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감동과 오랜 여운을 주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시인이자 어른 동화작가 안도현의 글은 사람들의 마음 속 진실을 끌어내고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한다.
노랫말 중에"아침방아 찧어라.저녁방아 찧어라.콩콩 찧어라"는 것이 있다.어느 한 날 풀밭을 헤매며 자연에서 놀이감을 찾고 풀피리를 불던 때의 노래이다.우리나라에 사는 메뚜기류 가운데 몸길이가 가장 긴 방아깨비를 잡아 긴 뒷다리를 잡고 흔들면서 이 노래를 불렀고 방아깨비는 방앗공이로 방아를 찧듯이 계속해서 움직였었다.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온통 풀빛의 그림책을 읽고 나니 자연을 느낄 수 있고 자연과 인간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자연으로 돌아가 하나 됨을 느낄 수 있는 시 같은 동화여서 그 운율 감은 여러 번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게 했다. 시간이 나면 컴퓨터게임에 몰입하여 자기 혼자만의 즐거움에 길들여져가는 아이들,흙을 밟기보다는 시멘트문화에 익숙해져 가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였던 책을 소개한다.
<메뚜기는 풀잎 위에 앉는 곤충이지요.
그런데 지금 만복이 어깨 위에 메뚜기가 앉아 있어요.
날아가지도 않고 앉아 있어요.
그렇다면 메뚜기는 만복이를 풀잎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어요.
그래요.
메뚜기가 만복이를 풀잎으로 생각한다면,
이제 만복이는 풀잎이지요.>
이 책의 주인공인 슬기와 만복이는 친구다.이 두 친구가 강둑을 따라 사이좋게 메뚜기를 잡으러 간다.공부와 학습에 찌들지 않은 모습으로 걸어가는 이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풀빛들판과 풀빛에 젖은 아이들이 웃고 장난치며 손잡고 발 맞추어 노래부르며 걸어간다.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시냇물의 재잘거림처럼 강물도 따라가고 하늘도 구름도 따라가는 그림만 연상해도 마음이 즐거워진다.문득 나도 그림 속의 슬기와 만복이를 따라가고 있었다.알록달록 폴짝폴짝 풀 곤충처럼 정겹게 가던 아이들은 갑자기 서로 메뚜기를 많이 잡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앞서거니 뒤 서거니 다투어 가는데 그 또래 아이들의 경쟁심을 드러내고 있다.
풀잎이 바스락거리고 성큼성큼 개구쟁이들이 풀숲에 들어오면 숨어있던 곤충들은 깜짝 놀라 튀어 오르지만 메뚜기는 갈색 잎에서는 갈색으로 초록 잎에서는 초록빛깔로 숨을 뿐 멀리가지 못하고 또 다시 풀잎으로 앉을 뿐이다.마침 허리가 늘씬하고 멋진 방아깨비 한 마리가 풀잎 끝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슬기보다 동작 빠르게 만복이가 먼저 손을 뻗어 잡고 만복이는 승리감에 즐겁고 슬기는 분한 마음에 약이 오르지만 덩더꿍 덩더꿍 방아찧는 방아깨비를 보며 어느새 귀여운 동작에 활짝 웃어버리고 만다.어쩌면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그만큼 자연은 경쟁이 아니라 순수와 즐거움인 것같다.
이 귀엽고 천진난만한 슬기와 만복이는 강둑에 나란히 앉아 방아깨비 노는 모습에 메뚜기 잡는 것도 잊는다.그러면 또 그 주위의 모든 풀잎과 강물과 꽃들이 아이들과 나란히 앉는다.마침 메뚜기 한 마리가 만복이 어깨 위에 앉고 만복이는 이제 풀잎이 되었다.왜냐하면 메뚜기는 풀잎 위에만 앉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읽으면 옛 시절을 추억할 수 있어 책을 읽고 자연에 아이들과 함께 나가보면 더욱 좋을 듯한 이 책을 가지고 한 쪽씩 돌려읽는 경쾌하고 지루하지 않은 동화 읽기를 했다.저학년 아이들이 읽기에 부담 없고 이야기에 담긴 뜻도 쉽고 아름다웠다.곤충도감을 이용해서 곤충을 찾아보고 곤충을 세밀하게 그려보며 특징을 이해하였다.색연필로 풀빛엽서를 만들어 엽서에는 만복이가 되고 슬기가 되어 서로 서로에게 예쁜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썼다.
만복이와 슬기가 함께 걸어가는 그림을 가지고 조각 맞추기를 하면서 친구의 모습 자연의 모습을 간직하며 함께 하는 즐거움을 갖기도 했다.수업이 끝날 때쯤 아이들은 이미 풀빛향연으로 물들어 맑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해있는 듯 했다.자유롭게 뛰어 놀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잠시나마 만복이와 슬기가 되고 또한 구름 시냇물.메뚜기.들꽃.풀잎이 되어보는 자연을 닮고 순수해지는 행복한 수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