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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韓國의 傳統的 美의 性格
斗然 李鐘浩 (자유기고가. 한수연우회 자문위원)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의 바탕을 자연스러움에 두어 '自然의 美'에 귀결시키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연이란 우리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민족의 삶과 더불어 전개된 예술활동의 배경이 되고 무대가 되었던 韓國的 自然을 말한다.
즉, 東北亞細亞의 광활한 대륙을 지배했던 역사적 무대를 묻어두더라도 수천 년간 韓民族의 삶의 터전이었던 현 한반도의 자연은 白頭大幹을 남북으로 하여 옹골찬 산맥들을 동서 혹은 남으로 뻗쳐서 대륙을 둘러싼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다. 이러한 산맥들 사이사이에는 큰 강과 작은 강이 흐르며,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돌들을 아름다운 壽石으로 연마하고 있다. 강을 싸안은 산들은 첩첩이 봉우리를 세워 수려한 몸매를 자랑하며 그 風趣를 더해 왔고, 그러한 자연 속에서 익혀진 심성으로 그릇을 만들고 그림을 그려가며 예술적 활동을 전개해 왔다.
우리의 山水自然은 다른 나라의 큰 산들처럼 바위나 암벽이 깨어진 듯 날카롭지 않고 송곳같이 봉우리가 치솟아 아슬하지도 않다. 부드러운 능선, 그 능선이 겹겹이 중첩되는 가운데 곳곳에 기암절벽과 굽이쳐 흐르는 溪流로 그 아름다움을 은근히 내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산수를 錦繡江山이라 노래하며 삶과 예술의 母體로 삼아왔다.
산봉우리는 대개 부드러워 둥글어 보이고 흐르는 물은 맑고 조용했다. 산을 등지고 양지바른 곳에 초가마을이 있다. 마을과 논밭을 잇는 길은 자연의 지형을 그대로 따라서 났기에 曲線인양 꾸불거린다. 길이 끝나는 곳 저 만치에 암자나 절이 보인다. 개울가에는 바위가 우뚝하고 물이 굽이쳐 아름다운 경치가 이루어지는 곳엔 으레 정자가 있다. 이 정자에 앉아 잠시 바람이라도 쏘일라면 한 눈에 다가서는 절묘한 風光에 저도 모르게 탄성이 나온다. 그러다 보면 자연의 위대하고 오묘함에 스스로 작아져 가며, 자기도 모르게 자연에 沒入되어 物我一體의 경지에 빠져들게 된다. 이렇게 人間親和的인 자연이 한국의 자연이기에 한국인의 심성은 자연적일 수밖에 없고, 심성이 자연스럽기에 그 마음과 그 손으로 빚은 예술도 자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자연에는 사계의 변화가 뚜렷하다. 한국인은 이 사계의 변화를 자연의 순리이자 삶의 모습으로 터득하며 살았다. 봄이 오면 꽃 피고 새 울며, 여름이면 잎이 무성한 가운데 열매가 자란다. 가을이면 열매가 익고 단풍이 들며, 겨울이면 나무가 벌거벗은 裸木으로 서있게 된다는 그 평범한 일상의 언어를, 한국인들은 곧잘 인간적인 삶에 견주어 幼.小.壯.老가 사계의 변함, 그것과 다름이 아니고 生.老.病.死 또한 그것의 이치에 어긋남이 아님을 익혀가며, 이를 인간적인 삶의 보편적인 모습으로 삼으며 긴 세월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한국인에게 있어서 자연은 바로 순리이자 攝理인 것이다. 이것이
한국인의 自然觀이요, 미의 세계이다.
이러한 자연미의 세계관을 가졌기에 한국인들은 가난하고 외국의 침략을 당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이를 떨쳐버리고 물 흐르듯 구름 가듯 하는 自適을 누릴 수 있었다. 이렇게 자적하는 가운데 매사에는 자연스런 흐름이 배어 어느덧 민족의 심성이 되었고, 자연 순환의 哲理를 따르면서 생각은 모나지 않게 둥글어졌다. 둥글어진 만큼 넉넉함으로 心的餘白도 넓어졌고, 여백이 있기에 서양처럼 '美의 完成'을 서두르지 않고 완숙해지기를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조지훈 시인이 말한 落木寒天에 이끼 낀 바위의 멋을 모르면 東洋의 미를 모른다는 말은, 미의 人爲的 完成을 거부하고 자연을 자숙히 觀照하는 자의 미의 完熟을 말하는 것이다. 자연스런 흐름, 둥글음, 여백, 그리고 완숙한 경지는 한국적인 자연미이자 한국인의 美意識의 추상적 표현이
요제다.
