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4일(토)
여행 마지막 날이다.
오늘밤 나트랑 깜 라인 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 그것도 하루 지나 밤 1시 5분 출발하는 비행기다. 빈 펄 리조트 1박이 아쉽지만 오전까지 빈 펄 섬 내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조식을 하기 위해 빌라에서 해변 쪽으로 나가 호텔까지 걸었다. 붉은 부겐빌리아 꽃이 활짝 피었다. 헤외여행 중 부겐빌리아를 눈여겨보았었던 적-. 그곳이 어디였을까? 맞아. 그곳이었지. 파키스탄 라호르 성과 라호르 박물관 밖에 핀 부겐빌리아란 생각에 머문다. 21세기가 되기 몇 해 전이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을 한 달 가까이 여행했다. 라호르 성채 오르는 길가에 부겐빌리아가 곱게 피어 있었다. 멍하니 꽃 앞에 발길을 멈췄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것과 함께 라호르 박물관에서 본 ‘고행하는 부처상’도 부겐빌리아 꽃에 오버랩 된다. 간다라 예술의 강렬한 인상이 머리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여행하며 곳곳에서 부겐빌리아를 보았다. 언젠가 그것을 길러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세종시에 조성된 세종수목원 온실에서도 그것을 보았었다. 아직이지만 언젠가 부겐빌리아 묘목을 구해 재배할 것이다. 부겐빌리아 꽃핀 좁은 길은 바다로 이어졌다. 손주들과 걸어가는 해변 발 밑 모래가 곱다. 발로 비비기도 하고,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면서 호텔로 갔다. 호텔 앞으로 푸른 수영장이 하늘을 빨아들인다.
느긋하게 조식을 한 후 손주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지 물으니 수영장보다 어제 갔던 놀이시설이 좋다고 한다. 오전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하루 더 머물고 싶지만 월요일 출근해야 하고, 월요일 카페 ‘시월(詩月)’ 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에 더 머물 수 없다. 당연히 오늘 체크아웃 해야 한다. 손주들을 생각했을 때 둘째, 셋째 날 이곳에서 묵는 일정이어야 했다. 체크아웃 시각은 12시다. 조식 후 놀이시설에 간 손주들은 어제 놀았던 키즈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손주들에게는 그물망 사다리에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 즐겁고 신나는 일 같았다. 12시 전 퇴실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은 없었다. 놀이시설에서 놀다 숙소로 되돌아와 가방을 정리하고 체크아웃 전에 부대시설 식당을 이용할 수 있는 크레디트 카드를 사용하기로 했다. 숙소 1박 이용에 따른 서비스 크레디트 카드(금액은 숙소에 따라 다름)를 주는데 호텔 옆에 자리잡고 있는 라군 식당에서 몇 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라군 식당은 바다와 수영장 옆이라 분위기가 좋았다. 아침을 늦게, 그것도 많이 먹은 관계로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포장을 부탁하니 꼼꼼하게 싸준다.
공항으로 가기 전 시간이 많기 때문에 나트랑에서 손주들이 쉴 수 있는 곳을 물색해 놓았다. 나트랑 시내 번화가에 있는 리갈리아 골드(Regalia Gold)호텔에서 오후 9시까지 머물기로 한 것이다. 그 사이 마사지도 받고 번화한 시내도 구경하기로 했다. 저녁은 점심에 포장한 것을 먹으면 경비를 절감(사실 몇 푼 안 되지만?)할 수 있다.
