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우상은 돈과 자기 자신입니다.
왜곡된 생각으로 유치한 이론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확신하며 분열을 일삼는 것이
자기 자신을 맹신하는 우상숭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날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돈과 자기 자신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지만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돈을 가지고 가난한 이들을 돌봅니다.
우상숭배자들은
자기 확신에 가득 차 교회에 분열을 일으키지만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느님에게로 사람들을 모아들입니다.
나와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는
사막의 덤불과 같습니다.
그의 마음은 주님에게서 떠나 있고,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며 삽니다.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습니다.
그는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습니다.
살아서 자비를 베풀지 못한 사람은
죽어서 자비를 얻지 못합니다.
부자와 가난한 이들 사이에 큰 장벽이 가로막혀 있듯이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예언자들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예레미야 17,9-10)
그분께서 행실대로 갚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아직도 구원보다는
사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보아야겠습니다.
사람은 정말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다는 말인가?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고 사람에게 의지하면 그렇다.
그러나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
[출처]율법과 율법주의|작성자그림 읽어주는 신부님 글중에서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