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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첫 번째 고양이와 두 번째 고양이」
중학교 시절 그를 존경해 책을 사기 위해 남지에서 마산까지 가 어느 서점에서 《이상 전집》이라는 아주 두꺼운 책을 사서 밤새워 읽던 기억이 난다. ‘이상’이름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싶고, 짧은 소설 ‘날개’와 ‘오감도’라는 시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들의 첫 번째 고양이와 두 번째 고양이」라는 소설은 2019년 제43회 ‘이상문학상’을 탄 작품으로 저자는 젊은 여류작가 윤이형이다.
책에는 대상을 탄 소설 외에도 우수상을 탄 작품 5편도 같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신예작가들은 아니고 중견작가도 있는 것 같다. 한국문학에 관심이 떨어진 때문인지 그들 중에 내가 아는 작가는 없다.
「그들의 첫 번째 고양이와 두 번째 고양이」는 중편소설로 반려동물인 고양이의 죽음을 통해 단절되고 고립된 현대 사회의 삭막함과 현대인의 뼈저린 고독을 유려한 문장과 빼어난 감수성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부조리한 현실 속 삶의 고통을 견뎌내는 방식을 소설이라는 서사적 틀에 어울리게 무게와 균형 감각을 담은 이야기가 형상화되어 있는 작품이다.
소설의 서사구조를 통해 형상화되고 있는 존재와 생명에 대한 따스한 사랑과 이해는 이야기의 격조를 높여주고, 섬세한 언어 감각과 인상적인 묘사를 통해 소설적 성취를 이루었다. 대상작으로 선정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하고 있다.
2019년 한 해 동안 발표된 중편·단편 소설 중에 ‘이상문학상’으로 선정한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는 심사위원 전원(권영민, 권택영, 김성곤, 정과리, 채호석)이 만장일치로 선정했다고 한다. 심사위원들은 단편소설이 아닌 중편소설을 수상작으로 선정하고 그것이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단편소설이 요구하는 상황성과 장편소설이 추구하는 역사성이 서사적 형식 안에서 통합되는 지점에 중편소설이 있다고 하면서 윤이형은 바로 그 지점을 놓치지 않았다고 했다.
부조리한 현실적 삶과 고통을 견뎌내는 방식이 중편소설로서의 무게에 알맞게 균형 잡혀 있는 이 소설은 제목에서부터 문제적 존재로 부각되고, 작품에서 문제요소는 고양이가 아니라 ‘그들’이라는 대명사로 지칭되는 인물들로 ‘그들’은 따지고 보면 ‘우리’라는 1인칭 대명사로 묶여야 할 가족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서로 흩어져 사는, 젊은 부부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들’은 현실적 고통과 힘든 삶이 각자의 관점으로 반추되고, 결국은 헤어짐으로 이어지지만, ‘그들’이 키우던 두 마리 고양이를 이야기의 전면에 내세워 각각의 인물이 공유하는 삶의 문제를 각자 시선으로 파고든다. 그래서 이야기는 구조적 중층성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가 복합적 양상으로 치닫지 않고, 현실적인 삶의 어려움을 ‘그들’이 모두 나누어 가지면서 아픔을 공감한다. 공감이 바로 두 마리의 고양이를 중심으로 모든 살아 있는 존재와 생명에 대한 따스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 출판사 리뷰를 참고했다.
“자식을 키우는 엄마는 강해야 하지만 손주를 키우는 할머니는 강하고 인자하고 명랑하기까지 해야 한다.”- 97쪽 윤이형 「대니」중에서
“죽음은 보편적 경험인가. 생명의 소진인 죽음은 도처에 있다. 날마다 죽음을 보고 듣는다. 하지만 아무도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경험하지 못한다. 죽음은 언제나 타인의 것으로 경험된다. 더 숭고한 죽음이 없듯 더 하찮은 죽음도 없다. 그럼에도 하나의 죽음이 어떤 이에게는 삶 전체를 부질없는 무의미로 절감하게 하며, 다른 이에게는 삶을 뒤잇는 자연의 시간으로 수용된다. 죽음이 아니라 상실로서 경험되며, 죽음의 의미나 상실의 크기가 주관적으로만 다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138쪽, 문학평론가 소영현의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에 대한 비평,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사유’중에서
이상(李箱, 1910. 8. 20 ~ 1937. 4. 17)
서울에서 출생, 본명 김해경, 1931년 “조선과 건축”에 ‘이상한 가역 반응’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30년대 초부터 초현실주의적이고 실험적인 시를 발표했으며, 주로 의식 세계의 심층을 탐구하는 작품을 썼다. 박태원, 김기림, 김유정과 더불어 모더니즘 문학운동 단체 ‘구인회’를 결성했다. 작품으로 ‘거울’‘오감도’등 시와 소설 ‘날개’‘종생기’ 수필 ‘권태’등이 있다.
