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만 은사님의 제자분이 아래(전남교육소식)와 같은
책을 발간하여 화재가 되고있다는 소식을 친구 여러분께
알리고자 합니다.
(김재만 은사님의 연락처 : 010-8603 -0992)
희망을 쓰다
78세 할머니 초등학생, 책을 펴내다
홍보실
입력 2015-01-13 09:59:50 | 댓글0 |추천0 |비추천0
세월아 가지 말고 거기 서 있거라. 니가 가면 나도 따라가도 마음이 서글퍼서 내가 울잖니. 그러니까 가지를 마라. 니가 가서 내 청춘도 가고 젊음도 갔으니 나는 니가 원망스럽다. 그러니 제발 가지 않는다고 약속 좀 해다오…’
인생과 나이 듦에 대한 쓸쓸함과 안타까움을 ‘세월’이란 글로 표현했다.
초등학력과정 78세 할머니, 책을 펴내다
78세 할머니가 책을 펴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늦은 나이에 책을 펴낸 것도 그렇지만,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지 8년만의 일이라 주위 사람들은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장성공공도서관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는 박정열 할머니.
박할머니의 책은 비록 유명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고급스런 편집이나 제본과는 거리가 있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온 마음을 담은 글짓기, 편지글, 일기, 기행문 등 57편의 소중한 글로 채워져 세상 그 어떤 책보다 값져 보인다.
어떻게 책을 내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처음엔 책을 낼 생각도 하지 못했죠. 공공도서관에서 한글을 배우면서 틈틈이 써 놓은 글을 딸들에게 보여주며, 내가 죽은 후라도 한 번씩 읽어보면서 가족 간에 우애 있고 화목하게 잘 살아라 했더니 딸들이 ‘엄마! 우리가 책 내줄게’ 한 거예요. 또, 김재만 선생님께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가능했지요.”
나는 문불여대학생(文不如大學生)이다
박할머니가 장성공공도서관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 그녀의 나이 70세였다.
할머니는 처음 도서관에 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또래 친구들이 어디를 다니는 것 같은데 말을 안 해 주는 거에요. 그래서 친구들이 가는 길을 몰래 뒤따라갔더니 장성공공도서관으로 가더라고요. 뭐하나 봤더니 한글 수업을 받는 거예요. 당장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다음날부터 공부하러 다녔죠.”
박할머니의 공부에 대한 집념과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녀는 장성공공도서관에서 개설한 초등학력과정인 문불여대학 3~4학년 반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진즉에 이런 제도가 생겼으면 못 배운 사람들이 없었을 텐데, 조금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런 제도가 있으니 우리들은 행운아죠.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어르신은 공공도서관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한다. 특히 담임을 맡고 있는 금빛평생교육봉사단 김재만 선생님에 대해서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무한한 신뢰와 감사를 보낸다.
“선생님이 계셨기에 무지렁이를 벗어날 수 있었죠. 선생님께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각 한 번 없이 도서관에 오시지요.”
사도가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하는 오늘날 노스승과 나이든 제자의 훈훈한 사랑과 정을 느낄 수 있어 가슴이 뭉클해졌다.
55년 동안 신발가게 운영하며 2남 2녀 키워
박정열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태어났다. 그 시기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그랬듯이 어르신도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공부 못한 한이 항상 가슴에 맺혀 있었어요. 그렇지만 가난한 집으로 시집 와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죠. 그래서 시작한 게 신발가게인데 50년 넘게 장성 읍내 한 자리에서 하고 있어요.”
4남매 교육시키고 뒷바라지를 위해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일해야 했고, 도시락을 8개씩 싸서 광주로 학교를 보냈다.
“점심 저녁까지 도시락을 두 개씩 쌌어요. 반찬도 없이 김치만 싸줘도 군말 없이 잘 먹어줘서 애들한테 항상 미안하고 고마웠지요.”
지금은 모두 장성한 자식 자랑에 할머니는 신이 났다. 큰아들은 한국전력 간부직원으로, 둘째아들은 사업을 하고 있으며, 큰딸은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막내딸은 순천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당신! 부족한 나를 넓은 아량으로 채워줘서 감사해요
박할머니의 글에는 유난히 가족애가 돋보인다. 남편, 자식들, 작고하신 부모님, 동생들과 동서… 가족을 그리워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때론 기쁨과 행복으로, 때론 안타까움과 미안함으로 표현되어 곳곳에서 묻어난다.
할아버지(남편)에게 보낸 편지글에는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절절이 느껴진다.
‘사랑하는 여보당신, 당신과 나와 연을 맺은 지 55년을 맞이한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서 머리에 흰 꽃이 피었군요. 그동안 우리가 살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살아왔지요. 그러나 당신이 부족한 나를 넓은 아량으로 채워가며 살아주셔서 항상 감사했지요…’
요즘 극장가에서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는 독립영화의 노부부처럼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도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처럼 서로를 존중하고 살갑게 대할 수 있는지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감동스럽다.
한글을 이제 깨우친 여든을 앞둔 어르신의 글이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잘 쓰신다는 기자의 말에 부끄럽다면서 연신 손사래를 치신다. 할머니의 인자하고 포근한 인상 때문일까. 늙는다기보다 좋은 포도주처럼 익어간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홍시’에서는 부모를 그리는 마음이 가슴속 깊이에서 꾸밈없이 우러나온다.
‘1월 달은 어머니의 기일입니다. 어머니 당신 이름으로 마음이 가득합니다. 어머니 부르다 부르다가 소리가 잦아들어도 끝까지 오직 한 마디 대답이 없으시네요. 어머니는 생전에 홍시를 너무나도 좋아하셔서 제가 홍시만 나오면 꼭 사서 부쳐드리곤 했는데, 이제는 홍시는 많은데 어머니가 안 계시니 마음이 아픕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공부하고 싶어
할머니는 4남매를 어느 정도 키워놓고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필암서원에 다니면서 사자소학, 추구집, 명심보감까지 배울 정도로 향학열이 대단하다.
요즘은 기억력도 떨어지고 시력도 나빠져 초등학력과정 마치는 것도 힘들 것 같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신다. 아마도 중학교 과정까지는 무난히 해내실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글을 쓰실 거죠?” 물었더니 “아이고 글은 무슨… 이것만 해도 힘에 부치고 어려운데…” 하신다. 그러면서도 “지금 다시 쓰라고 하면 더 잘 쓸 것인데…”하면서 아쉬워하신다. 박할머니는 새해 초부터 또다시 글을 쓸 것이다. 몇 년 후 세상에 선보일 할머니의 새로운 문집이 기대된다.
교직원 명예기자 박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