2. 傳統美術과 海石美의 鑑賞
해석에는 강이나 산에서 많이 탐석되는 景石이나, 形象石이 있으나 그 종류가 비교적 단순하다. 경석은 대부분 변화가 적은 遠山石이고, 形象石도 대부분 人像石이나 器形,果類나 抽象石으로 그 종류를 압축할 수 있다. 그러나 文樣石이나 色彩石은 많이 탐석되고 있어 바닷돌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文樣의 상징성이나 묘미를 가려낼 수 있는 眼目을 길러야 한다.
한편 단순한 点이나 線, 또는 面과 色 등은 현대회화에서 주요한 표현수단이므로 바닷돌 玩石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는 이런 類의 바닷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 문양이 구체적인 그 무엇을 닮지 않았다 하여 그냥 몽돌로 보는 일이 없어야 한다. 바닷돌에 있어 形象石 감상은 강돌의 形象石 鑑賞法과 다르지 않으나, 바닷돌은 보다 형상이 單純化되어 있고 선의 흐름이 유연하여 느끼는 맛과 멋에 현저한 차이가 있다. 圓形石, 線石, 器形石이나 果類石은 강이나 산에서는 탐석이 어려운 편이다.
1) 傳統美術과 海石의 文樣美 鑑賞
과거의 西洋畵가 서양인의 기질답게 대상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묘사하여 자연을 再構成하려 했다면, 과거의 東洋畵는 화가의 사상이나 바람 등을 자연이라는 體를 활용하여 표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즉 동양의 화가는 자신의 사상이나 원하는 바를 象徵的으로 또는 隱喩的으로 표현하고 있어 동양과 서양은 그 藝術的 動機를 달리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東西洋이 자연을 바라보는 데 근본적이 視覺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즉 서양은 인류의 부와 안정 등 그 文明的 발전을 위해서는 자연이란 활용하고 극복해야 할 하나의 대상이었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자연이란 순응해야 할 至高의 대상이자 價値로 보아왔다. 즉 동양에서의 자연이란,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그 攝理에 따라 살며 우러러야 할 대상인 것이다. 동양인들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서부터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맞이하게 되는 吉凶禍福과 生老病死, 그리고 壽福康寧 등이 모두 天地造化라는 자연의 변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고 보았다.
가령 가뭄이 계속되어 흉년이 들면 그것은 그 나라의 통치자인 제왕이 不德한 탓에 하늘이 내리는 벌로 보았고, 반대로 풍년이 들면 제왕의 정성과 덕이 하늘에 닿아 하늘이 감동하여 내리는 베풂으로 보았다. 살고 있는 집터는 가정과 자손의 길흉화복의 진원지이며, 祖上의 묘터는 그 一家의 운명을 지배하는 것이어서, 땅도 하늘도 우러러야 할 대상이었다.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면 큰 별이 생겨 빛나고, 그 사람이 죽으면 별도 따라서 떨어진다고 하여 별 하나 하나에 사람 목숨 하나 하나를 걸어놓기도 하였다. 이렇게 사람들의 일상의 삶과 마음과 생각을 자연을 빌어 해석하고 표현하려 했던 것이 동양인의 인생관이자 세계관이었다.
모란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부귀가 오래 갈 것으로 보았고, 아침에 까치소리를 들으면 기쁜 소식이 올 것이라 기대했다.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피는 梅花를 보면 매화는 한평생 아무리 추위에 시달려도 결코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 不賣香)는 글귀를 화제로 하여 선비의 貞節을 내 보이는 그림을 그렸다.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져 하늘거리는 아래, 물위에서 짝을 지어 노니는 원앙 한 쌍을 그려 부부의 화합을 내보였고, 不動의 바위를 그려 長壽의 꿈을 펼쳤는가 하면, 꽃 지고 잎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無常에 가슴 저리며 생의 부질없음을 새기기도 하였다.