〇 날개
단편 소설이자 심리 소설로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자기 소모적인 삶을 통해 현대인의 분열된 자의식과 고독, 자기 극복 의지를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기술한 실험적인 소설이다.
*줄거리 : ‘나’는 생의 의욕을 상실한 채 방 안에서 뒹굴며 지낸다. 아내가 외출할 때면 ‘나’는 아내의 방에서 놀곤 한다. 아내에게 내객이 찾아올 때면 아내는 ‘나’에게 은화를 준다. 나는 은화를 저금통에 모아 두다가 변소에 빠뜨린다.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아내는 내객과 함께 있었다. ‘나’는 이후에도 가끔씩 외출을 하다가 비를 맞고 감기에 걸린다. 아내는 ‘나’에게 아스피린을 주고 ‘나’는 그것을 먹고 잠만 자게 된다. ‘나’는 아내가 준 약이 아달린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고 외출하여 거리를 쏘다니다 미쓰코시 옥상에 올라가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정오의 사이렌이 울리자 ‘나’의 의식이 깨어나는 듯하다. ‘나’는 날개가 돋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〇 거울
‘거울’이라는 소재를 통해 ‘거울 밖의 나(현실적 자아)’와 ‘거울 속의 나(내면적 자아)’사이의 갈등, 즉 자의식의 분열을 드러낸 작품이다. 1연에서 거울 속의 세계가 조용하다고 말하며 거울 밖의 세계와 거울 속의 세계가 단절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여기서 거울 속의 세계는 현실의 세계와 대비되는 자의식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2연에서는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라는 표현을 통해 ‘거울 속의 나(내면적 자아)’와 ‘거울 밖의 나(현실적 자아)’가 분열되고 단절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3연에서 두 자아는 화해를 시도해 보지만 그것은 결국 실패로 끝난다. 거울 밖의 나는 화해를 위한 악수를 청해 보지만, 거울 속의 나는 거울 밖의 나와 달리 왼손잡이기 때문에 악수를 할 수 없게 된다. 즉, 자아의 분열이 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것임을 드러낸다. 이러한 근원적인 분열은 거울의 모순적 속성에 기인한다. 이어지는 4연에서 거울은 본질적으로 차단과 만남의 양면성을 지닌 모순적 소재로 드러난다. 즉, 거울을 매개로 두 자아가 서로 만날 수 있지만 동시에 거울로 인해 두 자아의 만남이 차단되기도 하는 것이다. 5연에서는 거울 속의 나가 ‘외로된’일에 골몰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두 자아가 분열을 넘어 서로 따로 살아가는 독립된 존재로까지 표현된다. 이렇게 분리된 자아의 모습을 화자는 안타까워하면서 치료하고 싶어 하지만 치료할 수가 없다.
마지막 연에 이르러 두 자아는 완전히 분리된 양상으로 나타난다. 결국 이 시는 모순적 속성을 지닌 ‘거울’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 의식을 표현한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〇 오감도(烏瞰圖)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아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이 작품에 드러난 시적 상황은 단순하며, 심지어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 작품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은 ‘13인, 질주한다, 막다른 골목, 무섭다(무서운)’등의 시어들이다. 그런데 이런 시어들은 모두 어떤 불안감이나 두려움과 관련이 있다. 우선 ‘13’이라는 숫자는 서양에서는 일반적으로 불길함을 상징하고, 불안감이 감도는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사람의 수와도 관계된다.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무섭다(무서운)’에서도 이러한 심리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시적 공간으로 설정된 ‘막다른 골목’도 불안감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 시의 분위기는 막연한 어떤 불안감이나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벗어나려는 행위가 ‘질주한다’이다. 그러나 시인은 마지막 연에 가서 골목이 막혔든 뚫렸든, 아이들이 질주하든 안 하든, 무서운 아이이든 무서워하는 아이이든 상관없다고 말한다. 즉, 시인을 둘러싼 불안감이나 공포심은 상황이 어떻게 변해도 결국은 존재하게 된다는 것으로 이것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심리적 정황과 유사하다.
