餘韻
아직 서울 시내에 전차가 그 특유한 경적을 울리며 동, 서, 남, 북으로 활기있게 달리던 때의 촌극 한 토막이다.
러시아워가 지나서 손님도 별로 없는 한산한 차 안이다. 나이가 지긋한 차장이 가위와 표다발을 양손에 들고 앞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허술한 옷차림의 한 부인이 표를 끊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장은 부인의 돈을 받아 가방에 챙겨 넣고는 표를 끊는데 마구 반말 짓거리다.
"어디를 가는 거야?"
그때 부인 옆자리에 앉아 있던 승객 한 사람이 불끈 일어나서 차장을 가로막았다. 손님에 대한 말투가 불손하기 이를데 없다고 따진 것이다. 차림새가 허술하다고 승객을 깔보는 것이 괘씸하기 이를 데 없었던 것이다.
뒷감당이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차장이 뻣뻣하게 나오면 한 대거리할 태세까지 갖추었다. 그런데 일은 너무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그 여자 손님은 차장의 부인이었던 것이다. 차장이 아침에 집을 나올 때 아무 말이 없었던 것이 그의 말꼬리를 거칠게 했던 모양이다. 그 남편에 그 부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차가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춘 지도 이미 오래다. 하찮은 전차삯이라고는 하지만 공과 사를 분명히 가릴 줄 아는 고지식한 차장 부부는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 것일까?
수업시간의 여담으로 당신이 몸소 겪으신 이야기를 해주시던 그날의 강직한 승객인 나의 옛 스승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세월도 흐르고 인정도 흘러갔다. 그런데 그분들의 훈훈한 '여운'은 아직도 나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샘터, 1972.1)
첫댓글 "어디를 가는 거야?".... 전차가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춘 지도 이미 오래다. 하찮은 전차삯이라고는 하지만 공과 사를 분명히 가릴 줄 아는 고지식한 차장 부부는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 것일까?..
여운이 남는 이야기네요. 대개는 그냥 눈치껏 차표 안받고 통과시켜줄 것 같은데.....
차장의 부인은 어디를 가셨을지... 그게 더 궁금해집니다.^^
조성순 선생님의 수고로움으로 또 좋은 글 읽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