이렇게 동양에서의 자연은 있는 그대로(As it is) 섬겨야 할 대상인 동시에 人間事 그것에 다름 아니었다. 따라서 그림이라는 것은, 그리는 사람이 자기가 하거나 바라는 바를 자연을 빌어 화폭에 옮겨 놓는 일이었다. 이때 그림 속의 자연은 한 장의 편지나 한 편의 詩와 같이 의사를 전달하는 매체로 언어와 같은 것이었다. 때문에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는 글귀를 보고 그것을 虛辭로 보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깊은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동양화의 세계이기에 天敵인 뱀과 개구리가 한 화면에서 노닐 수 있고, 봄꽃과 가을꽃이 한마당에 피어 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梅蘭菊竹을 四君子라하여 이를 주제로 삼아 같은 法으로 같은 대상을 여러 명의 화가가 그리고, 같은 畵題를 붙여도 작가의 화론이나 창의성을 놓고 굳이 따지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이것은 이미 말했듯이 그림이란 대상을 그대로 그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빌어 화가의 뜻을 드러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떤 뜻이나 의미를 표현하는 언어나 문자, 때로는 순리와 같은 것이다.
가. 山水景의 세계
동양화의 산수정경은 실경이면서도 그 속에 사유적 세계를 담고 있는 것이다. 문양석의 문양이 설사 틀림없는 山水景이라 할지라도 그 순수 자연의 돌 문양을 빌어 동양적 사유의 세계를 관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완상의 깊이를 더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옛 그림은 자연계에 있는 實體를 模寫한 것이 아니라 그리는 사람과 연관된 마음(생각)을 묘사한 것이다. 즉 우리의 옛 그림은 인간의 마음과 조화되는 어떤 바람이나 자연에서 터득된 이치(진리) 등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옛 그림은 그린 사람의 心象이자 상징물이다. 따라서 그림이 실제와 얼마만큼 닮았느냐는 것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화가의 마음의 妙處가 어디에 있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실체를 그림으로 그려내기도 힘든데, 돌의 文樣이 자연의 실경을 그대로 닮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기에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신비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나아가 우리 옛 그림이 심상의 표현이라고 할 때 우리가 無爲自然인 돌 그림에서 읽은 것은 보는 이의 心象에 자연의 오묘함이나 그 어떤 섭리 같은 것을 비추어 보는 것이다. 따라서 수석감상의 묘미는 自然과 會通하는 데 있다. 돌의 문양에서 마음의 묘처를 찾아내고, 그것에 감동하다가 心醉함으로써 어느덧 문양 속의 自然景에 漸入되고, 끝내 자연의 일부로서 회귀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 즉 자연과 내가 주객을 떠나 하나로 융합되는 의식에 머물게 되는 것이 바로 玩石의 멋과 맛이다.
돌에 박힌 山水文樣, 보는 이에 따라서는 八景을 내다볼 수도 있을 것이고, 동양적 數値觀에서 최대의 수인 九를 찾아 九景을 내다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머지 一景은 石人의 心相景으로, 바로 수석의 景일 것이다. 이 一景을 찾을 수 있다는 것, 또 평소 마음에 지닐 수 있는 세계가 오늘의 수석인들이 옛 그림과 옛 수석인과 만나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문양 속으로 들어가, 흔히 산수화에서 한 개의 점으로 표시되는 자연인처럼 되어야 한다. 眼窓을 활짝 열어 다시 한 번 一景을 찾아볼 일이다.
나. 長生의 세계
不老長生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이, 학, 사슴 등 열 가지의 長生物에 의탁해 그린 그림이 十長生圖다. 이러한 십장생도는 위에서 열거한 열 가지의 장생물로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昌德宮에 있는 십장생도에는 위의 十長生 이외에 대나무와 복숭아가 추가되어 있고 景福宮 慈慶殿 굴뚝에는 대나무, 국화, 연꽃, 포도가 추가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十長生이란 당시의 사람들이 불로장생의 세계, 즉 仙界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즉 그들이 가장 기리는 것을 그려 넣은 그림이라 볼 수 있어서 넓게는 長生圖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사람들이 불로장생을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이러한 바람을 담은 십장생도의 아름다움에 대한 매력과 수석인 스스로의 바람 등으로, 해석인들은 일찍부터 장생 문양석을 모아 왔고 오늘도 십장생을 완성시키려 계속 노력하고 있다. 십장생을 모으는 일은 앞으로 살펴볼 十二支神을 모으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완성해 나가는 과정의 즐거움과 완성되었을 때의 벅참으로 해서 보람이 있는 일이다.
