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나트랑과 달랏 여행(8)
빈 펄 리조트로 들어가는 선착장에서였다. 여권을 제출한 후 일굴 인식을 위해 사진을 찍어야 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빈 펄 섬 자체가 넓기 때문에 누가 어디에 갔는지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 같았다. 이름이나 지문, 표(티켓)도 아니고 얼굴이다. 여행을 마쳐도 내 정보가 그대로 베트남 빈 펄 리조트에 남을 것이다. 조지오웰의 소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디지털화 되면서 개인의 정보는 잠재적으로 곳곳에 노출되는 상황이다. 발전, 혁신이란 명목 아래 우리는 그런 사회의 편리함에 조금씩 젖어들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지 모른다. 곳곳에 설치된 CCTV에 찍히는 얼굴 모습을 떠올리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나트랑 선착장에서 탄 배는 7분 정도 달려 빈 펄 섬에 도착했다. 빈 펄 섬은 뭍에서 볼 때 작은 섬(혼쩨)이지만 다양한 위락 시설을 갖추고 있다. ‘빈 위더스’ 내에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공원, 사파리(동물원), 워터파크, 아쿠아리움이 있고, 주변에 골프장, 클럽, 사찰 등이 있다. 현재도 확장 공사는 진행되고 있다.
내린 선착장에서 버기(Buggy)카를 타고 호텔 로비로 이동해 우리가 묵을 방을 배정 받았다. 호텔 로비는 컴퓨터 서버로 이야기하면 중앙처리 장치 같았다. 안내데스크, 카페, 펍, 레스토랑, 객실 등 모든 시설의 중심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호텔 로비에서 배정받은 숙소는 6312호다. 호텔 앞에서 숙소까지 다시 버기카를 탔다. 6312호는 풀장이 딸린 3베드룸 풀 빌라였다. 1층에 방 두 개, 2층도 넓은 침실이 하나 있다. 밖에는 작은 폴 장이 달려 있고 주변에는 야자나무와 바나나 나무가 푸르렀다. 나무들 중 몇 그루는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아래층 방 두 개는 딸과 며느리, 손주들이 묵고 2층은 우리 부부가 사용하기로 했다.
짐을 푼 우리는 손주들이 기대하는 동물원으로 향했다. 손주들은 문 밖 바나나 나무에 달린 바나나를 보곤 신기해했다. 야자열매에는 별 관심이 없던 아이들이었다. 바나나와 야자의 차이라면 아마 한국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바나나였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물원에 가기 위해서도 버기카로 호텔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다른 버기카로 옮겨 탄 후 산길로 ‘빈 윈더스’ 입구까지 이동해야 했다. 입장할 때 한 명 한 명 얼굴 인식을 한 후 들어가야 했다. 키 작은 손주들은 어른이 안고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다시피 했다. 그것으로 ‘빈 윈더스’ 내의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손주들이 ‘빈 윈더스’내 동물원으로 가자고 했다. 들어가며 만나는 홍학과 원숭이를 보며 눈이 동그래졌다. 그것뿐이 아니다. 텔레비전과 사진으로 보던 동물들이 눈앞에서 움직이자 신바람이 났다. 뱅골 호랑이뿐만 아니라 그 옆 우리에는 백호(白虎) 두 마리도 있다. 내 자신도 흰 호랑이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당찬 모습이 우리나라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를 연상시켰다. 백호 한 마리는 열이 나는지 우리 안 연못에 들어가 물을 휘졌고 나와 어슬렁어슬렁 우리를 빙빙 돈다. 백호 우리 한 곳은 투명 유리로 포토 존을 만들어 놓아 관광객들이 백호를 등에 두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사자, 곰, 하마, 코뿔소, 낙타, 기린, 얼룩말, 오릭스 등 다양한 동물들은 발길을 옮기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마들이 물속에 있다가 나오는데 그 중에는 새끼 하마도 있었다. 귀여웠다. 키가 큰 기린에게는 먹이도 줄 수 있도록 했다. 천천히 이동하면서 구경했다. 그야말로 꼬마들에게는 현장학습이다.
동물원을 둘러본 후 그곳에서 아래쪽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놀이시설이다. 이미 해는 저물고 있었다. 많은 놀이시설 중에서 5살, 7살 어린이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실내 키즈 카페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그물망 위로 올라가는 놀이와 불럭 쌓기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한참 논 아이들은 밖으로 나와 비행기를 탔다. 회전목마처럼 빙빙 도는 비행기는 발로 발판을 세게 굴리면 높이 올라갔다. 잠시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낄 때쯤 비행기는 멈췄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해는 빠지고 어둠은 낮게 깔렸다. 배도 고팠다. 가까이 있는 식당을 이용하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밖에 나왔을 때 광장에서는 쇼가 막 진행되고 있었다. 타타쇼다. 타타쇼는 거금을 들여 만든 쇼다. 레이져 불빛과 음향, 등장하는 사람들이 어울려 춤추듯 진행하는 쇼로 베트남에서 꽤나 유명하다. 광장에는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꽉 메웠다. 성채 건물을 이용한 영상물이 번갯불 같은 번쩍임과 뇌성을 울리며 혼을 빼 놓는다. 스케일이 압도적이다. 광장에서는 100여 명 남짓 배우들의 춤사위가 이어진다. 빛과 소리와 율동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힘들다고 제 엄마 등에 업혀 있던 5살 손자가 내리면서 엄마 앞쪽에 서서 관람한다. 그야말로 환타지 무대다. 용이 등장하고, 선한 왕비를 납치하는 악당이 있고, 그것을 물리치는 용감한 왕자가 등장한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은 관중과 어울려 춤을 추기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손주들도 배우들과 어울려 여럿 컷 시진을 찍었다. 타타쇼는 40분간 진행 되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진행된 그야말로 매력 만점 이벤트였다.
타타 쇼를 본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출입구로 나갈 때도 얼굴을 또 인식한 후 나가야 했다. 오늘 하루를 생각하니 바쁘기도 했고, 피곤하기도 한 하루였다. 숙소에 들어오니 종일 돌아다녀서 그런지 피로가 몰려온다. 그래도 즐거운 하루며 고맙고,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