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진정한 승리자의 서원 >
큰 보리수를 병풍 삼고, 그 뿌리와 잎을 방석 삼아, 몸과 마음이 하나를 이루고 다시 그 마음이 우주와 계합
契合할 때 , 드디어 붓다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 붓다는 생명체가 갖는
집착과 본능까지도 정복한 최초의 진정한 정복자 ,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붓다는 넘치는 법열 法悅을 즐기고 또 즐기면서 “이것이 바로 현세에 내가 이룩하려 했던 것이다”라고 재차
확인을 하였습니다.
희열을 가라앉힌 붓다는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우주적 진리인 연기를
관하신 붓다께서는 그 마음의 여운을 간직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5비구에게 자신이 방금 깨달은
경지를 자신 있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붓다가 5비구에게 설한 내용은 4성제였습니다. 붓다께서 이들에게 12연기를 처음 설하셨다는 단 한
줄의 증거도 없습니다.
이건 상식에 어긋납니다. 즉,5 비구에게 설한 첫 가르침이 12연기법이어야 기존의 주장에 맞는데 실상은
4성제를 설하신 것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모순을 해결해야 합니다. 12 연기가 아니라 4성제를
최초로 설하셨다고 전해지는 이유를 해결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찾은 해결 방법은 12연기는
후대에 조합된 것이고, 연기적 고-집-멸-도라는 사성제를 설하셨다고 결론짓는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5비구에게 12연기가 아닌 법계의 ‘연기성’을 언어적이 아니라, 4성제라는 의미적으로 재차
확인해 주신 것이라고 이해하면 접근이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좀 더 과감한 추론을 한다면, 붓다께서는 연기법의 부분인 ‘인과’가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부분에 상당한 고민을 하셨을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연기에는 의도나
선악이 없지만, 세상은 인과에 의도와 선악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경전에 등장하는 붓다께 법을 설하기를 세 번 간청하는 범천왕의 모습도 이런 세상에 투영되는 인과에
대한 붓다의 속내를 표현한 방법이라고 이해됩니다. 또한 붓다의 신격화 후의 일이지만, 붓다가 태어난
국가가 정복당해 없어진 사실도 특별한 인과 因果를 적용시켜야 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이렇듯 붓다의 고민은 당시의 고행주의자들이 말한 ‘비상비비상처’나, 또 다른 수행의 무리들이 말하는
이치理致 와는 전혀 다른 경계를 체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붓다의 깨달음의 목적은 ‘중생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함에 있었기에, 드디어 전법傳法을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이제 붓다는 큰 포부를 펼치려 합니다. 단순히 중생들에게 공덕을 짓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모두 당신과 같이 생사를 초월한 수승한 진리를 얻을 수 있다는, 초유의 가르침을
세상에 펼치려 하셨던 것입니다.
5비구와 더불어 붓다는 거침없이 자신의 깨달음을 설파할 장소를 택합니다. 그곳은 당시 가장 큰
도시였던 마가다국 빔비사라 왕이 거처하는 왕사성이 있는 라자그리하Rajagrha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