십장생도를 보면 우뚝우뚝한 산에 五色 구름이 걸쳐있고, 빛나는 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靑鶴과 白鶴이 날고, 산에서 폭포가 쏟아지고 있다. 괴암과 기석 사이에 흐르는 물에는 금거북이와 은거북이가 놀고, 사슴들이 한가로이 무리 지어 있다. 앞에는 붉은 소나무가 몇 그루 서있고, 그 아래에는 불로초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더욱이 장생도는 모든 자생물을 화려한 진채로 묘사하여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다. 十二支神의 세계
子(쥐), 丑(소), 寅(호랑이), 卯(토끼), 辰(용), 巳(뱀), 午(말), 未(양), 申(원숭이), 酉(닭), 戊(개), 亥(돼지)의 열두 종류의 동물을 十二支神이라하여 땅의 신을 대표한다. 이들은 하늘의 질서인 天干인 甲, 乙, 丙, 丁, 戊, 己, 庚, 辛, 壬, 癸와 짝을 지어가며 60년을 一甲으로하여 한 바퀴 돌면서 위의 열두 동물의 속성을 잣대로 하여 우주의 질서와 변화를 시간적으로 표현해왔다. 따라서 이들은 동양문화권에서 인간사에 깊이 관여해온 동물들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四柱라하여 한 바퀴 돌면서 위의 열두 동물의 속성을 잣대로 하여 우주의 질서와 변화를 시간적으로 표현해왔다. 따라서 이들은 동양문화권에서 인간사에 깊이 관여해온 동물들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四柱라하여 생년월일시에 干支를 달아, 이들의 일생 동안의 命運을 점치는 바탕으로 쓰였는가 하면 공간의 방향까지 이들로 표시하여 사회와 문화 전반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해석인들 사이에서 이 십이지신은 十長生과 더불어 커다란 수집 장르가 되고 있다. 따라서 전통미술이나 문화에서 이들이 각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동.식물과 관련하여 어떠한 상징을 이루어내고 있느냐는 것은 해석의 문양이나 형태를 완상하는 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라. 달의 세계
해와 달에 관한 우리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신라 아달라왕 4년 동해변에 사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는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되었다. 이들은 각기 해와 달의 精이었기에, 이들이 일본으로 간 후 신라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만다. 이 신화에서 달의 정기인 세오녀는 여성이므로, 달은 여성을 상징하고 있다.
우리의 민속에서 달은 농사에 관련되어 풍요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시간의 질서와 시절의 운행을 상징하고 있다. 달은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고 3일간은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춘다. 이렇게 달이 변하는 것은 주기적이고 항구적이다. 따라서 달은 榮枯와 起伏과 興亡盛衰를 상징한다. 달은 그 빛이 부드럽고 감싸는 듯 푸근하다. 달빛은 언제나 물기를 머금은 듯해 여성적인 서정성과 조화와 융합, 내밀스런 공감, 은근함 등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달빛에는 정화하는 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달에는 이상과 같은 긍정적인 상징 이외에, 그 차가운 듯한 느낌 때문에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소외의 은유로 쓰여 情恨의 서정을 표상해 왔다. 유교에서 달은 淸閑이나 청정하고 은일한 군자의 덕으로 칭송되었고, 불교에서는 달이 밝고 원만하되, 한 모습을 고집하지 않아 圓融自在하므로 진리나 佛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달은 해와 달리 어둠에서 빛나고 있어 無明과 有明을 상징하였다. 끝으로 달은 전통적인 시문학에서는 詩情, 절개, 고독, 정한, 평화를 일깨워주는 매체이다.
마. 四君子의 세계
꽃을 보면 향기를 맡고 싶고, 향기에 취하면 그 향기를 그려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우리는 동양화에서 각각 다른 계절에 피는 꽃을 한데 어울려 그리고 四時群芳이란 화제를 단 그림을 흔히 볼 수 있다. 서양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그림이지만 꽃의 향기와 그 정신세계를 그려내는 동양화에서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더구나 향기는 人品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고 보면 쉽게 이해된다.
