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베드로의 말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아무 말이나 둘러대듯 황급히 꺼내어 본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내뱉는 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죠. 대개 그런 순간 평소, 마음속으로 바라고 소망해왔던 말들이 튀어나오는 법입니다. 반면, 열심히 외운 것들을 누군가에게 들려줘야 할 때, 머릿속이 새하얗게 지워져 버려 당황하기도 합니다. 어떤 말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 함께하고픈 사람, 평생을 따르고픈 사람이라면 어떻습니까?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말을 고르지 않을까요? 베드로도 그랬을 것입니다. 겁에 질려 꺼낸 말이었지만, 그가 꺼낸 말은 그 순간 그가 생각한 가장 아름다운 말이었을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 대화는 예수님의 첫 번째 수난예고를 들은 다음이라는 것입니다. 수난에 대한 예고를 전하신 예수님께서는 엿새 후 산으로 올라와 영광스럽게 변모하셨고, 그러한 변모를 지켜본 베드로의 반응입니다. 물론, 명백하게 수난을 예고하신 예수님께 베드로가 반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붙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호되게 꾸짖으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한차례 혼이 났던 베드로는 누구보다 먼저 수난과 십자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제자일 것입니다. 스승의 수난 소식을 듣고 말리던 그가, 새하얗게 빛나는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거운 십자가와 수난의 무게에 견줄 수 없는 영광스러운 변모를 마주한 것입니다.
사순2주, 베드로와 함께 깨달아야 할 점은 이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드러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분 사랑의 충만함은 당신이 가장 사랑하시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고 자리로 돌아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눌 때, 베드로처럼 말을 꺼내어 보십시오. “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더 아름다운 말을 고백해도 좋습니다. 쪼개어지고 나뉘어 받아 모신 예수님의 몸은 수난으로 영광을 드러내며 들려주실 말씀이 될 것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