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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연구실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는 결정적인 위사(僞史)들(1)
광화세계 추천 1 조회 737 16.03.12 02:35 댓글 3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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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03.18 10:39

    첫댓글 광화님안녕하세요....모처럼 '서술식(설명식)' 글을 올려주셨군요,...그래서, 두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우선,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는 결정적인 위사(僞史)들"로서 지적하시는 사료들이 위사임에 대해서는 카오스도 역시 동의하고 있으므로 이점은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만, 그 위사를 읽어내는 방법론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려둡니다...그래서 굳이 '역사왜곡 여부'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하지 않으셔도 되므로 그냥 질문에 대해서만 말씀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1) [그림1]에서....'바다위를 지나는 직선거리의 측정'을 기준으로해서 '굴곡지수(=DMf)'를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요?..

  • 16.03.18 10:41

    (2) 그리고 唐尺(당척)으로 '1里=540m'를 적용하셨었는데,....(2-1) 왜, '唐尺(당척):1里=540m'를 적용하시는가요?...그리고 또, (2-2) 왜, '唐尺(당척):1里=540m'이라는 것이 생겨났었었으며,.....아울러서 '唐尺(당척)을 적용함'으로서 [정치적,지리적인 측면에서] 그 여파가 어떻게 나타났었을까요?[이는 아마, '唐尺(당척)을 만들어 낸 사람들의 숨은 의도'가 무엇이었었는지?와도 연결된다고 봅니다만,..]

    간단히 설명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작성자 16.03.18 12:57

    (1)길이를 재는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 주어진 기록을 분석한 것입니다. 바다로 갔든 돌아서 갔든 거리수치가 있고 지점(요양, 평양)이 주어져 있습니다. 구불구불한 지수 자체의 정확성이 아니라 직선거리와 실제이동거리의 '배수'자체를 뽑은 것입니다. 그리고 기준 수치로 삼아 대강의 거리를 알아본 것입니다. 오차는 적정치를 곱하면 밴드가 형성되고 그 안에 찾고자하는 지점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오차가 100km나더라도 걱정항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최소한 같은 지역이냐, 아니냐, 또 동쪽이냐 서족이냐, 등 사고의 기준점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지요. (2)건축학자들이 건축물을 근거로 해서 뽑은 결과지요.

  • 16.03.18 21:09

    (1)'굴곡지수'를 그런 개념에서 적용하신 것이군요....물론 '굴곡지수' 자체를 광화님께서 정의하신 것이므로 일단 받아들입니다만,....고대인들이 실제로 통행하면서 측정한 거리(里數)와 그것과 대체로 같은 경로에 대해 현대적인 측량법에 의해 측정된 거리를 비교하는 것이 좀 더 유용하다고 여겨집니다. 즉, 바다위의 거리로서 비교하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요소가 개입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고대와 현대의 경로를 같이해서 구한 지수를 기준으로 잘 모르는 고대거리를 역산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100km 정도의 오차가 있을 수 있음은 이해를 합니다만 지금까지 광화님께서 비정하신 고대지명들의 위치가

  • 16.03.18 21:28

    @카오스 대체로 100~200km 정도의 오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그것들이 누적되어 전체적인 배치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굴곡지수 산출에 대해서도 재고하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예, 唐尺이' 현대 건축학자들이 건축물을 근거로 해서 뽑은 결과'일 수는 있습니다만, 그것은 결과일 뿐이지 왜 당나라에 들어서서 그런 늘어진 잣대를 사용하게 되었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즉, '漢尺1里=420m'와 '唐尺1里=540m'는 같은 1里의 거리에서 약30%의 차이가 납니다. 즉. 당나라가 단순히 당척을 적용하는 것만으로서도 약30%의 거리를 뻥튀기한 것[=지명이동시킨 것]과 같아집니다.

  • 16.03.18 21:34

    @카오스 물론 30%의 거리를 작게 볼 수도 있습니다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나게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즉, 이는 대륙지명을 한반도로 이동사키는 차원의 지명이동과는 다른 대륙(당나라) 내부에서의 지명이동이 함께 이루어진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런 측면에서도 지명비정이 감안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냥 기계적으로 굴곡지수를 적용할 수 없는 요인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부분들이 누적되어서 광화님께서 비정하신 위치들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보입니다. 한번 참고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 16.03.18 21:48