빈 펄 섬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택시로 리갈리아 골드 호텔로 향했다. 번화가라 그런지 주변에 사람 유동인구가 많았다. 빌린 객실 두 개에 짐을 두고 쉬면서 주변을 구경하기로 했다. 시계를 보니 2시 30분이다.나와 아내는 마사지 숍을 예약하고 이동했다. 90분 마사지를 아내와 둘이서 받았다. 많이 피곤했는지 마사지를 받으며 코를 골며 잠에 떨어졌다. 그런데 나뿐이 아니다, 아내 역시 코를 곤다. 여행은 즐겁지만 그 만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마사지 후 가족을 만나 카페에 들어갔다. 어디든 인터넷 검색만 하면 이미 한국인이 찾았던 카페 목록이 줄줄이 뜬다. 한국인 리뷰가 많은 CCCP카페에 들어갔다. 벽 안쪽으로 낡은 책들이 꽂혀있다. 어느 나라 카페를 가든 으레 내가 주문하는 것은 커피다. 진하든, 묽든, 쓰든, 달든 난 커피를 주로 시킨다. 손주들은 수박주스를 시키고, 딸은 코코아 아이스커피를 아내와 며느리는 망고 주스를 주문하고 피자 한 판도 시켰다. 카페 내 손님은 대부분 한국 사람이다. 종업원만 베트남 사람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 한국인지, 베트남인지 헷갈린다.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간은 아쉽지만 그래도 집으로 되돌아간다는 것 역시 설렘이고 기쁨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 후 호텔로 되돌아가는데 한 가게 앞 처마 밑으로 연기가 쏟아진다. 길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성였다. 가까이 가보니 반칸(BANH CAN)이란 베트남 전통음식을 굽는 가게이다. 안쪽으로 손님이 제법 많다. 빈자리가 무섭게 새 손님이 앉고, 세 명의 아주머니들이 분주하게 기름을 치며 반칸을 굽는다. 한국 붕어빵, 풀빵을 굽듯이 틀에 묽은 코코넛 반죽을 부은 다음 그 위에 새우, 오징어, 양고기, 돼지고기, 통새우, 메추리알, 계란 등을 올려 익힌다. 한 판에 16개 정도 되는 쇠판 틀이다. 한 접시에 6개의 반칸을 주는데 종류에 따라 값이 다르다. 정신없이 구워도 주문을 따갈 수 없다. 배부른 상태라 야시장 구경 후 사먹겠다고 생각하며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에서 쉬다 7시 30분쯤 근처 야시장을 찾았다. 리갈리아 골드 호텔에서 한 불럭 해변(Happy beach)쪽으로 이동해 핑크타워 쪽으로 걸으니 불빛이 불야성을 이룬다. 마사지 숍이 연속으로 보이고, 자동차와 오토바이, 씨클로(자전거)가 뒤섞여 있다. 야시장은 길 양쪽에 가게(부스)들이 150미터 정도 이어져 있는데 온갖 것을 판다. 베트남 전통 옷부터 아이들 장난감, 신발, 커피, 불상, 기념품 등 다양한 상품들이 여행객을 발길을 붙잡는다. 그렇기에 인산인해다. 주말이라 그런지 핑크타워 앞에서는 베트남 전통극도 공연한다.
야시장을 둘러보고 반칸을 사러갔다. 그런데 재료 소진으로 팔 수 없단다. 아쉬웠다. 9시에 공항 가는 차를 불렀기 때문에 호텔로 서둘러 되돌아서야 했다.
4박 6일이라는 시간을 활용하면서 먼 이국을 밟았다는 설렘은 이제 과거로 묻히게 된다. 그 과거는 지금이라는 현재에서 차츰 멀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여행은 분명 축복이다. 일상에서 떠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는 그 자체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할 일이다. 그 어떤 일보다 지금과 지금 만나는 사람과 지금 하는 일에 가장 충실할 수 있는 것이 여행이다. 그것이 가족과 함게 했기에 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감사함이다.
일찍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짐을 부치고, 베트남 출국 수속을 밟고 면세점을 둘러보았다. 특별히 살 것은 없다. 같은 물건 종류인데 시내 롯데마트가 더 싼 것 같았기 때문이다. 6번 대합실 의자에 앉아 보딩 타임을 기다라다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잠에 떨어졌는데 비행기 탈 시간이다. 짧은 여름옷을 겨울옷으로 갈아입었다.
한국 시간으로 7시 지나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가족들은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나만 차를 가지러 주차장으로 갔다. 이른 아침이라 쌀쌀하다. 손도 시리다. 차 앞에 가니 닷새 동안 야외에서 공손하게 있는 차의 모습이 측은해 보인다. 성애를 뒤집어 쓴 차를 녹이고 가족을 태우러 가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10번 게이트 앞으로 오란다, 짐을 싣고, 청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다. 나만 빼고 모두 잠에 떨어졌다. 중간 좌석에 앉은 손녀, 손자도 깊은 잠에 떨어졌다. 어린아이들이 후일 베트남 여행을 어떻게 기억할까?
할아버지, 할머니랑 함께 한 여행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사진과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정도 베트남 여행을 카페 ‘시월(詩月)’에서 사진과 글로 만지작거릴 생각을 하니 그것 또한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감사합니다. 여행은 창조주를 곁에 두는 일이고, 감사함을 발견하는 일이고, 내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여행 후 다시 여행을 꿈꾸는 삶입니다.
첫댓글 부겐빌리아, 반칸이 인상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