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례자의 길 ~
강원도 설악산 대청봉1,708m
봉정암 불뇌 사리보탑 순례길을 가다~
살아 생전 3번은 참배해야 할
불뇌 사리보탑
자~우리 함께 떠납시다
설악산 대청봉 봉정암으로 ~
~ 순례자의 길 ~
강원도 설악산 대청봉1,708m
봉정암 불뇌 사리보탑 순례길을 가다~
살아 생전 3번은 참배해야 할
불뇌 사리보탑
자~우리 함께 떠납시다
설악산 대청봉 봉정암으로 ~
설악산 단풍은~10월20일경 ~환상의 절정!~
"버려라.놓아라.비워라"
법정스님의 가르침이다
무엇을 버릴지.
무엇을 놓을지.
무엇을 비울지를
아는것이 지혜다
백담사전경
백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3교구본사 신흥사 말사
설악동에있는 신흥사는 우리나라 사찰중 방문객이 가장 많은 사찰이다
설악동에 있는 신흥사는 우리나라 사찰중 방문객이 가장많은 사찰이다
백담사도 또한 방문객이 신흥사정도의 많은 방문객이....
백담사는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하는
인제 와 원통 사이 깊숙한 오지에 자리잡고있다
백담사는 애초에 신라진덕여왕 1년에 자장율사 가
설악산 한계리에 정을지어 미타상3위를조성봉안하고 이름을 한계사라 했다 ,
한계사는 자장이 창건한지 50여년만인 신문왕 10년인 690년에
실화로 불타없어 젔지만 곧 바로 재건 되었다
지금의 백담사는 1919년 4월에 당시 주지 인공선사가 복구한것이다
원래산수가 빼어나고 수도처로서도 손색이 없기때문에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역사속의 인물보다 만해(卍海) 한용운 주석처로 유명해진 곳이다
만해 스님은 이곳에서 <님의 침묵> 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탈고한곳이다
▼ 영시암 전경
영시암의 유래
조선의 역사는 당파싸움의 역사였다.
하루도 조용할날이 없이 당파싸움은 계속됐다,
숙종16년(1689)에 있었던 기사환국은비 인현왕후 민씨사 폐출되고
장희빈이 중전으로 승격되면서 정권이 노론에서 남인으로 넘어가는 엄청난 사건이다,
숙종의비 민씨는아이를 낳지못해 늘 근심과 걱정으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임금의 총애를 받은 후궁 장희빈은 아들을 낳았고,
그아들이 원자로 책봉되었다.
장희빈을 사랑하던 숙종은 그녀를 왕비로 승격시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을 당시 권력을 잡고있던 노론이 반대 하였고,
그래서 숙종은 이들을 숙청하였고 남용을 등용하였다.
희빈이 낳은 아이의 세자 책봉 문제가나오자
노론의 총수 송시열은.“임금의 보령이 이제 겨우28세시고
중전은 23세로 아직 젊으신데,
후궁의아들로 세자를 책봉 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다:” 라고 극구반대 했다,
숙종 송시열의 말을 묵살하고 그에게 사약을 내렸으며 정권을 남인에게 넘긴 것이다,
숙청된 노론 중 김수향 이었다.
그의 아들 김창흡은 어지러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수도를 하겠다고 암자를 지었는데 그
것이 바로 영시암이다.
그런데 이 암자를 세운지 6년이 지난 어느날
그의 하녀가 호랑이한테 물려 죽고만다.
이후 김창흡은 암자를 떠나 어디론가 떠났다고 한다 ....
▼ 봉정암 전경
봉정암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불심이 깃든 성지를 순례하다가
이곳에 잠시 머물러 암자를 새로 지었고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참배하고 중건하여
모두 9차례에 걸쳐 중건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봉정암은 공사중인 경우가 많다.
참배객이 워낙 많다보니 기도도량이나 부속건물을 계속 신축하고 있다
봉정암은 백담사에 딸린 암자로
설악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해발 1,224m에 위치한 암자로서,
“봉황이 부처님의 이마로 사라졌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봉정암을 두발로 오르는 것 자체가 수양이요. 순례라고 할수 있다.
봉정암은 터도 아주 좋은 터라한다
내설악 최고의 비경을 자랑하는 용아장성 기암괴석 속에 파묻혀있다
▲설악산 봉정암 불뇌사리보탑.