    그럴 수도 있겠군요. 과연 맞힐 수 있을까 의문이 없지는 않았지만, 결과가 하도 정확히 나타나서 논리가 맞았다고 결론이 나온 것이지요. 이미 대부분의 유적이 다 찾아졌어요. 이제 유적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하는 일이 남은 것이지요. 평양성은 없어졌더라구요. 또 개성이 없어졌구요. 그러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지요. ㅎㅎㅎ

  • 16.03.18 21:48

    '대부분의 유적이 다 찾아졌다'고 하시지만,,,,글쎄요....당나라가 신라를 계림도독부로 삼게 된 시기가 벌써 1,400년전의 일입니다. 그동안에 명멸한 왕조도 수없이 많았었고 또 의도적으로 역사왜곡을 하기도 했었었으므로 1,400년전의 삼국유적을 그대로 남겨두었을 것 같지 읺습니다. ...아니, '역사왜곡'을 하는 입장이라면 일부러라도 삼국의 유적을 없에고서 새로이 자기들의 유적을 만들었었을 것으로 봅니다....[물론, 平壤(평양)이란 지명은 애당초부터 없었던 지명이니 찾을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봅니다(다만, 현,요하요양을 平壤(평양)으로 볼 수는 있지만,... 고구려평양성과는 무관합니다)]

  • 16.03.18 21:59

    @카오스 그리고, '開城(개성)'은 후대의 지명이고.... 원래는 '開京(개경)'이었었는데, 말그대로 '서울(京=도읍)을 열다(開)'의 의미에서 '나라를 열었다(혹은, 나라를 연 곳)'을 지칭하는 일반명사적인 표현이었었는데, 후대에 '서울(京=도읍)의 명칭'으로 사용되다가 현,황해도 개성으로 이주하면서 '서울(京=도읍)의 명칭'을 '開城(개성)'이라고 한 것이므로 아마, 중국땅에서 고려의 '開京(개경)'이라는 곳은 찾을 수 없을 것으로 봅니다. 물론 '고려는 靑松이고 신라는 黃葉이다'라는 말 속에 힌트가 있긴 합니다만,... 아마 그 흔적조차도 찾기가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만일 찾으셨다고면 좀 더 면밀하게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 16.03.18 22:30

    역사를 찾고저하는 사람과 감추고자 하는 사람은 서로 생각이 다르겠지요. 그러나 형사가 도둑놈을 잡을 때처럼 하면 쉽게 풀리지 않겠어요? 북북 우기면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도 하고 있겠지요. 지금처럼 말입니다.

  • 16.03.26 08:03

    많은것을 알면서 역사의 진실을 훼손한 작자들에 대한 원망이 앞섭니다.

  • 작성자 16.03.26 10:25

    중고등학교 시절에 간혹 특강 하시던 교수님들이 계셨죠. '지리지만 읽어보면, 역사가 어떻게 왜곡돼어 있는지 알 수 있는데,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고 하셨죠. 그러나 이제 그런 분이 안계십니다. 모두 사라지셨죠.

  • 16.03.26 13:17

    그냥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역사해석을 받아들였었던 일반인들을 제외하고,...역사를 주체적으로 해석했었던 사람들 중에서....(1)'진실을 알면서도 역사의 진실을 왜곡(또는 훼손)한 분들=대략10%정도'이고,...(2)'왜곡(또는 훼손)되어 있는 역사를 마치 진실인양 막무가내로 우겼었던 사람들=90%'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1)에 해당되는 분들이 '역사왜곡의 주범(?)'이긴 하지만,. 그분들은 '분명하면서도 숭고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잇었었으므로 비판을 할 수는 있지만, 비난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똥인지 됀장인지도 모르면서 특히 자기의 영달을 위해서 설쳐댄 (2)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반드시 비난받아야 할 것입니다.

  • 16.03.26 13:40

    @카오스 이말은, 애당초 '역사왜곡이 시작된 배경'이 과연 무엇이었었는지?를 한번 깊이 고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과연 '인간의 삶에 있어서, 모든 역사왜곡은 반드시 죄악(?)일까?'라는 명제에 대한 답을 찾아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즉, 물론 어떤경우에도 '왜곡된 역사는 바로잡아져야 할 것'이고 컴퓨터가 일상화된 현대에는 '역사왜곡'을 더 이상 은닉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곧(금명간에)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수 밖에 없으니.. 이제는, '역사왜곡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 보다는 '역사왜곡의 역사적 의의'를 먼저 정립해두어야 할 때라는 의미입니다

    다만 아직은, 정확하지 않는 역사해석들이 난무하고 있어서 매우 안타깝지만,..

