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여러분들도 어디선가 들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동네에 큰 홍수가 나서 집은 물에 잠기고, 온갖 귀한 물건들과 기르던 가축들이며
세간들이 둥둥 떠내려가더랍니다.
어떤 상거지 父子가 멀찌감치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아들거지가 하는 말...
“아부지! 우린 암시랑토 안한디…저 사람들은 머땀시 저리 울고불고 초상집이라요?”
아빠거지가 흐뭇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면서 말합니다.
“그게 다 애비 덕인 줄 알그라~잉”
잠깐 웃고 넘길만한 농담거리입니다만 은근히 심오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손실되는 재산이 많을 것이니, 그로 인한 상실감과 앞으로는 없는 재산으로 먹고 살아갈 일에 대한 공포심으로 인한 고통이 더 큽니다만, 원래부터 가진 것이 별로 없던 거지부자는 설령 자기네 움막이 불에 타던 물에 죄다 떠내려갔더라도 대단한 손실일 리가 없을 터이니, 울고불고 할 일도 아닐 겁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또 하나 해드립니다.
어느 중년의 부부가 깊은 산 암자에서 수행하던 스님에게 법문을 청합니다.
“스님. 쇤네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우리는 먹고 살만한 정도인데, 주변 사람들이 제게 자꾸 돈 빌려달라, 기부해달라며 찾아와서 미치겠습니다. 남 도와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젠 지겹습니다.”
스님 曰
“그럼 그나마 갖고 있는 재산을 전부 나한테 주시게나. 도와달라는 그 사람들 보다 더 가난해져 버리면 그래도 도와달라고 할까?”
우리는 못 가져서 힘들다고 아우성이고, 많이 가지면 가진 대로 또 다른 고민이 많습니다. 이런 고통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먹을 것이 없고, 입을 옷이 없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정도의 ‘절대적 빈곤’은 얼마든지 해결되는 과제입니다만, 남들과 비교해서 더 잘 먹고 더 잘입고 싶어하는 유형의 ‘상대적 빈곤’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탐욕스러운 ‘마음의 病’임을 깨닫고 스스로 치유하지 않고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 과제라고 지난 칼럼에서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근본적으로 3가지 毒을 매일 숙명처럼 들이마시면서 살고 있습니다.
삼독(三毒), 즉 탐, 진, 치 (貪嗔痴)인데, 탐욕과 화냄, 어리석음을 말합니다. 어리석어서 사리분별을 못하니 배고플 때 낚싯밥인 줄도 모르고 덥석 물다가 잡혀 죽고, 배가 부른대도 욕심에 끄달려서 또 당하고, 그래서 화내고 발광하는 존재가 삼독에 빠져 사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자기가 어리석은 줄을 알면 항상 겸손하고 조심하게 되며, 적당히 배가 부른 줄을 알면 自足하고서 배고픈 자와 나눌 줄을 알며, 짜증나고 힘든 일이 닥쳐도 자기가 쏘았던 화살이 되돌아온 줄을 깨닫고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삼독을 벗어난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 할만 하겠습니다.
돈이 많으면 자유가 생긴다고 합니다. 돈이 많으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이것이 바로 자유라고 합니다만 이것은 무지몽매한 착각입니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돈이 많아도 마땅히 써야 할 곳을 알아서 잘 쓰는 사람이고, 어떤 경우에는 돈을 쓸 때 결국 자기에게 손해가 날 것임을 알아채고 딱 끊는 절제를 하는 ‘밝은 자유’를 누립니다.
밝은 사람이라면 비록 돈은 넉넉하지 않더라도 자기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임을 알고서, 시시때때로 남을 위해 베푸는데 인색하지 않고, 세상을 위해서 ‘잘 쓰이는 삶’으로 만들어가려는 사람입니다. 그게 결국에는 자기에게 이익인 줄을 아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지요? 적당한 열량과 영양을 섭취했음에도 식탐을 주체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더 좋은 것만 찾아서 입에 집어넣다가 결국 비만과 성인병에 걸리고, 이를 치료하려고 또 돈 쓰는 등의 무한 반복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시간이 좀 걸려도 자기 두 다리로 걸어가면 될 것을 가까운 거리도 차를 타고 갑니다. 그러니 운동부족으로 인한 육신의 병을 치료하고자 돈이 또 듭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들을 보호한답시고 어릴 적부터 툭하면 자가용을 태우니, 이 아이들은 나중에 걷고, 버스 타는 것에 대한 저항을 하게 됩니다. 대학교만 들어가면 차 사달라면서 땡깡 부릴지도 모르지요. 부모의 삼독이 자식에게도 전이되어 버린 겁니다.
주변의 고통 받는 생명을 위해 마땅히 돈을 써야 할 타이밍이 왔음에도, 조금이라도 내 재산이 축날까 싶어 차갑게 외면하기도 합니다. 자기 재산이 세상으로부터 잠시 얻어온 것임을 알지 못하므로 결국 가장 가까운 가족, 친구, 친지로부터도 외면을 당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돈이 최고라고 합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입니까?
지금 돈이라도 많이 모아두지 않으면 막연한 미래에 어찌 살라는 말이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막상 닥치거든 상황에 맞춰서 아껴 쓰던지 빌어먹으면서 살라고 하겠습니다. 인간은 저마다 영리한 척 하면서도 실상은 어리석은지라, 처한 환경에 맞춰 살기가 싫은 것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단언컨대, 환경에 맞추지 못할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비단 돈 문제가 아니라도, 인생의 모든 문제는 나름대로 미리 준비한다고 해서 미래의 닥칠 문제에 대해서 준비를 충분히 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내어 적응하고, 때론 환경을 조금씩 변화시키기도 하면서 어떠한 환경과도 맞추어 살게 되어 있습니다.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할지 도무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닥친 이순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열심히 살다 보면 아무도 몰랐던 미래가 무식하게 다가와도 그전처럼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은 변해도 돈은 안 변한다면서 돈만 준비한 사람은 돈 바깥의 훨씬 많은 위험에 대해서 한방에 무너지고 맙니다.
여러분은 모두에 소개한 그 거지父子보다 더 행복하다고, 미래에 닥칠 환경에 대해서 더 생존력이 강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만약 재화의 크기에 비례하여 행복의 우열이 정해진다면 거지보다는 부자가, 시골사람보다는 도시인이, 아프리카나 동남아 국민보다는 G7국민이, 고대인보다는 현대인이 더 행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위와 같이 가진 돈이 적더라도 당당하게 ‘돈의 주인’ 으로서 행복하게 살 것인지, 가진 돈은 억수로 많지만 돈 지랄하는 ‘돈의 노예’ 가 되어 행복을 살 것인지는 항상 순간순간 다만 자신만이 선택할 뿐입니다.
https://youtu.be/qMY8dnFff5I
첫댓글 좋은글 잘~ 보고갑니다 .
워이 이 친구야! 가을걷이는 얼마나 끝내 가시는가?" 어서 끝내고 미륵이나 한번 다녀오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