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1908년 8월 22일 - 2004년 8월 3일)은 프랑스의 세계적인 사진작가이다.
현대 사진에 큰 영향을 준 작가로 보도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수상 : 1981년 프랑스 국립사진 대상
경력 : 2003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 설립
1947 매그넘 포토스 설립
1936~1939 장 르누아르 조감독
“We photographers deal in things which are continually vanishing, and when they have vanished there is no contrivance
on earth can make them come back again. We cannot develop and print a memory.”
“우리같은 사진작가들은 계속해서 사라지는 것들을 다룬다. 그것들이 한번 사라지고 나면 세상의 어떤것도 다시 오게 할 재간이 없다.
기억 자체를 현상하고 인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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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말 즈음의 어느날, 한국의 TV에서 방영된 것들을 내려받는 싸이트에서 즐겨보던 ‘지구촌 뉴스’를 보던 중,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의 사진작품이 뉴욕의 MOMA (현대미술관)에서 특별전시 되고있다는 아나운서의 얘기를 듣는 순간, 뉴욕에 사는 내가 꼭 가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6월 4일인 어제, 드디어 생각을 행동에 옮겼다.
몇일째 계속되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반복되는 일에 지쳐있던 내게 있어서 일상 으로부터의 탈출 - 이라는 한가지 명제 만으로도
발걸음은 충분히 가벼울 것 같았다. 조금 일찍 길을 나서서 미술관에 전시된 다른 미술 작품들도 감상하려던 예정은 그러나, 두끼
를 혼자서 바깥에서 해결하기가 뭣할 듯 해서 점심만 먹고 나서려다 기차를 한대 놓치고나니 두시간이나 늦고야 말았다. 그래서
떠오른 생각은, MOMA 는 금요일 오후 4시부터 입장료를 내지않는 무료관람이라는 것. 그래서 맨하탄에 나가서 기차역에서 걸어서
타임즈 스퀘어에서 더위를 맞는 브로드웨이 거리의 모습도 둘러보며 한참을 걷다가 4시 가까이 되어서 우동 반그릇과 과일 몇쪽을
먹고나서 미술관을 향했다.
한두번 갔던 곳은 아니기에 익숙하긴 해서 특별 전시가 맨 윗층인 6층에서 주로 있다는 건 알았고, 뭉크(Edvard Munch. ‘노르웨이’
의 화가) 특별 전시회에도 갔었긴 했지만, ‘사진작가’의 특전이 그곳에서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기에 들어선 순간에 늘 그렇듯
사진전이 상주하는 3층으로 갔었지만, ‘여성 사진작가전’과 약간의 ‘초현실주의 미술’만 전시되어 있어서 작품들을 다 관람하고나서
도 찾질 못해서 잠시 헤매었지만 직원의 도움으로 6층이란 걸 알아냈다.
6층으로 올라간 순간, 첫느낌에 압도되었다. 사진 작품전이 그렇게 웅장할 수 있는건지, 미술에도 뾰족하게 깊은 조예가 있는 건
아니지만, 사진은 ‘신현림’님의 ‘나의 아름다운 창’에서 조금 맛만 본 정도여서 내가 저지른 상상의 모자람을 꾸짖었다. 다른 모든
곳은 거의 다 사진촬영을 할 수 있지만, 특별 전시회답게 그곳은 사진촬영 금지 표시부터 입구로 향하는 나를 막아세웠다. 달리
디카도 준비해 가지는 않았지만, 새로 장만한 스마트폰의 사진기능을 맹신하며 나도 알고있던 몇 작품은 담아오리라 먹었던 마음에
빚장을 내려야 했다.
나 말고도 무료관람을 즐기러 온 꽤나 많은 사람들과 “Excuse me”나 “Sorry”를 연발해 가면서 함께 관람을 하는데, 처음 마음속에
품고왔던 호기심어린 관심은 그러나 조금씩 더욱 더 많은 사진들을 대하면서 점점 사진예술 세계로의 여행에 빠져가는 스스로를
깨닫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작가의 처녀작부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보려던 마음은 어느새 관람객들속에 부대끼면서 조금이라도 덜 복잡한 곳을 찾아가며 봐야
했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시선은 잠시도 쉼없고도 빠른 물살을 탄 쪽배마냥 흐르고 또 흐르는 예술의 강물을 저어가는 걸 감지하고
나도 모르게 곳곳에서 “아~!” 하는 작은 숨소리가 감탄을 싣고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의 중심에서 왕성한 활동을 한 작가의 작품속에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간접적인 경험으로도 손꼽는
큰 역사의 장들이 박제되어 있었다. 중국 공산당 집권 직전의 청나라 마지막 내시의 모습에서부터 ‘마오쩌뚱’의 격렬한 근대화에
대한 박차로 인한 혹독한 노역에 시달리는 중국인들과, 서구세계의 사람으로선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 러시아의 구소련, 나치들의
유태인 학살후의 모습들, 샤를 드골의 연설을 듣는 사람들의 일관된 집중과 단호한 표정이 담긴 프랑스의 역사적 순간, 미테랑
대통령의 취임식을 쪽방에서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동양으로 옮겨진 그의 시선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 중의 하나인 인도, 기모노
를 입은 여인과 양복입은 남자가 섞인 아이러니한 무리의 나들이 모습이 담긴 일본, 또한 그의 첫번째 부인의 친정어머니의 인연
으로 인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인도네시아 등의 아름답거나 독특한 모습 등등 책이나 역사학자들의 입으로만 전해지는 과거의
순간들이 그의 박제된 흑백 사진의 세계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물론 찰나-라는 옷을 입은 상태로 말이다.
