느끼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열망에 빨간 줄처럼 한계선이 그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고 그런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역사의 흔적이 많이 살아있는 다른 도시에서 한바탕 다른 공기를 마셨다는 것에도 의미는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미소
짓게 되었다. 그리고 오가는 긴 여정을 지친 모습으로 운전하던 친구의 작은 어깨가 안쓰럽고 고맙기도 했다. 그래도 보스턴은
뉴욕시보다는 차분하고 조용하며 연륜과 품위가 느껴지는, 그래…교육과 역사의 도시인 것을…
갑자기 둥그런 아치로 하늘에 나란히 떠올랐던 쌍무지개와의 만남은 그런 모든 모난 마음을 둥글게 깍아내고 구부려주고 까칠한
모퉁이를 다듬어주어, 나를 멋진 입체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