1300여년 전 자장율사가 부처님 뇌사리를 모신 사리탑은 해발 1244m고지에 있다.
불두암에 도착하자갑자기 광풍이 불고,
먹구름이 일더니 부챗살 같은 햇살이 뻗어나와
볼뇌사리보탑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봉정암 불뇌사리보탑은 기단이 없다
기단 대신 설악산 전체가 탑을 떠 받들고 있다
불두암 아래 서 있는데 갑자기 강한 일진광풍이 휘몰아쳐 온다.
광풍은 여행자의 몸을 바위 밑으로 밀어낼 것만 같은 기세다.
온 몸에 젖었던 땀이 순식간에 식어버리고 모골이 송연해진다.
불뇌사리의 기운인가 부처바위의 조화인가.
순간 시커먼 먹구름이 중청봉위로 몰려오더니 천지가 컴컴해진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질 기미다.
그러나 다행히 비는 쏟아지지 않는다.
중청봉을 덮고 있는 구름 사이로 부챗살처럼 내리 뻗치는 햇살이 5층 석탑과
어울려 기묘한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다.
▲봉정암 불뇌보탑은 기단이 없다. 탑은 마치 바위를 뚫고 솟아나온 형상으로 설악산의 기운을 통째로 받고 있다.
불뇌보탑은 마치 바위를 뚫고 솟아나온 형상이다.
일반적인 탑에는 대개 기단부가 이는데,
봉정암 불뇌보탑에는 기단부가 없다.
자연 암석을 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 5층의 몸체가 우뚝 솟아올라 있다.
이는 설악산 전체가 이 탑을 받들고 있는 모습이다.
설악산과 탑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탑은 설악의 기운을 통째로 받고 있다.
탑의 몸체가 시작되는 자연암석에는 아름다운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연꽃은 1면에 4엽씩 모두 16엽이 탑을 포개고 있어
그 연꽃 위에 탑은 부처님이 정좌하고 있은 것처럼 보인다.
탑과 설악산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 탑의 기단이 시작되는 자연암석에는 4면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고,
꼭대기에는 연꽃이 핀듯한 원뿔형 보주를 올려 놓아 영원한 불심을 향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연꽃이 핀 듯한 원뿔형 보주를 올려놓아 영원한 불심을 향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모든 암자가 불에 타 없어졌지만 신통하게도 불뇌보탑은 그대로 보전되었다고 한다.
무엇이 불뇌보탑을 보전케 하였을까?
천년을 넘게 설악과 함께 버티어 온 탑은 만고풍상을 격어온 흔적이 역역하다.
이렇게 소중한 역사적인 문화재는 길이 보전을 할 수 있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
사리탑 앞에는 백색의 도인(그 모습이 도인 같아서 도인이라고 부르자)
이 홀로 가부좌를 틀고 꼿꼿하게 앉아 선정에 들어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도인의 은발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저 도인은 마음을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1350여 년 전 자장율사도 저렇게 선정에 든 후 불뇌사리를 이곳에 봉안 하였을까?
시공을 초월한 마음은 신라시대 선덕여왕시절의 자장율사 곁으로 다가간다.
(▲사진:사리탑 앞에서 선정에 들어 있는 백색의 도인)
여행자는 선정에 든 도인을 방해 할 수 없어 사리탑으로 다가가지 않고
그냥 불두암 밑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아 본다.
불뇌사리를 들고 선정에 들어있었을 자장율사가 환영처럼 떠오른다.
용대리에서 백담사로 순례길을 찾아떠난다
"산행은 만남이다"
시인 신경림은 "여행은 떠남"이라고 했다
"여행이란 일상으로 부터떠나고,
우리가 의지했던 안락에서 떠나고,
진리라고 생각했던것에서 떠나고,상식에서 떠나고........"
그래서 산행은 만남이라고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돌맹이를 만날수 있으니까,
먼저 만나야 버릴수 있다
만나야 버릴 꺼리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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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라면
꼭~! 가보고싶은 사찰 설악산 봉정암 (1,224m) 적멸보궁
룸비니산악회 법우님들 이번 기회에 산행및 성지순례에
꼭~!~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백담사-영시암-봉정암-대청봉-봉정암-영시암-백담사>
설악산 대청봉산행 과 .3대사찰순례길 (1박2일)
아름다운 산행 함께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