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 수필울 제 2 집수록
권 덕 봉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어머니의 젓을 기다리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임종의 시각까지 크고 작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답고도 슬픈 것이다. 설레는 희열이 있는가 하면 어둡고 답답한 환멸이 있다. 서로 모순 하는 생의 기도 속에서 기다림의 꽃은 핀다. 《이어령/증언하는 캘린더》
그리움
따가운 햇볕에 의한 화상으로 허옇게 일어난 등가죽의 허물이 몇 차례 벗겨지고 나면 그 모습이 흡사 메마른 흑인과 같다. 튀어 오른 진흙을 온몸에 잔뜩 묻히고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곳은 방죽 안이다. 수초에 알을 낳아야 하는 왕잠자리들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한 마리는 장대 끝에 풀줄기를 묶은 빗자루 같은 것을 가지고 살금살금 다가가 잽싸게 눌러 잡아야 한다. 물론 단번에 잡기는 어렵고 여러 번 시도해야 한다. 한 마리를 잡고 나면 그다음은 식은 죽 먹기다. 가느다란 실로 왕잠자리의 발을 묶고 작은 나뭇가지에 실의 다른 한쪽 끝을 달아맨다. 잡힌 것이 암컷이면 그대로 쓰지만, 수컷이면 호박꽃 수술을 이놈의 배에 문질러 암컷처럼 위장시킨다. 이제 실에 묶인 왕잠자리 암컷을 날려 수컷을 홀려 잡으면 된다. 왕잠자리는 크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잽싸기도 하다. 그 때문에 이놈을 잡아본 아이는 물잠자리나 장수잠자리, 고추잠자리 따위는 욕심내지 않는다.
지루함
직장 선배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 민물낚시에 따라나섰다. 자기와 이름이 똑같은 여사원과 결혼한 이 선배는 내가 신입사원으로 점포에 부임한 첫날, 저녁을 먹자며 요정이란 곳으로 데려가 나를 놀라게 했었다. 온종일 입질 한번 없는 낚시는 지루한 기다림이다. 가물거리는 찌를 실눈 뜨고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차라리 고문이다. 한 달 후 선배가 다시 낚시에 데려갔고 또다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 후 사십 년간 낚시에 나서지 않았다. 도시어부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인기다. 바다낚시 장비를 장만하고 호기롭게 바닷가로 나갔다. 종일 팔이 아프게 낚싯대를 휘둘렀지만 한 마리도 건저 올리지 못했다. 낚싯대를 책장 위로 치워 놓았다.
불안
군모의 차양에 제대 예정 일자를 그려놓은 달력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푹푹 쉬어댄다. 날짜를 하루씩 지워가며 기다리는 것은 제대날짜다. ‘특명이 늦어질지도 몰라. 아니 제대도 못 하고 전장에 내몰릴 수도 있어.’라고 애태웠다. 칠십칠 년 팔월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이 일어났다. 제대를 열흘 남긴 시점이다. 평소 지급되지 않던 실탄을 장착한 탄창을 두 개씩 지참하고 취침할 때도 전투복과 전투화를 벗지 못했다. 전쟁 직전까지 몰려갔기에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내무반 전우들이 문제가 된 미루나무를 자르러 현장으로 달려갈 때 그들이 무사하기를 기도했다. 구월 중순 집에 돌아왔다.
희망
삼십 년간 근무한 직장에서 명퇴하면서 받은 퇴직위로금으로는 길어진 수명을 지탱할 수 없겠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빨리 불려야겠다는 조급함으로 퇴직금을 한 방에 날려 버렸다. 실의에 차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운 아내와 함께 자영업을 십일 년간 운영하고 직업전선에서 물러났다. 다시 모은 돈을 모두 코스닥 상장을 예정하고 있는 기업에 투자해 승부수를 두었다. 고등학교 동기동창인 대학교수가 학교 벤처 기업으로 설립하고 20여 년간 운영해온 기업이다. 이 기다림의 결과가 달콤했으면 좋겠다.
기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이웃들과의 사이에 칸막이를 둔 지 한 해 반이 지났다. 백신접종에 속도를 더해 머지않아 칸막이를 걷어치우겠다고 한다. 그간 만남을 미루어두었던 동창회 모임 동호회 모임 등에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뛴다. 복지관 러닝머신 위를 걷고 굳었던 몸을 수영으로 풀자. 운동 후 샤워할 때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더운물이 주는 쾌감을 다시 느껴보자. 비대면 수업으로 화면 위에서 만나보던 학우들을 직접 만나보자. 섬 여행, 제주도 한 달 살아보기도 실천해보자. 통제된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큰 기쁨이다. 마스크를 벗고 밝게 웃는 이웃들의 얼굴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