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잠원골안씨네
카페 가입하기
 
 
 
 

회원 알림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윤길순
    2. 카이리
    3. 이병숙
    4. 새벽별-
    5. 상훈이
    1. 안선옥
    2. Fermata
    3. 서림
    4. 안혜경
    5. 조우리
 
 
카페 게시글
주님의 향기 스크랩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아빠 추천 0 조회 11 14.05.10 11:1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3.3.20 사순 제5주간 수요일

다니3,14-20.91-92.95 요한8,31-42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오늘은 자유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유가 있어 사람이요 인격이요 행복입니다.

과연 자유롭습니까? 자유는 무엇입니까?

자유에 대한 정의가 우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자유는 정치적 자유도, 현인의 내적 자유도 아닙니다.

우리가 쟁취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로서의 자유입니다.

아무도 한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내외적 환경의 한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의 원의와 상관없이 한계 지어진 인간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적인 안목으로 볼 때 자유롭기는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런 한계 내에 살면서도 한계를 초월한 자유가, 죄와 죽음을 넘어선 자유가,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선 자유가 가능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바로 우리의 자유의 내용입니다.

바로 우리의 자유는 아드님을 통해 하느님이 선사하시는 자유입니다.

아드님 없이는, 하느님 없이는 자유는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영원히 숙명론적 비관주의의 인생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바로 이게 우리의 참 자유의 비결입니다. 이 비결 말고 참 자유의 길은 없습니다.

주님 말씀 안에 머물러 주님의 제자가 되고,

말씀을 통한 주님과의 일치와 더불어 진리를 깨닫게 될 때

이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얼마나 가슴 벅찬 감동의 말씀인지요.

 

세상 진리가 아니라 바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 천명하신

아드님이신 예수님이 바로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사람들에게 충만하고 참된 생명을 가져다 주며,

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을 한데 결합시키는 하느님의 실재입니다.

이 진리는 예수님에게서 드러나고 그분을 통하여 우리에게 선사됩니다.

 말씀을 통한 예수님과의 일치가 깊어지면서 선사되는 진리요

이 진리가 모든 한계를 초월하여 참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세상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자유요,

아무도 앗아갈 수 없는 참 귀한 선물의 자유입니다.

 

다음 복음의 주님 말씀 역시 참 자유의 소재를 분명히 해 줍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집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세상의 종, 죄의 종입니까?

또는 아버지의 집에 머무르는 아버지의 자녀입니까?

아드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의 집에 머무를 때 비로소 자유로운 삶입니다.

아버지의 집은 일정한 장소를 뜻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은 어디나 아버지의 집입니다.

 

사순 제4주일 자비로운 아버지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작은 아들은 자유를 찾아 집을 나갔다가 거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고,

큰 아들은 집에서 살았지만 종처럼 살았으니

둘 다 아버지의 집에서 자유로운 아들로서의 삶에 실패했습니다.

바로 아드님이신 예수님만이 제대로 아버지의 집에서 아들로 머무르며

자유를 누렸음을 봅니다.

바로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 복음은

우리 모두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환의 회개를 통해 죄의 종에서 벗어나

예수님과 함께 아들의 자유인으로 살라고 촉구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참 자유는 없습니다.

예수님 역시 세상에 파견될 때 이사야서 말씀을 출사표로 삼아

자유의 사명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 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 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바로 오늘 1독서는 아드님과 함께 하는 이들의 자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불가마 속에서 주님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세 청년입니다.

이 모습에 깜짝 놀란 네부카드네자르가 묻습니다.

“우리가 묶어서 불 속으로 던진 사람은 세 명이 아니더냐?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네 사람이 결박이 풀렸을 뿐만 아니라,

다친 곳 하나 없이 불 속을 거닐고 있다.

그리고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 같구나.

 

바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확증하는 장면입니다.

오늘 세 청년의 하느님 찬미가 참 장관입니다.

우리가 주일 아침이나 축일 아침에 바치는 찬미가는 바로

세 청년이 불가마 속에서 바쳤던 찬미가입니다.

 

불가마 같은 세상살이 속에서도 아드님 예수님과 같이 하느님 찬미에 항구할 때

심신의 치유와 건강이요 참 자유인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새삼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시편 성무일도가

우리를 참으로 자유롭게 하는 최고의 수행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자유롭게 하십니다. 아멘.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