〇 가정
평범한 가정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일상적 삶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고 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드러냄으로써 내면적으로는 원만한 삶의 회복을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화자는 현재 원만한 가정생활을 해나가지 못하고 있다.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아무리 잡아당겨도' 쉽게 집으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은 바로 가정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음을 알려 준다. 그것은 화자가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 화자는 자책감을 느끼면서 괴로워한다. 이런 상황을 화자는 '문고리에 쇠사슬 늘어지듯 매달리는' 것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것은 화자의 현실적 무기력함을 나타내는 동시에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보겠다는 간절한 몸부림을 나타낸다.
작품은 띄어쓰기를 무시하여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의식을 나타내고, 내면세계를 아무런 구속 없이 자유롭게 드러냄으로써 시인의 의식 세계를 보여 준다. 또 답답하고 절망적인 현실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측면도 있다.
〇 운동
형식 면에서 띄어쓰기를 무시해서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작가 의식을 드러내고 있고, 내용 면에서도 백화점 건물과 시계라는 현대적인 소재를 기하학적인 관점에서 파악하여 새로운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단순한 반복성을 통해 현대인의 무료한 심리를 드러내고 있는데 이것은 '1층 위에 2층' 이라는 식으로 공간을 단순한 반복성으로 인식하고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무료한 반복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화자가 시계를 꺼내 보는 것은 현대인의 무료한 의식을 확인하는 행위이며, 결과적으로 시계를 내동댕이침으로써 기계적 삶의 무의미성을 나타낸다. 작품은 곧 문명적 소재를 통해 무의미하게 되풀이되는 현대인의 삶을 비판하고 있다.
〇 산촌 여정
1935년 여름 평안남도 성천에서 머물며 체험한 산촌의 풍물과 정취를 편지글의 형식을 활용하여 감각적으로 표현한 수필이다. 글쓴이는 산촌에서의 체험과 정서를 시각적·청각적·후각적 이미지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자연적이고 전통적인 사물을 도회적 감각을 바탕으로 근대적이고 이국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한 점에서 개성과 참신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1930년대 우리 문단에 유행한 모더니즘적 취향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상 시의 모더니즘적 경향과도 연관된다.
〇 권태
한여름 시골의 벽촌에 머물면서 겪은 농촌의 자연과 생활 풍경을 진솔하게 서술한 수필이다. 도회지 생활에 익숙한 글쓴이가 한여름 시골 생활을 통해 몸소 느낀 것은 자연 풍경이 주는 아름다움과 농촌 생활의 편안함이 아니라, 단조로운 풍경과 일상의 지루한 반복일 뿐이다. 도회지와 대비되는 농촌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시골과 도회 생활의 장단점, 그리고 그 안에 스며 있는 삶의 여러 본질적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또한 자신의 권태를 표현할 때는 심리주의적 탐색 방식을, 농민과 자연의 권태를 표현할 때는 상식적·피상적 관점을 벗어난 독창적이고 참신한 관점을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수필이 취미나 교양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진지한 문학 양식으로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〇 조춘점묘(早春點描) - 공지(空地)에서
텅 빈 덕수궁과 스케이트장이 된 궁 안 연못,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1930년대 서울의 모습에 대한 비판적인 상념이 나타난 수필이다. 문명화된 도회지의 공간이 모두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어 이윤 추구의 대상이 되어 버린 상황, 더이상 진정한 공지가 남아 있지 않은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에는 자본주의화에 따라 개인의 인간다운 삶이 더욱더 어려워진 일제 강점기 조선의 실상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감성과 지성이 통합되어 나타난 문명의 비판적 수필로 볼 수 있다.
〇 영화 「이상의 날개, The Wings of Lee Sang」- 1968년
최인현 감독, 신봉승 각색, 배역
신성일 : 이상 역
남정임 : 금홍 역
문희 : 정희 역
최불암
박기택
한성
이예성
김순철
김성옥 등이 출연했고 그 해 제7회 대종상, 남우주연상 등을 탔다.
