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 있는 우리 사람의 영(3-3)/ 통회하는 겸손한 영
<통회하는 겸손한 영>
이사야서 57장 15-16절은 “15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16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장구히는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나의 지은 그 영과 혼이 내 앞에서 곤비할까 함이니라”고 말한다.
이 말씀의 전체적 의미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룩하신 자, 곧 가까이 할 수 없는 곳에 자리 잡고 계시는 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깊은 곳, 곧 겸손하고 낙담한 자들 가운데도 거하시는 분이심을 말씀하시고 있다.
특별히 우리는 이 시(詩)에서 “통회하고 겸손한 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무 힘들게 하지 않으시리라고 말한다. 만일 그분께서 우리에게 너무 힘들게 하신다면, 우리의 영은 곤비하고 말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고난과 고통을 허락하시지만, 여전히 거기에 어떤 한계나 제한을 두고 있음은 주께서 우리의 영을 주의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의 영이 그와 같은 어려운 상황을 장기적으로 견딜 수 없음을 잘 아신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영으로 하여금 곤비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심한 고통을 장구히 허락하시지 않으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영을 관심하고 계심을 말한다.
<격(激)한 영과 거만한 영>
시편 106편 33절은 “이는 저희가 그 심령(영)을 거역함을 인하여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므리바 물가에서 모세를 거역할 때, 모세는 화를 참지 못했고 그 결과 그는 죄를 범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만일 영이 강건하다면, 어떤 상황에 있든지 아무리 육신이 고통을 당하고 감정이 괴로울지라도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 거듭난 우리의 영은 반드시 성령과 동역해야 한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영을 사용해야 한다.
믿는 이들이 영을 사용한다면, 그의 영은 점점 강건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에 영은 성령을 거스르는 모든 것(완악한 의지든, 혼란한 사상이든, 무질제한 감정이든)을 대항할 능력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은 항상 자기의 영이 강건한 상태에 있도록 자신의 영을 지켜야 한다(잠 16:32).
이것은 영이 사람의 가장 깊은 부분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보여 준다. 내가 당신의 혼의 생각을 격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당신의 영을 격하게 한다면 그것은 정말 심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본질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잠언 16장 18-19절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영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영)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한다. 영 안에서 거만하게 되고 영 안에서 교만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우리의 영을 다스림>
잠언 16장 32절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영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의 영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영을 다스릴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매우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의 영을 다스린다는 것은 성을 빼앗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당신이 당신의 영을 통제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처절한 패배를 의미한다. 잠언 25장 28절은 “자기의 영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고 말한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영을 통제할 수 없다면 그것은 모든 성벽이 무너져서 파괴된 성읍같이 당신이 처절하게 패배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보호는 우리의 영과 함께 있고 우리의 영 안에 있다.
<냉철한 영과 탁월한 영>
잠언 17장 27-28절은 “27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지식이 있는 자는 말들을 아끼며 명철한 자는 뛰어난 영을 가졌느니라. J. N. Darby). 28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원문 참조)고 말한다.
우리 주님을 위하여 우리에게 열렬한 영이 필요하지만, 때로는 충분히 이해하기 위하여 냉철한 영(원문 참조)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우리가 열렬하게 불타야 하지만, 영적인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 안에서 냉철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만일 우리의 영이 냉철하지 않다면, 우리는 수시로 지나친 행동을 하게 된다. 원수 마귀의 목적은 언제나 우리 믿는 이들이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게 하여 그의 영으로 성령과 접촉하는 것을 잃게 하는 데 있다.
영이 냉철하지 않을 때에 생각은 자극을 받게 되고, 생각이 일단 불타면 믿는 이의 많은 행위는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으로 된다. 영이 냉철하지 못하면 바로 혼적인 사람이 된다. 그러나 많은 믿는 이들이 영과 혼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의 냉철함을 보존하는 것은 언제나 유익이 있다. 우리의 영이 타고난 감정으로 자극을 받을 때에 어떤 행동을 취한다면 아마도 그 행동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될 것이다. 우리의 생각, 감정, 의지는 혼적이기 때문이다.
다니엘서 5장 12절과 6장 3절은 “다니엘은 영이 탁월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라고 말한다. 다니엘이 탁월한 영의 사람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의 영이 우리를 보존함으로 네 영을 삼가 지키라>
잠언 18장 14절은 “사람의 영은 허약함(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그러나 영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라고 말한다. 여기서의 허약함이란 병을 의미한다. 곧 사람의 영은 그가 고통받고 있는 병을 능히 이긴다는 말이다.
사람의 영은 육체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육체에 질병이 생겼을 때 능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체험적으로 이것을 간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육체적으로 병들었을 때 우리의 영도 약해진다면 무서운 일이다.
그것은 참으로 심각한 일이다. 만일 우리가 영 안에서 강하다면 우리의 몸이 얼마나 병들었든지 간에, 우리의 영은 그 육체적인 병을 이길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영이 상했을 때, 그것은 참으로 심각한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의 육신과 마음이 동시에 병이 들므로 이 세상을 일찍 떠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영이 능히 육신의 병을 이길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영 안에 있는 성령이 근본적으로 생명을 주는 (살려 주는)영이시기 때문이다(고전15:45).
물론 구약시대의 영은 사람과 직접적인 생명 관계를 맺지 못했으나 위로부터의 생명의 능력은 부여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아만이나 사르밧 과부의 아들 등이 치유된 예가 있는 것이다. 영은 우리의 혼(생각, 감정, 의지)에는 물론 우리의 몸에도 영향을 준다.
신약에서는 우리 죽을 몸에도 생명을 준다고 말하고 있다(롬8:11; 고후4:11). 이는 우리의 병든 몸이 치료됨과 나아가 우리 몸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활력화 됨을 의미한다.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우리의 전존재(영, 혼, 몸)에 성령을 생명으로 공급받아 주님과 깊은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다(살전 5:23).
말라기 2장 15-16절은 “여호와의 영이 유여(有餘)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영)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가증한 일)를 행치 말지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지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영이 유여하시어 더 많은 사람을 지을 수 있었으나 오직 남녀의 결혼을 통하여 하나가 되게 하고(마19:6), 이로써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셨던 것이다. 남녀의 결합이 온전할수록 그 자손은 경건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말씀은 우리에게 우리의 영을 삼가 지킬 것을 말한다. 자신을 변명하지 말고, 따지지 말고, 당신의 영을 삼가 지켜야 한다. 당신의 영은 당신의 행동의 근원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을 관심하신다. 당신은 당신의 영을 삼가 지켜야 한다.
<영 안에서 총명하게 되며, 영 안에서 인내함>
이사야 29장 24절은 “영이 그릇된 자도 총명하게 되며”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능력이 탁월하게 드러나므로 마음(영)에 의혹이 있던 자도 원망하는 자도 모두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것임을 뜻한다.
전도서 7장 8-9절은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영이 교만한 영보다 나으니 급한 영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고 말한다. 만일 당신이 성급하지 않고 참을 수 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승리할 것이다. 많은 때, 우리는 잘 참지만 단지 감정 안에서 참을 뿐 영 안에서 참지 못한다.
감정 안에서 참는 사람들은 결국 그들의 영 안에서 조급하게 되고 만다. 참된 인내는 영 안에 있는 영원한 참음이다. 우리는 영 안에서 인내해야 하며, 영 안에서 조급하지 말아야 한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