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가까이 날아 할빈공항에 도착했다는 기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중국어와 영어로 안내 방송을 보낸다.
아무도 반겨줄 이 없는 낯선 땅 하얼빈에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아득한 심정으로 트랙을 내렸다. 하늘은 맑았다.
그 노란 하늘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왜 이 힘든 여행을 결심했을까? 다시는 이런 무지한 여행은 안 할거다.'
허한 하늘만 쳐다본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며칠을 지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제껏 내가 살아온 땅이 그립다.
그 땅에 내가 알고 나를 아는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이 넓은 땅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지만
내가 아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무인도에 우두커니 서 있는 느낌이다.
이럴 땐 그리 밉던 사람이라도 아쉽고 그리운 법인가?
별별 친구들이 생각난다. 참 야비한 동물이 인간인가보다.
북경공항에 처음 내리던 순간에는
중국 땅을 첨 밟는다는 기대감이라도 있었지만
이곳은 긴장 된 북경 여행직후인지라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아득함뿐이어서
가슴이 쉽게 진정되질 않는다.
갈 곳 잃은 나그네의 심정으로 공항을 두리번거렸다.
전혀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이기에 캄캄한 터널을 지나는 것만 같았다.
거침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이곳 사람들 때문에
낯선 언어로 지껄이는 그들의 소리는 듣기만 해도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한다.
그들이 움직임 하나 하나의 동작조차도 두려움의 눈짓으로 바라봐야 한다.
하얼빈공항을 빠져 나와 대합실에 이르자 10여명의 청년들이
뭔가 소리를 지르며 내 주위를 둘러싼다. 택시 기사들이다.
무슨 소린지 모르지만 꼭 싸움하러 온 사람처럼 고함을 질러가며
막무가내로 자기 택시를 이용하라고 호객 행위를 한다.
솔직히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고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난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들 또한 북경에서 당했던 강도로만 보일 뿐이었다.
한참이나 혼자 공항 상점을 둘러보며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도 선량하게 생긴 기사가 누군가를 곁눈질해 보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기사 한사람에게 접근해 Hotel을 써 보이며 택시에 올랐다.
손님을 태워 좋아하는 그에게 이끌려 한참이나 달렸다.
한 순간이라도 내 오른손에서 가스분쇄기가 떨어지지 않았고
혹시나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긴장을 풀지 못했다.
10분이 한 시간 같은 긴장 속에 호텔에 도착한 그는
내가 체크인 하자마자 카운터에서 지폐 몇 장을 받아갔다.
아마 손님 소개비인 것 같다.
호텔직원 어느 누구도 영어가 통하지 않았고
몸짓으로 급한 불을 꺼 나갔다.
하룻밤을 묵은 뒤 시내를 돌았다.
하얼빈 역을 찾아 윤봉길 의사가 몸을 던져 항거했던
역사의 하얼빈 청사를 바라보며 가슴 한 켠으로 부터 찡한 감정이 북받쳐 온다.
도로변에는 많은 장사꾼들이 상품을 내놓고 열심히 선전하고 있었다.
한 시장에 들어서자 동대문시장처럼 요란하다.
상품들은 유치해 보였지만 그들의 현실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나도 이들처럼 입고 같은 느낌을 가져보려고
런민비 10원을 주고 잠바를 하나사서 몸에 걸쳤다.
내 모습은 중국인과 흡사하게 보였다.
사람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가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이제 중국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시내를 활보하였다.
나도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는 그런 동질감 같은 것을 느끼며.
다음 예정지인 목단강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어야 하는데
혼자의 힘으로는 표를 살 엄두가 나질 않는다.
조선족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시내의 교회가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한참만에 찾은 조선족교회는 하얼빈기독교회로
이미란 전도사가 예배를 집례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다행이 성가대 지휘자 집사님을 만나
그분의 도움으로 목단강까지 가는 기차표를 구할 수가 있었다.
그는 제일 싼 좌석표를 구해주었다.
이튿날 목단강 완행열차에 올랐다.
좌석 번호를 찾아 자리를 잡았으나 다시 긴장되기 시작했다.
기차는 외국인이 탈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는데
외국인은 반드시 4인용 침대표(란워)를 사서 타야 한다.
내국인이 타는 일반 좌석표를 사서 앉았으니 걱정이 태산일 수 밖에.
기차는 출발하고 저기 앞쪽에서 차장과 공안이 함께 검표를 하며 다가온다.
만약 외국인으로 들키기라도 하면 기차표 몇 배의 요금과 무거운 벌금을 물어야 하고
그보다 말이 통하지 않기에 어떤 해명도 할 수 없으니 가슴이 조마조마 한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날벼락인가.
옆 좌석에 앉은 손님이 내가 중국인인줄 알고 계속 질문을 해댄다.
처음 만났어도 전혀 낯설어 하지 않는 중국인의 습성.
몇 년 된 친구를 만난 마냥 떠들어대는 중국인은
옆자리에 앉은 나를 보며 대화하자고 하니 이거 참 기가 막힌다.
차장은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이러다간 외국인이라는 것이
들통날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할 수 없다싶어 나도 즉석 연극을 하기 시작했다.
묻는 즉시 그에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好 好"(하우하우)
내가 알고있는 몇 개의 단어중 하나인 좋다라는 의미의 好를 연발했다.
쓴 웃음을 지어가며 하우, 인상을 쓰면서도 하우, 진지하게 경청하는 척 하면서 하우,
한참이나 好를 외치다보니 어느새 차장은 지나가고
열심히 떠들어대던 중국인은 한참이나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힐끔 눈을 훔치고는 다시는 말을 걸지 않았다.
아마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얘기에 다른 대답은 전혀 하지 않고 오직 好만 지껄였으니 말이다.
혼자 웃음을 참았다.
내가 중국인처럼 생겼기에 그런다 싶어 고맙기까지 했다.
열린 창문으로 기차가 뿜어대는 석탄 연기와 석탄재가 들어온다.
이곳 열차는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가 보다.
까만 석탄재가 얼굴과 옷에 가득 내려앉았고
5원을 주고 도시락을 샀는데 밥 위에 모래가 한 겹 쌓여있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석탄재를 걷어내고서라도 삼켜야지.
10시간에 걸쳐 도착한 목단강은 조선족이 많이 산다고 한다.
역사를 빠져나와 조선족을 찾았다.
요행히 조선족 예술단원인 남선생님을 만나
그분의 도움으로 며칠 간 유숙하게 되었다.
그로 통해 중국조선족 역사와 현지사정을 들을 수가 있었고
좋은 교제시간이 되었다.
한국인을 만나기 쉽지 않은 목단강에서
같은 민족을 만나 너무 반갑다고 정성을 다해 대접해주시던 남선생님.
지금도 그분을 잊을 수 없다.
그분의 도움으로 도문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