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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이 좀 길지만 천천히 읽어주세요!
메얀청 선교 보고
양곤은 평화의 도시처럼 고요했습니다. 예전에 비해 차량도 많이 줄었고, 사람도 많이 다니지 않았고, 거리도 많이 깨끗해졌습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이방인인 저에게 여전히 밝게 웃어주었습니다. 양곤에는 검문소도 없고, 전투도 없었습니다. 외국인이 양곤 거리를 활보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할 때 아무도 제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오후 5시가 되면 택시들은 운행을 멈추고, 모든 상점들은 저녁 7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고 했습니다. 7시 이후에는 죽어도 되는 사람들만 다닌다고 했습니다. 양곤은 평화의 도시가 아니라, 평화롭게 보이도록 위장된 도시였고, 조용히만 있으면 문제가 없는 도시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양곤 밖이었습니다. 양곤을 벗어나면 거리의 온도 차는 순식간에 바꿨고, 그것을 온몸으로 살벌이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미얀마의 고요함은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양곤을 벗어나면 지방으로 가는 첫 번째 시외버스 터미널 [타우첸]이 있습니다. 메얀청으로 갈 때 항상 그 타우첸을 거쳐서 갑니다. 항상 많은 차량과 사람들로 분주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 타우첸도 유령의 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차도, 사람도 없었고, 북적였던 상점들은 먼지를 두껍게 뒤집어쓰고 엎드려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메얀청으로 가는 차량은 택시였습니다. 일반 렌트카는 없었고, 개인 차량은 그 누구도 가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0년째 같은 택시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기사는 웅티위(Aung Htwe)씨인데 불교신자입니다. 바욱전도사의 이웃입니다. 다른 기사들이 왜 메얀청으로 가지 않으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오늘은 말씀드리겠습니다. 양곤에서 메얀청으로 가는 길은 외길입니다. 우회 도로가 없습니다. 그 외길 중간에 사부탕(Sabutaung)이 있습니다. 저희 선교회는 오래 전에 그 사부탕에 한센정착촌을 건립할 목적으로 약 9,000평의 부지를 매입해 놓았습니다. 그 사부탕이 지금은 위험 지역이 되었습니다. 사부탕 주민의 80%가 샨(Shan)족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샨족이 미얀마 군부를 대항해서 싸우는 반군에 속한 부족이란 점입니다. 지금도 사부탕 주변에서 자주 교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부는 그 사부탕 주변에 검문소를 세우고, 모든 차량을 샅샅이 수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곤에서 메얀청으로, 메얀청에서 양곤으로 나오는 일이 쉽지 않게 된 것입니다.
선교 첫째 날, 6월 20일 오전 7시, 택시가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웅티위가 반갑게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가면서 하루 차량 렌트비로 얼마를 지불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매번 렌트비가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에는 10만 잣트라고 했습니다. 저는 매일 15만 잣트를 내겠다고 했습니다. 바욱은 너무 많다고 했습니다. 웅티위는 영어를 전혀 모릅니다. 바욱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우리를 메얀청까지 데리고 가는 사람이다. 내가 다른 기사에게 설령 100만 잣트를 준다고 한들 과연 누가 가주겠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5만 잣트를 웅티위에게 미리 줬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많다고 사양했지만 결국 받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에게 15만 잣트를 미리 주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2km 전방, 사부탕을 앞에 두고 웅티위는 창문을 모두 열게 했습니다. 검문소에 도착하면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보이도록 미리 열고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총을 든 군인이 저를 보더니 신분증을 요구했습니다. 여권을 제시하면서 여권 사이에 제 명함을 함께 넣어서 내밀었습니다. 그 명함은 김영석전도사가 특별히 제작해서 준 명함이었습니다. [Global Hansen Missions/Dr. Joshua Yang] 명함에는 목사 혹은 선교사란 용어는 없었습니다. 여권을 본 후에 군인은 제 명함을 잠시 주시하더니 저에게 “의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웅티위가 갑자기 뭐라고 뭐라고 버마어로 “따따따”했습니다. 그러자 군인은 여권과 명함을 돌려주면서 “통과”라고 했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했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검문소를 통과하자 바욱이 그 내용을 통역해 주었습니다. “이 분은 캐나다 의사입니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이 분을 모시고 메얀청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 분은 메얀청에 있는 나환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고, 오늘도 그들을 돕기 위해서 가는 길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사전에 그렇게 말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었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더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다시한번 15만 잣트를 잘 쓰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15만 잣트가 그의 마음에 큰 감동이 된 것이 분명했습니다. 15만 잣트는 하나닙의 섭리였습니다. 의시시한 그 사부탕을 통과한 후에는 메얀청까지 홍해를 가르고 가듯이 들어갔습니다.