〇 오감도(烏瞰圖) 해설
조감도(鳥瞰圖)를 조작하여 만든 조어. 까마귀의 이미지를 통해 부정적이고 불길한 분위기를 만듦.
*13인
①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예수와 그의 열두 제자를 합한 숫자, ② 불안하게 살아가는 현대 인류, ③ 이외에도 불길한 공포, 해체된 자아의 분신, 시계 시간의 부정, 당시의 13개 도(道)를 의미한다는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
*작품의 구성
[1연] 13인의 아이들이 도로를 질주함.
[2~3연] 13인의 아이들이 모두 무섭다고 함.
[4연] 아이들의 상태는 상관없음.
[5연] 아이들이 도로를 질주하지 않아도 좋음.
*작품에 나타난 현대인의 실존 양상
아이들의 상태나 질주, 골목길의 막다름의 여부에 관계 없이 불안과 공포는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를 인간의 실존 양상과 연결시켜 볼 때, 오늘날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 심리(소외감)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시를 시대적 상황과 관련시켜 본다면, 식민지 지식인의 실존적 불안 의식을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오감도(烏瞰圖), 아해(兒孩)’등 시어와 동일 동사 구문의 지나친 반복, 그리고 띄어쓰기를 무시하는 서술방식을 택하여 ‘낯설게 하기’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오감도(烏瞰圖)’는 원래 조감도(鳥瞰圖)인데, 작가가 일부러 까마귀 오(烏)자를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낯섦’을 환기시키는 한편 불길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아이’를 ‘아해’로 기술하여 ‘아이’라는 낱말이 환기하는 언어의 일상적 습관성을 낯설게 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작품은 띄어쓰기를 파괴함으로써 기존 질서를 거부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당대의 삶의 질서를 부조리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데에서 연유한 것으로, 당대의 시단에 충격을 주고, 새로운 질서 체계를 추구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식민지 지식인의 불안 의식
시인이 살았던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 상황과 연관시켜 이해할 수도 있다. 이상은 시대를 앞서갔던 인물이다. 게다가 자유와 개성을 추구했던 그로서는 모든 인간적 가치와 자유가 박탈된 식민지 상황을 제대로 수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비극의 시대를 살았던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고뇌와 방황, 벗어날 수 없는 절망적 현실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이상은 냉소적 인식과 표현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작품 속 ‘13인의 아해’는 당대 식민지인들의 자화상이자 작가 자신의 모습으로 볼 수 있고, ‘막다른 골목’과 ‘뚫린 골목’은 식민지 지식인의 공포와 좌절, 그리고 희망의 불꽃이라도 잡아 보려는 위기의식의 역설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작품에 사용된 ‘낯설게 하기’의 기법도 이러한 불안한 삶의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절망적인 시대 상황을 탈출하기 위한 이상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오감도’에 대한 당대 독자들의 반응
‘오감도’는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작품이다. 원래는 30회를 목표로 연재를 시작하였으나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쳐 더이상 연재를 할 수 없어서 15회에 중단되고 말았다. 이때 “조선중앙”학예부장으로 ‘오감도’연재를 기획했던 이태준은 독자들의 항의 때문에 사표를 써서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15회까지 밀고 나갔지만 더이상 계속하지 못하고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일화가 있다.
대표적인 항의 내용으로, ‘오감도’는 ‘조감도(鳥瞰圖)’의 잘못이 아니냐, 그게 어쩌자는 시냐, 시 중에 나오는 13인의 아해는 최후의 만찬에 합석한 예수의 제자냐, 아니면 일제 때의 조선 13도를 의미하느냐 등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상은 ‘피해망상이나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정신병자’에 불과하다는 혹평에서부터 ‘최초의 모더니스트로 현대 문학의 기수’라는 극찬에 이르기까지 극단의 평가를 받았다.
*관련문제
01.이 시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 직설적 표현으로 시상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2. 순우리말의 어감을 살려 운율을 형성하고 있다.
3. 현대인의 실존 양상을 상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4. 내면적 갈등과 그 극복의 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5. 전통적 소재를 활용하여 비극적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
02.이 시의 표현상 특징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 대칭 구조가 나타나 있다.
2. 의도적인 조어를 사용하고 있다.
3. 기존 문법 질서를 무시하고 있다.
4. 동일한 통사 구문을 반복하고 있다.
5. 반복법을 통해 공포의 이유를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