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행(만물상 능선)

가야산행(만물상 능선) 금년 여름은 너무 길다. 9월인 지금도 덥다. 어제 태풍이 왔다. 일요일 고향 합천군 가야산 산행이 예정되어 있는데 비가 새벽에도 그치지 않는다. 갈까 말까 많이 망설이다가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친구가 회장으로 있는 산악회의 정기 산행에 비회원으로 7시 40분에 관광버스에 올랐다. 정식 회원이 아니어서 서먹서먹하다. 울산 고속도로 입구에서 산악 회장의 말씀은 태풍으로 국립공원인 가야산은 입산이 금지되어서 산행 목적지를 경북 문경의 주흘산으로 변경한다고 알려 준다. 실망이다. 그냥 따라 가보자. 비는 계속되었고, 버스는 북으로 향했다.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북으로 간다. 비가 조금씩 그치는지 안개가 자욱하다. 이정표에 경북 상주시가 보일쯤 산악회장이 마이크잡고 한 말씀하는데 다시 가야산으로 가겠단다. 황당하다. 어째든 고향 산으로 간다니까 나는 묘한 승리감이 든다. 시계는 10시를 조금 지났다. 12시에 경북 성주군 가야산 백운동 계곡의 주차장 입구에 도착했다. 근처의 좁은 임도위에 쪼그려 앉아 점심 도시락을 먹는데 산모기가 엉덩이를 물어 아주 불쾌하다. 산행전의 스트레칭, 山行路, 도착 시간을 설명한다. 백운동 계곡은 수년 이상 입산 금지된 곳으로 금년에 해제되었다고 한다. 초입은 진흙이다. 어제 저녁부터 오늘 새벽까지 내린 비로 산행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동행한 회원들을 따라서 그냥 걸었다. 가파른 언덕이라서 금세 땀이 흐른다. 숲을 지나고 능선이다. 하늘은 흰 구름과 파란하늘이 보이고, 골짜기에는 안개가 걷힌다. 산하의 마을이 평화롭다고 느껴졌다. 쉬지 않고 걸어가니 내가 선두다. 차츰 바위들이 불쑥불쑥 보이고 키 작은 소나무위로 햇살이 따갑다.   안개가 먼 산에 바람과 함께 하늘로 오르고 날은 완전히 개었다. 바위群들이 가득하다. 협소한 바위틈에 끼인 소나무가 있어 절경사진을 찍었다. 기암괴석이 많다. 적당히 마모된 불규칙 타원형의 바위가 날카롭지 않아서 편안하다. 장군모상의 바위, 솥단지 같기도 한 펑퍼짐하게 솟은 바위, 소나무 숲으로 적절히 감춰진 은은함이 경이롭다. 그래서 이름하여 만물상이고 했는가? 설악산이나 금강산의 만물상은 아주 날카로운 봉우리 때문에 칼의 이미지였다면, 이곳의 만물상은 우리 곁에서 보아온 평이하고 편안한 사물을 연상하게 하였다. 근육질의 骨山보다 둥글둥글한 肉山이 더 친근하다. 이래저래 한참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 내 고향 합천 가야산에도 이런 곳이 있었던가? 남산제일봉의 경치도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만물상 능선이 훨씬 나은 듯하다. 하지만 이곳은 성주군이란다. 처음 가야산에 등산한 적은 꼭 30년 이전 군입대 직전이다. 옛날을 회상해 보았다. 1980년 광주사태가 일어난 직후 6월경 입영영장이 날아왔다. 입대 전에 나의 세월을 정리한답시고 고향의 산을 찾았다. 스물세 살의 획을 긋고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었다. 먼저 해인사의 홍류동 계곡에서 텐트를 치고 저녁을 먹었다. 하늘엔 별이 쏟아질 듯 했고, 캠핑 온 대학생들과 함께 당시 유행했던 ‘창밖의 여자’, 시온주의자의 고향 팝송 ‘바빌론의 강’을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우리가 놀던 옆 구석진 곳에서 해금을 연주하던 늙은 할아버지, 애조를 띈 미완성의 음률이 가슴을 후벼 팠다. ‘불효자는 웁니다.’를 연주하는데 당시 내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 생각으로 친구 앞에서 울지 못하고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난다. 계곡의 공터에 텐터치고 하룻밤을 보냈다. 새벽에 비가 와서 몹시 불편했었고, 다음날 아침, 비를 맞으며 가야산 정산을 다녀왔는데, 그날의 안개 때문에 정상에서 경치를 볼 수 없었다.   오늘은 출발 때 날씨가 궂었지만 만물상 능선에 도착하니 하늘은 맑게 개고 풍경은 좋다. 이런 비경이 가야산 줄기 속에 숨어 있다니, 아주 많은 선바위와 형상석이 즐비하다. 푸르른 소나무 잎에 가려져 더욱 신비롭고 경이롭다. 걸으면서 앞보고, 뒤를 함께 조망하자니 연신 바쁘고 발을 헛디딘다. 함께 간 일행 중 만물상 구간만 보고 하산한다. 나는 정상에 올라가야 한다. 신문, 텔레비전, 잡지 등 합천 소식만 보면 모두 멈추고 집중하는 나인데, 그것이 고향에 대한 애착인지, 집착인지, 그런 이유로 가야산 정상을 다녀와야 내 고향 사랑함을 달랠 것이다.   가야산의 정상은 어디인가. 만물상 능선은 성주군에 있어 가야산 북쪽으로 올라갔다. 가야산 정상의 높이는 1430m 라고 적혀있었고, 상왕봉, 우두봉, 남산제일봉(매화산) 불교식 이름인데 잘 모른다. 힘들여 정상에 도착했는데, 칠불봉(七佛峰)이 해발 1433m 라고 적혀있다. 또한 칠불봉은 경북성주군 관할이라고 하며, ‘가야산의 관할을 합천군에서 경북 성주군으로 이전해야한다‘고 까지 적혀 있다. 칠불봉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우두봉(牛頭峰) 1430m 이며 합천군 관할이란다. 가야산 국립공원 전체 면적의 절반이상과 해인사, 청량사, 홍류동계곡, 최치원 유적지, 남산 제일봉(매화산) 등은 우리 합천군에 모두 있다. 정상이 바뀌면 행정구역의 관할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산 전체의 관할권이 바뀐다고 한다. 비록 최고봉이 성주군에 있다하여도 우리 합천군은 예전의 전통성 때문에 가야산의 관할은 합천군이란다. 국토지리원의 애매한 발표를 했다한들 “하나의 산에는 여러 봉우리가 있으며, 그 중 제일 높은 봉우리라 해도 정상(頂上)이 아니며 전체의 봉우리 중에서 제일 중심이 되는 봉우리가 그 산의 頂上이다” 합천인들은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가야산의 두 개의 정상을 보았다. 나는 합천군 태생이라서 합천군의 가야산에 애정을 더하고 싶다. 같이 오른 일행과 頂上酒 한잔과 과일과를 나눠 먹었다. 하산 시에도 햇살이 뜨겁다. 일행 중 한분의 걸음이 몹시 빠르다. 나도 같이 보조를 맞추어 보았는데 많이 힘들었다.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고 상쾌하게 저녁식사와 함께 뒤풀이를 했다. 콩국수와 막걸리에 온몸이 녹아 내렸고 버스 속에서 가물거리며 울산으로 돌아왔다. 산을 잘 모른다. 그냥 언덕이 있어 오르고, 수목이 있어 사이를 가르며, 바람이 있어 청량함을 느낀다. 산 공부를 해야 하느냐?   2010년 9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