  • 작성자 16.03.26 13:46

    @카오스 카오스님은 (1)에 속하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좀 더 따져 볼 일이 있습니다. (1)의 경우에도 역사왜곡의 주범(?)이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1)이 역사를 다루기 전에 이미 역사가 왜곡되어 있었으니까요. 명대 초에 옛 고려 땅을 몽땅 차지하게 되자 비로서 역사 지명들을 옮길 수 있었는데, 이에 따라 조선 초에 명의 압박을 받아 '삼국사기'를 뜯어 고친 것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왜곡된 역사를 고쳐나갈 생각을 않하고 (2)를 거느리며 계속 거짓말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나간 것이 잘못이지요. 또 올바른 역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옥죄어 가며 소탕격멸시켜 버린 죄가 있는 것이지요. 또 자칭 숭고한 목표(?)를 갖고

  • 작성자 16.03.26 13:49

    대처했겠으나, 오히려 동북공정에 휘말려 버린 잘못이 있는 것이지요. 즉, 그 잘못된 결과들이 (1)과 (2) 모두에게 있는 것이지요.

  • 작성자 16.03.26 14:01

    카오스님 의견에 동의하겠습니다. '역사왜곡의 역사적 의의' 때문에 오랫동안 숙고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칭 '삼국사기 비밀코드' 총 5권을 쓰면서 '삼국사기'를 뜯어 고친 조선의 사관들을 어떻게 논할 것인지를 밝히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못난 조상을 펌하할 것인가, 아니면 '의의'를 찾아낼 것인가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후손이 조상을 욕되게 할 자격은 없다는 결론을 나름 세웠습니다. 도대체 후손을 생각하지 않는 조상은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삼국유사' 발문에 써있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세월의 이치를 숙고하고 후손들이 올바른 역사를 찾아주기기를 갈구했던 조상들의 입장을 밝혀 놓았습니다.

  • 작성자 16.03.26 14:12

    한 줄이라도 써놓아야 균형있게 고려할 수 있는 계기가 명료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서 (1)과 (2)의 행태는 미련했음이 밝혀지게 된 것입니다. 중화 공산당도 심사숙고해서 계속 역사왜곡을 밀어부쳤는데, (1)과 (2)는 결과론적으로 닭 쫒던 개모양 멀뚱멀뚱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꼴이 되어 버렸지요. 인터넷 환경을 상상하지 못했겠지요. 또 공대 출신이 한문으로 된 중국25사 지리리를 통독하고, 당척과 한척을 밝히고, 사서의 거리수치를 수학의 논리로 풀어서 중국25사의 위사들을 분별하여 주요 지명들의 본래 위치를 밝혀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겠지요. 그러나 걱정하지 마셔요. 역사를 잃어버렸던 한국인은 이제

  • 작성자 16.03.26 14:24

    역사를 찾았고 그 반면에 중화인민들은 부풀려진 역사에 흥얼거리다가 역사를 잃어버린 꼴이 돼어 버렸으니까요. 역사를 잃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하잖아요. 그래도 중화인민 3/5는 우리 조상님들이 역사를 같이했던 사람들의 후손이니 우리가 역사를 가르쳐 주어야 하겠지요. 고대 친척을 찾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1)과 (2)는 나름 '숭고한 목표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하나,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언하고 황제가 되었으며, 대일항쟁기를 극복하고 자유민주공화국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1. 역사왜곡을 지속시켰으며, 2. 올바른 역사를 하고자 하는 분들을 매장시켰으며, 3. 동북동정에 대처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16.03.26 14:35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오스님은 걱정하지 마셔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들에 끼어있다가 남의 나라들을 도와줄 수 있는 나라가 된 유일한 나라인데, 조상님들이 지난 수천년간 동북아시아를 역사하시기 위해서 많은 주변 민족들을 끌어안고 단군의 건국이념을 추구하신 것처럼, 우리 후손들도 공통분모를 최대한 발굴하는 노력을 한다면 강력한 결집체가 주도해 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지요. 즉, 올해가 기회라고 봅니다. 카오스님의 역량을 몰아 주세요. 역사왜곡 근거는 거의 모두 찾았고 교과서 편집 메카니즘에서 방향을 잡는데 기여하신다면, 우뚝 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공부해서 밝힌 내용들은 인터넷에 몽땅 깔아놨어요.

