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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가톨릭뉴스_지금 여기가 출처임을 먼저 밝힙니다.
예술교육을 하는 지인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한 학교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학교에서는 전교생이 매일 아침 바닷가와 동네를 걷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마침 지인이 방문했던 때는 벚꽃이 만개한 봄이었고, 지인은 바닷가를 조용히 걷는 아이들의 머리 위로 눈처럼 쏟아지던 벚꽃 잎이 잊지 못할 광경으로 남는다 했다. 하지만 이런 풍경보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들과의 대화였다. “열여섯 살짜리 남학생 하나가 두 살 어린 여학생한테 장난을 심하게 치는데 딱 보니까 좋아하더라고요. 밤에 여학생 숙소에서 같이 자다가 그 여학생한테 그랬죠. ‘그 오빠가 너무 심하게 장난친다고 속상해하지마. 널 좋아하는 것 같더라.’ 그랬더니 얘가 ‘나도 알아요. 그 오빠도 아픈 데가 있어서 그런다는 걸. 그러니까 내가 참아주는 거예요’ 이러는 거예요. 열네 살짜리 여자애가.” 이 학교의 이름은 사랑어린학교. 전라남도 순천 작은 어촌에 있는 전교생 74명의 대안학교다. 아이들에게 두더지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교장 김민해 목사는 이렇게 걷는 시간을 통해 아이들이 자기 안의 상처와 억압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등교를 학교 앞 순천만으로 해요. 매일 학교까지 한 시간 정도 걷죠. 차에서 내렸을 때랑 걷고 난 다음 학교로 들어올 때 아이들 눈빛이 완전히 달라요.” 이렇게 걷기를 중요시 여기는 학교 분위기는 이들이 교가처럼 매일 부르는 노래에도 드러난다. “우리는 걷고 기도하고 사랑합니다.”
중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7학년은 특별히 걷기가 수업의 중심을 차지한다. 매일 걷는 것뿐 아니라 1년에 한 번 2주간 국내 순례를 한다. 지난해 7 · 8 · 9학년 학생 20명은 40일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기도 했다. 스스로의 힘이 생겨야 비로소 학습이 가능하다는 게 김 목사의 생각이다. 사랑어린학교의 걷기는 넓은 의미로 자기를 들여다보는 명상이다. “아이들이 ‘재미없어요’ 하거나 ‘이게 뭐하는 거예요’ 묻지는 않나요?” 내가 머무는 곳에서 주인으로 살기 위해, 일상을 스스로의 힘으로 중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7 · 8 · 9학년 학생 20명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하루 세 끼 식사를 스스로 해결한다. 20명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부터 뒷정리까지, 식사 담당 조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한다. 그렇다고 어설픈 식사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인은 아이들이 식사 준비를 하던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좀 도와줄까?’ 했더니 애들이 부엌문을 가로막으면서 ‘여긴 식사 당번들만 들어올 수 있어요. 그리고 저희들이 다 알아서 해요’ 하는 거예요. 하도 귀여워서 옆에서 지켜봤는데 글쎄, 애들이 오이소박이를 만들더라고요. 게다가 요리한 다음 뒷정리를 하는데 나도 잘 못하는 도마 소독까지 완벽하게 딱 끝냈어요.” 김 목사는 “저마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자기만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일상을 만들어가는 힘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住 立處皆眞)이란 말이 있어요. ‘내가 머무는 곳에서 주인공으로 산다.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깨달음의 세계다’라는 뜻인데요. 그렇게 살려면 자립해야 하잖아요. 자율, 자립, 자치의 삶이 중요하죠. 자기 몸 하나를 추스를 수 있는 힘 말이에요. 그런 삶의 핵심은 ‘밥’이죠. 밥을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해요.” 아이들이 먹는 밥의 재료는 모두 주변의 논과 밭에서 거둔 작물이다. 당연히 약을 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전교생이 모심기도 했다. 김 목사는 “아이들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했다. 미끌미끌한 흙의 느낌과 출렁거리는 물의 느낌, 이런 걸 즐거워했다”고 전했다. “자기들이 심은 작물과 모가 성장하는 걸 보면서 좋은 기운을 받아요. 또 그런 게 밥상까지 오니 어떻게 정성 들여 먹지 않을 수 있겠어요.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 이천식천(以天食天)이란 말을 해줘요. ‘우리는 하늘을 먹는 거야. 그럼 하늘을 먹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될까. 곧 하늘이 되겠지’ 하고요. 아이들이 천천히 그 말의 의미를 받아들여요.”