깊숙한 산 속, 저 만치에 피어있는 난초, 비록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은은히 풍기는 향기가 있기에 그곳에 난초가 피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인품을 갖추어야 주위 사람들을 감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賢者를 가까이 하는 것을 지초나 난초를 얻음과 같다(親賢者如就之蘭)고 하였다. 즉 현자를 가까이 하는 것은 난초의 향기를 맡는 것처럼 그 사람의 인격에 감화되어 인품을 돋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계절에 각각 피는 꽃을 한데 어울려 그린 그림을 걸어 놓고 보는 것은 일년 내내 인품이 높은 사람들과 곁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런 생각에서 종종 梅, 蘭, 菊, 竹을 한데 그려 놓고 四時淸香이란 화제를 붙여, 혹한을 견디어낸 매화가 풍기는 의지의 향기와, 은은히 풍기는 난초의 고고하고 청초한 인격의 향기를, 그리고 가을 서리를 맞으면서도 피어있는 국화의 군자다운 지조의 향기와, 늘 푸르르며 올곧게 서있는 대나무의 절개의 향기를 일년 내내 맡으며 스스로의 인품을 다듬었던 것이다.
바. 새(鳥)의 세계
새는 나무에서 산다. 이 때문에 새와 나무와 꽃은 전통적으로 한데 어우르는 그림으로 발전하여 하나의 畵科로 자리잡아 왔다. 이러한 花鳥畵의 상징성을 돌의 문양과 비교해보기 위해 화조화의 畵意를 살펴보자.
새는 날아 움직이는 것이고 꽃이나 나무는 대지에 뿌리를 박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움직이는 動의 새와, 움직이지 않는 靜의 꽃이 조화되는, 음양이 조화되는 묘를 인간의 염원에 실어 표현하는 것이 화조화이다. 이때 새나 꽃은 이러한 화의를 토해 내는 소재일 뿐이다. 두견새 울음소리에 배꽃빛을 더해 素服斷腸의 哀傷美를 더 했는가 하면, 꾀꼬리의 구르는 듯한 소리를 버드나무 가지에 실어 더욱 그 교성을 하늘거리게 했고, 나아가 봉황을 연꽃과 짝을 지어 정신적으로 가장 높은 세계를 열어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화조화는 새와 꽃을 극적으로 대비시켜 자연의 섭리를 걸출하게 내보이는 세계이다.
사. 물고기(魚)의 세계
'莊子'의 '秋水'편을 보면 장자와 惠子가 濠江을 지나는 다리를 거닐면서 강물을 내려보며 나눈 이야기가 있다. 장자가 말하기를 "물결 속의 물고기가 자유로이 뛰노는 것을 보니 저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인가 봅니다." 이 말을 듣고 혜자가 비아냥거리면서 말하기를 "그대가 고기가 아닌데 어찌 고기가 즐거운지 알 수 있는가?" 이에 장자가 대답하되 "그대는 내가 아닌데 어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 하시오?"
장자와 혜자가 나눈 이런 도가적 이야기를 보고, 후세 사람들은 물고기가 자유로이 노니는 것을 大自由 또는 安分知足, 無碍, 悠悠自適, 上樂이라 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足蹟의 좌우 발바닥에 물고기를 각각 한 쌍씩 새겨서 해탈의 경지를 내보이고 있는가 하면 밤낮 없이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를 보고, 아예 나무로 만든 물고기인 木魚를 걸어두고 수행정진을 즐겨하는데 썼으며 木鐸은 물고기의 형태를 추상화한 것이다.
유교에서는 물고기가 떼지어 다니는 모습이 군대의 행진과 같다는 생각에서 이를 임금과 신하, 장수와 병사, 그리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보았다. 물고기 魚와 남을 餘의 발음이 같아 물고기는 여유와 풍요를 상징하는가 하면 물고기가 黃河에 있는 龍門의 급류를 통과하면 용이 된다하여 명성이나 시험의 어려운 관문을 登龍門이라 했다.
또한 물과 물고기의 관계를 임금과 백성의 관계로 비교하기도 했다. 물고기의 이러한 상징성을 빌려서 왕릉의 정문에 물고기를 施紋하여 그곳이 신성한 곳임을 표시하고 물고기의 비늘을 본떠서 갑옷을 만듦으로써 將師를 상징케 하기도 하였다.