메얀청에 도착했습니다. 리안과 세 명의 메얀청 목회자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리안의 여동생 듀듀가 양손에 삶은 고구마를 큰 그릇에 가득 담아 가지고 나왔습니다. 작년 10월에 박형서선교사가 심어준 한국 고구마였습니다. 어린이 팔뚝만큼 컸습니다. 맛도 환상적이었습니다. 메얀청 목회자들이 저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리안이 저희 교회 성도들에게도 이 고구마 종자를 나눠줘서 성도들의 밭에도 같은 고구마를 심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고구마 선교는 대 성공을 거뒀습니다. 메얀청 사람들이 굶지 않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40가정이 한국 고구마를 자신들의 밭에 심었다고 했습니다. 다시 새 순이 나오면 더 많은 가정에게 고구마 순을 나눠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틀 동안 가졌던 목회자 세미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었습니다. 목회자들은 메얀청에 올 때마다 세미나를 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오전에 2시간, 오후에 3시간. 이틀 동안 모두 10시간 강의했습니다. 강의보다 더 좋았던 것은 앞으로 메얀청 복음화를 위해서 목회자들이 함께 연합하고 동역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서울에서 준비해 간 최신형 무선 이어폰을 5명 목회자들에게 각각 선물했습니다. 모두들 행복해 했습니다.
토요일에는 학생수련회가 있었습니다. 수련회 주제는 “거대한 고래로 일어나라. (Arise as a great Wale!)”였습니다. 서울에서 제작한 수련회 유니폼을 모든 학생들에게 선물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찬양, 간증, 성경암송대회가 있었는데, 저를 놀라게 했던 것은 성경퀴즈대회였습니다. 사전에 상의 없이 학생들 앞에 리안이 발표했습니다. “오늘 성경 퀴즈 문제는 양목사님이 직접 내주십니다.” 책상 위에는 상품들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성경 지식이 낮을 것이라 생각하고 쉬운 문제를 냈습니다. “산꼭대기에 배를 지은 사람은? 기도하다가 사자 굴에 던져진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몇 명? 구역 성경은 모두 몇 권?” 등등. 퀴즈의 첫 단어가 제시되면 이미 많은 학생이 벌떡벌떡 일어나 답을 맞췄습니다. 리안은 더 어려운 문제를 달라고 했습니다. “구약 성서에서 네 번째 책은? 주님이 원하시면 제가 깨끗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라고 말했던 사람이 가졌던 병은? 느헤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몇 일만에 완성했는가?” 등등. 학생들은 그 어려운 문제까지 모두 맞췄습니다. 그동안 리안이 성경 공부를 얼마만큼 깊이 있게 가르쳤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신학교를 보내도 될 아이들이었습니다. 너무 대견스럽게, 너무 자랑스런 주의 일군들로 자랐습니다.