  • 16.03.27 16:25

    카오스가 '(1)=10%, (2)=90%'로 분류한 것에 대해서... 광화님께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언급해 주셨군요...즉, '(1)=10%' 중에 '(1a)진짜 숭고한 목적을 가진분들'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1b)숭고한 목적을 사진 것처럼 가장하고서 (2=90%)를 거느리고(=이용해서) 더욱 큰 거짓말(=왜곡)을 한 부류들'이 더 많았었으므로 결국 '(1)과 (2)는 동류(=同色)이다'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군요.. 예,. 카오스도 그런 분류방법에 대해서 동의를 합니다...그러나 비록 (1b)가 (2)나 다름없는 폐해를 끼치기는 했었었지만, 그래도 "(1a)가 가진 '숭고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었었다"는 점을 무시해서는 않된다고 봅니다.

  • 16.03.27 16:23

    @카오스 물론, 카오스도 (1b)의 행위를 변호할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1a)와 (1b)가 공유했었던 '숭고한 목적'의 중요성을 무시하거나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이고, 이 '숭고한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역사왜곡의 규명'에 앞서서 선행되어야 비로소 '역사왜곡이 왜 일어났었는지(즉, 역사왜곡의 의의)?'를 비로소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는 취지입니다. 즉, '역사왜곡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 보다 역사왜곡의 역사적 의의를 먼저 정립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앞으로 있을) 역사왜곡의 규명 이후에 일어날 예기치 못할 혼란과 갈등을 미리 막을 수 있다'고 보아서 '(1=10%)의 숭고한(?) 목적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었던 것입니다.

  • 16.03.27 16:39

    어쨋든, 이제 '역사왜곡의 규명'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 되어 있다고 봅니다. 물론 광화님께서 지금 열심히 주장(발표)하고 계시는 '굴곡지수에 의한 왜곡지명의 실제위치의 추정'도 그 큰 흐름의 하나임에 분명합니다. 즉, 과거의 역사왜곡자들은 이제 '컴퓨터와 인터넷 환경'의 위력앞에 더 이상의 '왜곡'을 감출 수 없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이제는 '역사왜곡의 규명'이 누구에 의해서 밝혀지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얼마나 빨리 밝혀질 것인지가 문제라고 봅니다. 물론 그 방법도 다양한 각도에서 방법이 제시될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이제는 '동북동정'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 분명해질 것으로 봅니다.

  • 16.03.27 17:19

    @카오스 따라서 '역사왜곡의 규명'을 너무 '현,한중일 동아시아 정치상황에 기반한 동북공정'의 대응논리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즉, 자연히 무너질 동북공정 아니 자연히 무너져야만하는 동북공정을 의식해서 '역사왜곡을 규명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저 동북공정은 그냥 무시하면 된다고 봅니다. 즉, 불필요하게 미리 앞서서 서로 긴장감이나 적대감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너무 '동북공정'이니...'역사광복'이니....'민족(단군의 건국이념)'이니...하는 '일방의 영광'을 지나체게 강조하는 것은 (영광은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므로) 조금은 자제되어야 말썽이 없다고 봅니다...

  • 16.03.27 17:23

    어쨋든, 카오스가 (광화님의 연구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지만,) 아직 광화님의 손을 완전히 들어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라고 생각하시고 참고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1) '굴곡지수'를 너무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굴곡지수의 정의'를 재점검해 보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2) '역사왜곡'을 너무 '지명이동'에만 국한해서 보고 계십니다. [지명이동은 역사왜곡의 결과일 뿐입니다.]
    (3) '역사왜곡의 육하원칙(5W1H)'이 대체로 명확하지 않습니다. [매 사건마다 주체(who), 시기(when), 장소(where), 대상(what), 방법(how), 이유(why)가 제시되어야하는데, 대개 '장소(where)'만 제시되고 맙니다]

  • 작성자 16.03.27 22:50

    (1)굴곡지수의 정의라면, 실제이동거리/직선거리일 뿐이지요. 당척 1리=450m, 한척 1리=420m가 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굴곡지수를 활용해서 얻은 지점은 참고 지점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지점 인근지역에서 유적이 나타났지요. 그러니 굴곡지수는 아주 정확한 논리근거가 될 수 있는 셈이지요. 나타난 유적들의 전체적인 배치에 역사적 사건들을 대입하면 오류가 없이 맞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황당했지요. 예를 들면 어떻게 평양성이 산동성 덕주시 영진현일 수 있는가? 또 어떻게 요동성이 현 하북성 한단시 광부진일 수가 있는가? 상상을 초월한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각각 그곳에 두고 역사적 사건들을