2) 刑象美의 鑑賞
가. 韓國의 造形美와 海石
거의 자연석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十二支神 돌 조각을 보려면 아무래도 景福宮 越臺에 있는 十二支神 石像을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方位에 따라 열두 동물을 배치한 공간 경영의 묘도 놀랍지만 돌이 빚어낸 匠人의 솜씨는 가히 神工에 가깝기 때문이다. 조각 아닌 조각, 형상이면서도 형상을 벗어난 탈속한 모습이 자연스럽기 한량없다. 우리 조각의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해 좀더 알아보기 위해 우리 나라 考古學界의 원로였던 金元龍 박사의 글을 보자.
"나는 여기(경복궁 월대) 申石(원숭이)이 가지는 겸손하고도 위대한 한국의 미에 발을 멈추고 탄성을 올렸다. 이 무명의 石匠이 곰방대를 물고 쪼아낸 조각 아닌 조각은 근대 한국이 낳은 뛰어난 조각이 아닐 수 없고,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미를 일개 花岡石위에 凍結시킨 일대의 걸작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우리 나라의 조각가들이 외국 조각 작품집에 열중하기에 앞서 먼저 이러한 無名의 한국 고대작가가 만들어 낸 우리 자신의 전통에 눈 돌릴 것을 권하고 싶다. 전통 위에 서있지 않고는 새로 자기 자신의 스타일이 생길 수 없고, 전통과 배경과 기반이 없는 "發展"은 맘보바지를 입은 아프리카 인들의 트위스트 춤처럼 허무하다. (중략) 당시의 美術人들은 匠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직업공장(工匠)들이었지만, 그들의 본질적인 氣質은 조금도 직업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제작 태도는 물처럼 밝고 어린아이처럼 순진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에는 虛飾 衒氣와 오만이 없고 쌀밥과 같이 담담하고 가을꽃처럼 천진난만하다."
이러한 돌 조각을 감상한 壽石人이라면 강과 바다가 유구한 시간과 물로 彫琢 해낸 수석의 세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각가의 창작의도에 따라 치열하게 쪼아낸 有意的인 작품이 아니라, 그저 마음에 따라 손길 따라 무심결에 만들어 진 듯한 돌 조각들, 무위의 손길인 양하여 수석과 짙은 심정적인 밀착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만일에 이 돌 조각들이 강에서 만년, 바다에서 몇 만년을 수마가 된다면, 그래서 수마로 요철을 다 털어 버린다면, 우리와 만나는 바닷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는 생각을 탐석에 빠져본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나. 造型美(海石)의 形成과 消滅
돌 조각이 쪼아냄과 갈아냄의 미학이라면, 수석은 모래의 스침과 물의 어루만짐의 미학이다. 돌 조각이 사람의 한 생을 거는 有限的이고 인위적인 몸짓이라면, 수석은 돌이 磨盡될 때까지 그 과정이 반복되는 무한적이고 무위적인 저절로 임이다. 이렇게 보면 바닷돌이 바다에서 일생을 마감하는 일이란, 모래에 씻기고 씻기며, 파도에 구르고 굴러 마침내 둥근 돌이 되어 一圓相이 되고, 그 자리를 頂點으로 하여 스스로 몸을 털어 내며 한없이 작아지다가, 끝내는 사라지는 몸짓으로 볼 수 있다. 球形(卵形)의 一圓相은 그 생김만으로도 가득차 있고,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형상이다. 이것은 圓融無碍의 세계인 동시에, 버릴 대로 다 버려 꽉 차있으면서도 비어있는 空과 직결되는 사유의 세계이다.
바닷돌의 形象的 분류란 일원상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그때 그때의 모양을 가려보는 것에 불과하다. 바닷돌은 기본적으로 둥글음을 바탕으로 한 抽象내지 이에 가까운 형태이다. 따라서 형태가 대부분 단순. 간결하고 이미지가 순수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禪的인 맛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바닷돌은 형태의 單調性 때문에 강돌과 같이 다양한 표현의 物象이 생길 수 없다. 일반적으로 海石界에서 통용되고 있는 바닷돌의 형태적 분류는 크게 보아 圓石(球形 또는 卵形), 人物石, 器皿石, 果石, 線石, 物形石과 이들의 異形 내지 變形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바닷돌에도 아직 角이 남아 있거나 절단된 面으로 된 面體도 있기 때문에 따라서는 四角器形類나 圓柱形 등도 즐길 수 있다
(하편에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