오후에는 특별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메얀청에서 약 40분 정도 가면 아름다운 호수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야외 집회를 하기로 하고 모든 학생이 탈 수 있는 트럭 한 대를 대여했습니다. 저와 바욱은 양곤 택시를 타고 뒤를 따랐습니다. 앞에서 달리는 트럭이 곧 전복될 것처럼 흔들렸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신이 나서 차 안에서 신나게 움직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의 힘찬 함성과 웃음소리가 뒤에 까지 크게 들렸습니다. 그런데 호수 가까이 다가갔을 때 트럭이 점점 속도를 줄였습니다. 아이들도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 트럭이 멈췄습니다. 트럭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리안이 트럭에서 내려 앞으로 갔습니다. 저도 무슨 일인가 알아보려고 차에서 내리려 하자 바욱이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시베리아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바람에 흔들렸던 나뭇가지들도 멈춰버린 [동작 그만]이었습니다. 한 참 후에 리안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목사님, 저희 앞에 군인들이 있습니다. 당장 메얀청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웅티위가 차를 급히 돌려서 그곳을 떠났습니다. 군인들은 트럭 때문에 저를 볼 수 없었습니다. 비포장 도로였지만 웅티위는 [퐁지]라는 도로까지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이들의 트럭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리안과 아이들이 군인들에게 잡혀 있을 것 같아서 곧바로 전화하지 못하고, 약 20분 후에 전화했습니다. 리안은 메얀청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가슴을 쓰러 내렸습니다. 아이들은 먼 훗날 어른이 되어서도 오늘 일을 똑똑히 기억할 것입니다. 곳곳에 총을 든 군인들이 길을 막고 어린이들까지 겁박했던 나라로 말입니다. 웅티위는 저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시하번 큰 일을 해주었습니다.
그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슨 일이 미얀마에 있었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양곤으로 들어가기 전, 타우첸 부근으로 접근할 때 차량들이 길게 걸려 있었습니다. 긴 검문과 수색이었습니다. 어제는 없었던 검문소가 갑자기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여권과 명함을 준비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5분 후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천둥번개가 쳤고 장대같은 비가 쏟아졌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검문을 받을 때 모든 창문과 뒤 트렁크까지 열어야 하는데, 창문을 열 수 없을 정도 소낙비가 퍼붓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앞에 있던 차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군인들이 정차하지 말고 “통과, 통과, 통과”라고 수신호를 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도 델리 공항에서 일어났던 기적이 저의 눈앞에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저희는 그 차들 틈에 끼어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약 10분 달려서 타우첸을 지나 양곤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검문소 주변 하늘에서만 갑자기 소나기가 폭포처럼 쏟아졌던 것입니다. 저는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제 귀에 이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들아, 나는 항상 네 앞에서 가노라.” 그 음성을 듣고, 뒷좌석에 앉아서 펑펑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면서 갔습니다.
호텔에 도착해서 한헤경선교사에게 전화했습니다. 한선교사는 양곤에서 병원과 한국어 학당을 운영하는 선교사입니다. 특별히 듀듀와 메얀청 출신 두 여학생을 간호사로 만들어주었고, 한선교사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일하도록 해준 선교사입니다. 한선교사가 주일에 메얀청에 와서 리안의 목사안수식을 축하해주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한선교사는 주로 양곤에서 병원과 학교를 운영하고 있어서 양곤 밖의 상황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부탕과 퐁지와 메얀청과 호수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히 말해주면서 메얀청으로 오는 일을 접어달라고 했습니다. 한선교사는 지방의 상황에 대해서 대략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하면서 메얀청 방문은 포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안전을 염려하며 꼭 메얀청으로 가야만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저는 메얀청으로 다시 가야만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미얀마에 도착해서 저희 미얀마 선교부 이사장 웅민탕(Aung Mint Thang)목사에게 전화했었습니다. 웅목사는 양곤신학대학원 원장이고, 바욱전도사는 그 학교 교수이고, 리안은 그 학교 출신이었습니다. 특별히 웅목사는 10년 전에 리안전도사를 저에게 보내준 사람입니다. 그래서 웅목사에게 주일예배 설교를 부탁했습니다. 주일 아침 일찍 웅목사가 차를 가지고 호텔로 왔습니다. 중간에 리안과 함께 공부했던 두 친구 전도사를 태웠고, 바욱전도사 부부도 태우고 메얀청으로 향했습니다. 30분 정도 달렸을 때, 임시 검문소에서 다시 걸렸습니다. 한 군인이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웅목사는 큰 목소리로 “우리는 크리스천이다.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군인은 음찢하면서 “크리스천이라고? .... 통과!”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내가 웅목사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그가 말을 시작하고 5분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납니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멍멍해지기 때문입니다. 그 우렁찬 목소리로 “우리는 크리스천이다.”라고 외친 말이 그 군인에게는 마치 총알처럼 발사되어 귀에 꽂혔을 것입니다. 문을 닫고 출발하면서 우리는 모두 “하하하하”하고 웃었습니다.