그의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세가지 요소들 중의 한가지인 사람, 혹은 사람들 역시 색다른 모습으로 예술적인 승화가 되어 있었다.
그의 사람에 대한 관찰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면, 초상사진과 군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만든 조각작품들 만큼이나 우울
한 모습을 하고있는 ‘알베르토 지아코메티’와 언제나 담배를 물고 반항적으로 보이는 ‘알베르 카뮈’는 어쩐지 너무나 그들이 산출해
낸 작품들과 닮은 것 같아서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었다. 상대적으로 고뇌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쓴 극작가 ‘아서 밀러’는 평범해
보이는 미국시민의 모습으로, 만인의 연인이었던 ‘마릴린 먼로’는 다소곳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색다른 초상사진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초상사진들이 전시된 곳에 적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사진을 찍히는 사람들이 "How long the session would take?"
("이 작업은 얼마나 오래 걸리죠?")하고 물으면 브레송은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고 한다. "Longer than the dentist, but shorter than
the psychoanalyst" ("치과의 보다는 오래 걸리지만, 정신분석학자보단 짧아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군상에서도 그는 수많은
아이러니의 현장을 포착해 내고 놓치지 않았다. 군상의 작품들에서 삶은 때론 밝고, 때론 슬프고, 혹은 격렬하고 차갑다. 그런 순간
들을 담기위해 모르긴해도 많은 인내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한 유명했던 말들 중에서 내가 발췌한 말 역시, 찰나에 대한
중요성인 만큼, ‘기억’을 현상하고 인화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 수많은 작품을 담아내는 그의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역시, ‘미를 담아 낸 예술 사진’들이다.
‘황금분할’이니 그런 것에 대해서 크게 아는 바는 없지만, 그의 사진에서 만나는 적당한 위치에 자리한 사물과 함께 전체를 감싸고
도는 사진 작품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은 나도 모르게 “아~”하는 신음같은 감탄사가 나오게 만드는 존재였다. 자연 뿐만 아니라,
그의 역사나 사람, 혹은 사람들을 담은 작품에서도 그 적절한 구도가 만들어내는 묘한 부조화의 조화나 분할의 어우러짐은, 누구나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닌, 그야말로 형상화된 미의 승화를 일군 예술 작품들이었다. ‘찰나’를 기막히게 포착한 그의 대표적인
수작으로 손꼽히는 ‘셍 라자르 역 뒤에서’ (Behind the Gare Saint – Lazare, 1932)이다. 그의 작품에 대한 얘기를 할 때에 누구나
먼저 꼽는 작품이기에 나까지 개입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물웅덩이를 건너는 사람의 모습과 우연히 비슷하게 일치하는 뒤쪽 포스터
에 담긴 무희의 몸짓, 그리고 완벽한 대칭으로 그림자처럼 자리한 물표면에 비친 주인공의 모습까지...어쩔 수 없이 나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 포착의 진수가 여실히 나타난 작품인 것을……
Hyères, France, 1932
어쨋거나 우연한 기회에 다녀온 미술관으로의 나들이에서 ‘사진 작품’이란 쟝르에 대해서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내게 ‘앙리 카르티에
베르송’이라는 작가는, 사진으로 조명된 과거를 통해 오늘날을 예시하게 하는 것을 가르쳐 주었고, 유명하거나 평범한 사람들의
순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일궈낸 어떠한 존재가 나를 대변할 수도 있다는 것과 삶의 희노애락을 함께 동참하는듯한 영상을
대하는 듯한 재미를 선사했고, 세계 곳곳에 즐비한 아름다운 존재에 대한 존엄함과 희열을 맛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게 세시간
동안 관람을 마치고 돌아서서 나오는 순간, 그때서야 느껴지는 피곤한 다리의 압박조차도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었으니, 건조하고
도 무료하기 쉬운 삶의 한 순간속에서 만나는 예술작품에 대한 겸허한 존경을 나도 모르게 간직하면서 길을 나서니, 어느새 어둠이
드리운 거리에 한낮의 강렬한 더위가 살짝 누그러진 도시의 풍경이 흑백사진 같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