‘교사’가 아닌 ‘배움지기’ … “우리는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게 먼저예요” 사랑어린학교의 교사는 총 8명. 저학년들은 담임제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통합교육을 지향한다. 사랑어린학교에서 교사의 명칭은 ‘배움지기’다. 교사공동체에서 만든 단어다. 그러나 아이들은 배움지기들을 ‘신난다’, ‘푸른솔’, ‘수박꽃’ 등의 별칭으로 부른다. 자연스레 말을 놓게 된다. 처음에 이 모습을 접한 학부모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른에게 버릇없이 굴까봐, 교사의 권위가 사라질까봐 등이 이유였다. 교육전문가라는 어떤 이는 “교육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김 목사는 “직접 해보지 않은 분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별칭을 부르면 쓸데없는 장벽이 모두 거둬집니다. 대신 시간이 흐르면 사람과 사람으로의 신뢰가 쌓이지요. 고학년이 되면 시킨 적도 없는데 ‘선생님’ 하고 불러요.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 그런 게 느껴지잖아요. 사랑의 기운, 혹은 신뢰. 배움지기를 향한 진심 어린 신뢰가 느껴져요.” 배움지기들에게는 3가지 원칙이 있다. 어머니 같을 것, 수행자일 것, 학생일 것이다. 어른이니 어머니 같은 마음을 지녀야 하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내가 배우는 게 먼저라는 의미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기운 속에서 배워요.” 김 목사는 “교육은 말이 아니라 행동과 기운”이라고 강조한다. 말과 행동이 다르면 행동 쪽을 배우고, 배움지기들이 어떤 행동을 하면 아이들은 그대로 따라 배운다는 뜻이다. 지인은 식사 시간에 김 목사가 콩나물국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는 걸 옆으로 보면서 아이들이 따라하더라고 전했다. 행동은 “음식물을 남기면 안 돼”라는 말보다 훨씬 강력한 교육이다.
자기 힘을 기른 아이들, 졸업 후 어디서든 자신의 모습을 꽃피워 9학년까지밖에 없는 이 학교를 졸업한 후, 아이들은 다른 대안학교를 선택하기도 하고 일반 고등학교를 선택하기도 한다. 신뢰와 사랑이 가득한 교육공동체에서 10년여를 보낸 아이들이 경쟁이 치열한 세상으로 나가 적응하기 어려워하지는 않을까. 김 목사는 “훨씬 잘 꽃피워낸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미 자기 힘을 기른 상태니까요. 자기가 선택하고 자기가 적응하죠. 학습능력 자체도 뛰어나요. 고등학교 교사들이 우리 학교를 나온 아이들이 집중력이 탁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해요. 자기 힘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가 봐요. 두세 달 지나면 대부분 상위 그룹에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문득,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가는 이 학교의 등록금이 얼마일까 궁금해졌다. 김 목사는 “매겨진 등록금은 없다”고 답한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돈이 근본이 되는 삶의 방식을 넘어서고자 하는 건 우리 학교가 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실험이에요. 우리 학교의 철학에 동의해 이곳에서 아이를 교육하고 싶다고 하면 돈에 상관없이 들어올 수 있어요. 등록금이나 생활비는 자기 형편에 맞게, 마음 가는 만큼 알아서 냅니다. 다만 거기에 정성을 담는 게 중요하지요.”
정해진 등록금을 없애고 ‘마음이 가는 만큼 정성껏’ 처음 김 목사가 교장으로 부임했던 4년 전, 사랑어린학교는 재정적으로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배움지기들은 ‘월급이라 할 수도 없는 수준의’ 임금도 몇 달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학부모와 배움지기들은 어떻게 하면 돈을 모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에 골몰했지만 그럴수록 문제는 더 어려워졌다. 김 목사는 대안학교가 돈 있는 사람만 올 수 있는 학교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해진 액수의 등록금을 없애고 ‘아이들이 자랄 수 있도록 알아서 내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학부모들도 불편해 했다. 김 목사는 “내가 더 내는 건 아닐까 불편하고, 내가 적게 내는 건 아닐까 불편했던 거죠. 우리도 이미 자본주의에 흠뻑 물들어 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실험 후 4년여가 지난 지금, 사랑어린학교의 재정은 ‘꽤 좋은 여건’이라 할 만큼 안정적이다. 김 목사가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14년간 값을 매기지 않고 만들어 온 월간 <풍경소리> 덕분이다. 김 목사는 14년간 <풍경소리>의 편집과 발송을 맡아 하고 있다. 그는 “만약 돈을 받았다면 이렇게 오래는 못했을 것”이라며, “<풍경소리>의 세월이 버팀목이 됐다”고 말했다. 사랑어린학교 강당 맨 앞에는 ‘함께 어울려 놀면서 크는 집’이란 글귀가 붙어 있다. 김 목사는 “서로 성장하는 게 진짜”라며 “학교는 다만 아이들이 자기 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도울 뿐”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영성은 무겁고 엄숙한 게 아니라 유쾌하고 아름다운 것이에요. 아이들에게는 ‘어른들 생각 너머의 무언가’가 있어요. 아이들 덕분에 어른들도 새로움에 눈뜨는 거죠. 그런 영성을 서로서로 배우는 길, 얼마나 즐거워요? 사랑어린학교 학생과 배움지기, 학부모는 모두 같은 길을 걷는 도반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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