메얀청에 도착했습니다. 듀듀와 학생들이 목사안수식 강단을 분주히 단장하고 있었습니다. 예쁜 꽃들로 강단이 꾸며졌고, 축하 꽃다발까지 마련되었습니다. 예배 전에 웅목사와 두 전도사를 불러서 말했습니다. “이번에 내가 목숨을 걸고 메얀청까지 온 이유가 있다. 리안과 함께 메얀청 선교를 한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그동안 리안이 보여준 그의 신실함과 성실함은 목사가 되기에 충분했다. Chin(친) 출신으로 군부에 몇 번 끌려가서 고문과 심문을 받았지만 한 번도 그의 신앙을 굽힌 적이 없다. 군부에 잡혔다가 풀려나면 곧바로 메얀청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지켰다. 자랑스럽다. 그러나 이 목사안수식은 두 사람에게 단순히 ‘목사’라는 타이틀을 주기 위한 행사가 아니다. 안디옥교회가 금식하고 바울과 바나바에게 안수할 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었고, 그들을 첫 번째 선교사로 파송했었다. 오늘 목사안수식에서 그 동일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기를 기도한다. 두 사람도 그 은혜를 사모하면서 무릎을 꿇어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었다. 찬송 하나하나에 은혜가 넘쳤습니다. 웅목사는 중간중간 나에게 “와우~~ 아멘! 대단합니다.”하면서 아이들에게 예배의 영이 충만하다고 감탄했습니다. 리안이 맺은 아름다운 과실들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는 그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을 쳤고, 혼자서 아들을 키우면서도 리안은 메얀청 선교를 포기하지 않고 메얀청 아이들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단순히 밥만 먹였던 목회가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여서 양육한 선한목자였음이 예배를 통해서 증명되고 있었습니다. 주일예배와 목사안수식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 가운데 은혜롭게 마쳤습니다.
예배 후에 성대한 축하 만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시작한 지 5분 후에 리안이 조용히 다가와 저에게 귀속 말로 “메얀청 동장이 왔습니다. 식사 후에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만나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만나겠다고 말하고, 리안에게 봉투에 20만 잣트를 넣어서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않겠다는 동장을 억지로 식사 테이블로 초대했습니다. 처음 보는 동장이었습니다. 리안은 6개월 전에 새로 뽑힌 동장이라고 소개했습니다. 30대 젊은 동장이었습니다. 웅목사가 돼지고기, 닭고기, 야채볶음들을 그의 밥 위에 계속 올려주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밖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센타 구석으로 가서 나무 아래에 세 의자를 놓고 저와 동장과 리안이 앉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두 남자가 조용히 다가와 동장 가까이에 앉았습니다. 2미터밖에 되지 않는 간격이었습니다. 미얀마 남자들이 입는 전통 치마바지 [론지]를 입고 있어서 동사무소 직원이 함께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른쪽 5미터 뒤에는 웅목사와 여러 명의 목사들이 앉아서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미얀마에 들어올 때마다 수십 번 심장이 쿵쿵 떨어졌었습니다. 생각이 아니라 제 몸이 먼저 그 반응을 보이고는 했었는데, 갑자기 제 몸에 그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 “이것은 뭐지?” 순간 긴장하면서 동장에게 말했습니다. “저에게 하실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 말씀하십시오.” 동장은 감사 인사부터 했습니다. “저는 불교신자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점심은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어제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당신이 며칠 전에 여선생님들에게 생리대 50박스를 기증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지난 목요일 목회자 세미나가 있던 첫날에 리안과 듀듀를 불러서 센타에 있는 여학생들을 위한 생리대는 충분하냐고 물었습니다. 듀듀는 마침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추가 선교비를 주면서 여학생들을 위해서 생리대 100박스를 사고, 따로 50박스를 구입해서 학교 여선생님에게 주라고 했었습니다. 듀듀는 많다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을 가르쳐주시는 고마운 선생님들이시다. 그분들을 잘 섬기면, 그분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더 잘 해주지 않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생리대가 여선생님들에게 전달이 되었는데, 그 일이 동장에게까지 보고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동장의 본론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부탁이 아니라 메얀청 모든 주민의 부탁입니다. 지난 번에 해주셨던 의료봉사를 다시 한 번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여수애양병원의 의료선교가 다시 호출되었습니다. 메얀청 주민들에게는 너무 큰 도움이 되어서 잊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현재 미얀마 상황에서 의료선교팀이 오기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급한 약품들을 구해서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부탁은 메얀청에 한국 기업인이 들어와서 작은 공장이라도 세워달라고 했습니다. 생계를 위한 가내 수공업이라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두 번째 부탁도 어려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지금 양곤에 있는 한인 기업들도 하나 둘 철수하고 있다. 메얀청에 사업 투자를 할 수 있는 한국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찾아보겠다.”라고 했습니다. 동장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동장에게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준비했던 20만 잣트를 그의 손 안에 깊이 찔러 주었습니다. 그도 티를 내지 않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떠났습니다.
