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환의 명시감상
인간에게
김형식
지구가 응급실에 실려왔다
호흡이 거칠다
중병에 걸려있다
심상치 않다
악성 병원균을 제거해야 한다
몸은 불덩이
이대로 가면 죽는다
환자도 자기의 몸상태를 잘 알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몸서리쳐야 한다는 것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이놈의 인간들
-----김형식 시집 {질문}에서
잠언과 경구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자기 자신의 두뇌로 사유하고, 그것을 붉디 붉은 피로 썼다는 것을 뜻한다. 잠언과 경구는 그 어떠한 반대나 그 모든 이론들을 단칼에 베어버린 천하무적의 사상의 산물이라고 할 수가 있다. “지구가 응급실에 실려왔다/ 호흡이 거칠다”라는 절대절명의 위급함과 “중병에 걸려있다/ 심상치 않다”, “악성 병원균을 제거해야 한다”라는 매우 다급하고 심각한 진단과 처방에는 김형식 시인의 잠언과 경구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잠언과 경구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지구촌의 ‘악성 병원균’이라는 오랜 경험과 그 성찰의 결과라고 할 수가 있다. 지구의 몸이 너무나도 뜨겁고, 이대로 가면 지구촌의 모든 생명체들이 공멸을 하게 된다. 지구도 “자기의 몸상태를 잘 알고” 있고, “살아남기 위해/ 몸서리” 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노자와 장 자크 루소의 외침으로는 안 되고, “우리 인간들이여, 하루바삐 잠에서 깨어나 ‘만물의 영장이라는 악마들’을 살처분하라”고 김형식 시인은 외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의사가 진정한 인문주의의 옹호자라면 의사로서의 역할과 그 사명에 충실하고, 진정한 의사로서의 전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은 인간의 사유재산이 아니라 만물의 터전임을 인식하고, 모든 환자들에게 살아야 할 권리와 죽어야 할 권리를 처방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암을 치유하고 성기능을 강화시킨다는 것, 여성의 폐경을 방지하고 모든 관절에 대한 질병을 퇴치한다는 것, 모든 치매와 정신장애를 극복하고 영원불멸의 인간을 창출해낸다는 것----, 바로, 이러한 생명공학의 목표와 반자연적인 윤리를 퇴치하고, 어떤 환자가 살아야 하고, 어떤 환자가 죽어야 하는가를 판단하여, 그 삶의 권리와 죽음의 권리를 처방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 옛날 어느 부족은 그가 살아야 할 권리와 죽어야 할 권리를 판단하고, 그가 죽어야 할 권리를 요청하면 한사발의 사약을 처방해주었다고 한다. ‘인간수명 70’이면 충분하고, 70 이상의 노인들 중, 본인이 원하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인간에게는 죽어야 할 권리, 즉, 존엄사를 처방해주어야 할 것이다.
건전한 정신에 건강한 육체가 있어야 하고,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어야 한다. 인간 70, 즉, 인간수명제를 실시하면 지구촌의 건강도 회복되고,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이놈의 인간들”에 대한 쌍욕과 저주의 험담도 없어질 것이다. “지구촌의 만물들이여, 하루바삐 총궐기하라! 그 어떠한 독충보다도 더 사악한 만물의 영장들이라는 인간들부터 살처분하라!”
진정한 시인과 사상가의 정신은 너무나도 개성과 창의성이 빛나고, 타인의 말과 사유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천하제일의 명검과도 같다. 가장 날카롭고 예리하고 그 어떤 반대파의 잡소리도 다 잠재울 수 있는 그 칼날은 만인들의 간담을 싸늘하게 한다.
잠언과 경구는 일도필살의 명검과도 같고, 천년, 만년, 영원히 그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사상과 이론에만 진리가 살 수가 있고, 그 진리의 역사가 계속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