  • 작성자 16.03.27 22:57

    @광화세계 대입하니 아주 잘 맞아들어갔습니다. 더불어 생각지도 않았던 지명들의 위치를 찾기도 했지요. 또한 그 지역에서 유적이 튀어나오다니.. 그러나 고고학적 입증을 더해 가려고 합니다.
    (2)당연히 역사왜곡의 결과물로서 지명이동이 된 것이지요. 그러나 왜곡된 상태에서 명확히 찾아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지명의 본래 위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명의 위치를 찾고나니 역사왜곡의 본질이 튀어나오더군요. 말하자면 꺼꾸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결론은 지명이동의 지엽적인 것이고, 국가간의 위상을 바꿔치기했더라구요. 삼국 등 건국년도를 약 200년 늦춰놨고, 가야는 500년을 잘라 먹었고. 한고조 유방은 백제출신이고,

  • 작성자 16.03.27 23:04

    (3)육하원칙 좋지요. 하나하나 역사해석을 해야겠지요. 그러나 이제 지명들의 본래 위치가 들어난 것이고 저 혼자하려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군요. 고려의 지명들을 풀어야 하는데, 역사해석은 오히려 간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명의 본래 위치가 역사 해석의 근본이 될 수 있는 게지요. 제가 할 수 있는데까지 지명들을 찾아 놓겠습니다. 카오스님께서 방관하시더라도 후손들이 이어 나갈 것입니다. 어느날 강연을 하는데 노인네들 틈에 고등학생이 끼어서 강연을 들으러 왔더군요. 벌써 제 저서 3권을 섭렵했다고 하더군요. 대한민국의 미래이고 한민족의 미래가 원상처럼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이죠.

  • 작성자 16.03.27 23:06

    카오스님이 맞잡아 주시면 훨씬 수월해지고 30년동안 국가정책을 해 본 경험을 더하면 용호가 날개를 다는 것일터인데....

  • 16.03.29 21:23

    예, 여러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광화님께서 추정하신 곳들이 '카오스가 추정하고 있는 삼국지명의 원래위치[==>이를 카오스는 '모델지명'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비록 후대의 왜곡역사에서는 '같은 지명'으로 불리우더라도 '역사왜곡된 이동지명에 해당되는 원래의 위치에 있었던 지명'이라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 '이동지명 ㅁㅁ'와 '모델지명ㅁㅁ'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에 '상당히(?) 근접하고 있음'에 대해서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광화님의 주장은 지금까지 여러 재야학자들이 제시한 '모델지명'에 비해서 '상당히(?) 정확하다'고 보고 있지만, 그 '상당히(?)'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는것입니다.

  • 16.03.29 21:35

    그러나, 현재 광화님이 주장하시는 내용만 하더라도 '획기적'이므로 항상 관심을 갖지고 지켜 보도록 하겠습니다. 건승을 바랍니다.

  • 작성자 16.03.29 22:00

    @카오스 고맙습니다. 그런데 다소 치사한 생각이 드는 것 같군요. 빌딩을 짓고 있는데, 아직 완공되지 않은 건물을 보고 내장이 덜 됐다는 둥, 외장 공사를 하지 않았다는 둥, 남은 건물 자재들을 반납하지 않았다는 둥 지적거리가 만만치 않습니다. 일전에는 들어가서 살 사람들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둥 뭐 그런 지적이신 것 같군요. 아직 할 일이 많으니 같이 거들면서 완공하시자고 하니, 계속 뒷짐쥐고 보고계시겠다고 하니 아주 고약한 성품을 계속 부채질하듯이 즐기시겠다는 것이군요. 저도 좀 슬슬 가는듯 마는듯 해보렵니다.

  • 19.06.21 20:44

    춘천 중도..공주와 부여의 왕릉..가야왕릉..등..한반도에 있는 여러 유적들은 어이 생각하시는지요?

  • 작성자 19.07.01 17:20

    한반도에 있던 유적이죠.
    한반도에도 사람이 살았고 어떤 나라가 있었을테니까요.
    그러나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요.
    또 조선 이후에 가짜유적을 만들었을수도 있지요.
    대표적인 것이 가야 파사석탑이죠.
    광개토대왕비는 비문 내용으로 볼 때, 조선초에 만들었어요. ㅎㅎ
    경주 고분들은 다시 연구해봐야죠.
    후손들이 대륙에서 이장시켰을 수도 있어요.

  • 22.06.27 16:34

    역사을 왜곡하는것도 승자들이 합니다 왜놈들이 조선역사을 조작왜곡시키는것처럼
    아무래도 승자가 뭔가가를 감추기위해 조작하고 왜곡을 하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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