그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자, 웅민탕목사가 나에게 급히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무슨 대화를 했습니까? 제가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동장이 뭐라고 하던가요? 목사님은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하얗게 질려있는 웅목사에게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웅목사는 긴 숨을 내쉬며 “다행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웅목사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웅목사가 말했습니다. “동장이 목사님과 이야기를 시작할 때, 두 남자가 다가가 가까이 다가가 앉았었지요? 그들은 사복을 입은 군인들이었습니다. 론지(남자용 치마바지) 뒤에 권총을 끼고 있었습니다. 혹시 목사님이 군부에 대해서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곧바로 연행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희는 목사님이 말 실수를 하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하면서 보고 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웅목사는 빨리 메얀청을 떠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교우들과 학생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메얀청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홀가분한 마음보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거움이 제 가슴으로 내려왔습니다. 나는 떠나지만, 그 무거움 속에 여전히 갇혀 있을 리안과 아이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다가 차에서 웅목사는 그 답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먼 훗날 우리가 천국에 가면, 오늘 메얀청에서 있었던 일을 주님 앞에서 다시 말하게 되겠지요? 지금도 가슴이 떨립니다. 저는 괜찮지만 혹시 목사님께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꿈만 같았던 4일이 지나갔습니다. 4일 동안 여덟 번 메얀청을 오가면서 많은 검문소에서 중무장한 군인들을 만났지만, 그곳에는 그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들이 어김없이 화염검을 들고 그곳에서 저를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잠시 뒤로 돌아갑니다. 목사안수식이 있던 주일 새벽 4시에 하나님께서 갑자기 저를 깨워주셨습니다. 캄캄한 침대 위에서 주일예배와 목사안수식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 불을 켰습니다. 그런데 테이블 위에 놓았던 핸드폰의 디지털시계가 흔들림 없이 깨끗하게 보였습니다. 혹시하여 손으로 왼쪽 눈을 가리고, 오른쪽 눈으로 보았습니다. 숫자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두 달 만이었습니다. 오른쪽 눈이 갑자기 열렸던 것입니다. 80% 이상 열린 것 같았습니다.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제가 드린 믿음대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간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된다.” 그 믿음대로 하나님의 “된다”는 1초면 충분했습니다. 하나님의 터지(the Glorly of Touch)는 1초면 충분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수술 없이 7월에 금란감리교회 필리핀 단기선교, 8월에 대구동광성결교회 40주년 기념 집회, 9월에 미주선교집회, 10월에 글로번메디컬 필리핀 의료선교까지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감격이 하나 더 있습니다. 주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하셨습니다. 선교사가 되어 땅 끝으로 가서 그곳에 있는 민족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일은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현지인을 목사로 세우는 일은 더 더욱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대통령의 권세도, 그 어떤 대기업 회장의 영화도 부럽지 않은 영광이었습니다. 메얀청 목회자들과 학생들을 말씀 위에 든든히 세워드리고, 목사 안수식까지 하고, 잃었던 시력까지 회복하고 미얀마 선교를 완수하고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종을 위해서 기도해 주셨던 모든 교회와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미얀마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은 평생 제 가슴에 품고 살아갈 것입니다.
“아들아, 나는 항상 네 앞에서 가노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사도행전 27:2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