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이민, 또 역이민
왜 자꾸 돌아갈까?-시니어일상톡톡
https://youtube.com/watch?v=WGjX2nvSaFE&si=PIVqj18srZcFVZFB
🎬 안녕하세요, ‘시니어일상톡톡’입니다.
이민 갔다가, 역이민, 또 역이민으로 왜 자꾸 돌아갈까요?
이렇게까지 돌아다녀야 하나요? 미국, 한국, 일본, 한국,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요“
60대 이후, 삶의 마지막 터전을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살고 은퇴한 뒤 한국으로 역이민을 갔던 사람들이,
다시 짐을 싸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역이민에 또 역이민’, 왜일까요?
아름다운 고향, 따뜻한 가족, 익숙한 말과 음식이 기다리는 한국이었지만,
왜 다시 먼 미국 하늘 아래로 돌아가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실제 50대, 60대 역이민자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지”
미국과 한국 사이를 오가는 노후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례를 들어봅니다.
공감이 가는 이유 세 가지로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 첫째, “사람은 많은데, 마음 나눌 사람은 없었습니다”
한국은 좋았지만, 예상치 못한 현실이 있었어요.
뉴욕에서 45년을 살아왔던 68세 강미정 씨는
한국에 있는 고향 대전 친정집을 리모델링해 살려고 계획했습니다.
고향인 대전으로 돌아가면 늘 반갑게 맞아줄 친구들을 기대도 했지요.
그동안 연락도 자주 했고, 은퇴 후엔 더 자주 볼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막상 돌아가 보니, 시간의 간극이 너무 컸습니다.
처음엔 너무 좋았지요. 거리마다 익숙한 음식, 친구들, 추억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고향 친구들도 저마다 바빴고, 무엇보다 문화 정서가 달랐습니다.
하지만 두 달쯤 지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동네에서 나이 든 사람을 대하는 눈빛도 낯설었습니다. 경계하는 눈치였으니까요.
‘왜 미국에 잘 살다가 한국으로 와서 의료 혜택을 받으려는 거야’라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었습니다.
그럴수록 은근히 쌓이는 건 “의외의 고립감”이었습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이웃 간에도 친절한 미소 인사가 일상적이었거든요.
교회 커뮤니티, 골프 동호회, 한인회 등에서
비슷한 세대끼리 활발한 시니어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었고,
오히려 영어보단 한국어로 더 편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강미정 씨는 결국 “나의 사회적 자리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있었다”는 걸 깨닫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오히려 미국 교회에서 영어로 예배드릴 때가 더 편했다는 이야기, 낯설지만 낯설지 않지요.
“어디에서 살든, 결국 ‘정서적인 언어’가 맞아야 했습니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즈먼이 말했듯,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군중 속의 고독은 가장 쓰라립니다."
고향은 몸이 기억하고 있지만, 삶의 언어는 이미 미국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첫 번째,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 둘째, “한국 의료, 정말 좋긴 한데, 노인에게는 다르더라고요”
LA에서 39년을 산 75세 이선희 씨는,
은퇴 후 늘 꿈꿔왔던 고향 ‘전주’로 돌아갔습니다.
미국에서 무릎 통증으로 여러 번 진료를 받았지만, 수술은 피하고 있었지요.
한국 의료의 빠른 시스템과 첨단 장비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땐 감탄했어요. 대기시간도 짧고 MRI도 하루 만에 찍을 수 있었거든요.”
“근데, 그다음이 문제였어요.”
의사들은 바쁘게 진료를 마쳤고, 자세한 설명도 없이 약 처방만 반복됐습니다.
무릎 상태나 전체 건강 이력에 대한 고민보다는, 증상에만 집중하는 진료가 계속됐지요.
결국 미국에서 수십 년간 자신을 진료하던 가정의, 주치의가 그리워졌다고 말합니다.
“의료는 속도가 아니라 ‘이해와 신뢰’로 채워져야 합니다.”
히포크라테스가 말했듯, “환자는 병보다 의사를 믿고 낫습니다.”
또 하나, 한국 건강보험 체계는 외국에 오래 거주한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진료는 비급여였고, 병원비 부담이 예상보다 컸습니다.
메디케어로 거의 모든 진료를 커버하던 미국보다 오히려 금전적인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의료가 싸고 빠르긴 해도 나 같은 노인은, ‘시간을 들여서 설명해 주는 의사’가 더 고맙더라고요.”
“미국 주치의는 내 가족력까지 다 알고 있었거든요. 이제와서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어요.”
🚗 셋째, “사는 게 여행 같았는데, 이제는 쉬고 싶습니다”
F4 비자를 활용해 한국과 미국을 오가던 70세 이영범 씨는
제주도, 광주, 유럽까지 많은 도시를 다녀본 여행자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여행하는 삶’ 자체가 버겁게 느껴졌다고 말합니다.
비행기 탑승도, 시간차 적응도, 짐 싸는 일도 점점 피곤해졌지요.
결국 그는 씨애틀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마지막 삶을 보내기로 합니다.
“한 곳에서 쉬는 것도, 결국은 하나의 여행입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말처럼, “진짜 여행은 방향이 아니라 마음이 정한 곳입니다.”
60대에서 70대가 되면 더는 ‘움직이는 삶’보다는 정착하는 삶을 원하게 됩니다.
광주에서의 삶도 좋았지만, 결국 익숙한 편안함을 택한 것,
그 선택이 씨애틀이었다는 것이지요.
“몸은 한국에 있었지만, 마음은 늘 미국 친구들과 함께였어요.
미국에 돌아가 보니, 집도 익숙하고, 슈퍼도 익숙하고, 내 삶의 풍경이 거기에 그대로 있더라고요.”
🎯 기억하고 싶은 세 가지
오늘 이야기, 다시 정리해 볼까요?
미국에서 수십 년 살아온 분들이 한국으로 역이민을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언어와 문화의 정서적 고립으로, 고향의 추억은 있지만, 말과 삶의 결이 달라졌습니다.
의료 시스템의 단절로 한국은 좋지만, 미국 병원의 의료 히스토리가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정착을 원하는 시기로, 나이가 들수록, ‘움직이는 여행’보다는 ‘정적인 안식’을 원하게 됩니다.
어디에서 살아야 행복할까요?
그 정답은 결국, 나의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해지는 ‘그 자리’에 있는 듯합니다.
무엇을 버릴 것인지, 무엇을 붙잡을 것인지.
그 선택 앞에서 흔들릴지라도,
스스로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결국 ‘가장 좋은 터전’을 찾게 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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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이야기, 다시 정리해 볼까요?
미국에서 수십 년 살아온 분들이 한국으로 역이민을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언어와 문화의 정서적 고립으로, 고향의 추억은 있지만, 말과 삶의 결이 달라졌습니다.
의료 시스템의 단절로 한국은 좋지만, 미국 병원의 의료 히스토리가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정착을 원하는 시기로, 나이가 들수록, ‘움직이는 여행’보다는 ‘정적인 안식’을 원하게 됩니다.
이민이든 역 이민이든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누가 뭐라 하겠어요. 어디든 마음의 안정이 중요하겠지요.
모두다 내 마음 먹기 마련...
세상사에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을 내가 쟁취할 수도 없다. 때로는 종교에 또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 맡겨도 좋다. 만사유유 일소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