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도 온전히 살아남은 추억 한 조각이 있다. 초등학교 삼학년 겨울, 학교에서 단체로 차를 빌려서 놀이공원에 갈 기회가 생겼다. 체험 수업이라는 명분을 빌어 시골 아이들에게 도시의 공기를 마시게 해주려는 선생님의 배려였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해외에도 드나들 정도로 여행의 기회가 많지만 그 시절에는 차를 타고 동네를 벗어나는 일조차 드물었다. 그날 도시의 유원지에서 보낸 하루는 지금까지도 선명한 컬러 사진으로 기억의 창고에 남아 있다. 알록달록한 찻잔 모양의 의자에 앉아서 몸이 빙글빙글 돌아갈 때 살짝 어지러웠지만 웃음이 나왔다. 다람쥐 통처럼 생긴 기구를 타고 거꾸로 회전할 때는 주머니 속에 있던 사탕과 동전이 바닥으로 쏟아져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회전 열차를 타고 경사진 내리막길을 지날 때는 나도 모르는 돌고래 비명이 튀어나왔다. 놀이 기구를 잡은 손등이 부르틀 정도로 차가운 날씨였지만 신기한 놀이기구에 흠뻑 취해 추운 줄도 모르고 목젖이 보이도록 웃었다. 삼삼오오 흩어져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공중관람차였다. 선생님은 줄을 세워서 넷이 한 칸에 들어가도록 했다. 밖에서 보던 공중관람차는 고개를 한참 들고 올려다봐야 할 만큼 높고 웅장한 규모였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와 앉으니 아담했다. 관람차 밖에서 볼 때는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아주 완만하게 원을 그리며 천천히 위를 향해 올라가서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유리문에 코를 바짝 붙이고 밖을 보니 놀이공원의 풍경이 점점 발 아래로 밀려났다. 조금 전까지 뛰어놀던 광장이 점점 작아지더니 나중에는 성냥갑보다 작아졌다. 위를 향할수록 높은 산도, 높은 건물도 더 이상 고개를 들고 올려다볼 필요가 없었다. 천천히 올라가서 정상을 찍은 후로 관람차는 다시 원을 그리며 아까와 같은 속도로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빨리 움직이지 않아서인지 애초에 기대했던 속도감이나 짜릿함이 하나도 없어서 김빠진 사이다 한 병을 마신 기분으로 나들이를 마무리했다. 강산이 여러 번 바뀌고도 남았을 오늘,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을 찾았다. 그 사이 이곳의 이름도 바뀌고 새로운 놀이 기구도 생겨서 예전과는 영 딴판이다.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신나게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줄을 서는 모습을 구경한다. 음료수를 한 모금씩 홀짝이다가 갑자기 본전 생각이 난다. 놀이 기구를 타는 비용까지 더해진 티켓을 끊고 들어왔으니 한 가지는 타야겠다 싶어 훑어보는데 마땅히 끌리는 곳이 없다. 시선을 돌리다가 저 멀리서 돌아가는 공중관람차가 눈에 들어온다. 어차피 아이들을 기다려야 하니 추억의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오랜만에 재회한 공중관람차는 예전보다 크고 색상도 화려해 보인다. 얼마 만에 타 보는지 감회가 새롭다. 초등학생이었던 꼬마가 그때의 나보다 큰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다시 왔으니 관람차 밖에서 쌓은 세월이 기구만큼이나 높다. 관람차가 위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카메라 줌을 밀어낸 것처럼 공중 관람차가 방금까지 주변의 건물의 크기는 작아지고 시야는 넓어진다.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풍경이 예전보다 훨씬 복잡하고 화려하다. 어릴 때는 천천히 움직이는 관람차의 속도가 따분하기만 했다. 성큼성큼 위를 향해 올라가고 싶은데 느려터진 공중관람차는 태평스럽게 자기 속도를 유지하고 있으니 갑갑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기구가 움직이는 속도는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내가 느끼는 체감 속도는 차이가 있다. 한없이 느리다고 생각했던 관람차가 지금 보니 결코 느리지 않다. 한 칸씩 올라갈 때마다 크기가 바뀌는 창밖의 풍경을 보면서 오히려 빠르다는 마음마저 든다. 지금까지는 위쪽만 올려다보며 조금이라도 속도를 내어 위로 올라가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 눈앞에는 보이지 않고 늘 내 눈높이보다 높은 곳에 있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높은 곳을 향해 오르려고 발버둥을 쳤다. 오죽하면 아파트를 고를 때도 초고층을 고집했겠는가.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마흔 중반을 지나는 지금 내 나이는 인생의 중간 지점 근처에 와 있다. 공중관람차를 타고 꼭대기에 다다른 이 시간이 어쩌면 내 인생의 정점과 비슷하다. 꼭대기에서 보면 더 멋진 풍경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오르려고 집착하는 만큼 내 주변의 소중한 풍경이 점처럼 사라지는 것도 놓치기 마련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생각에 잠긴 사이에도 관람차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이제 아까 올라왔던 반대 방향으로 한 칸씩 아래를 향해 내려간다. 의자 반대편으로 옮겨 앉아서 다시 창밖을 본다. 올라올 때 멀어졌던 풍경이 비슷한 듯 약간 방향이 바뀐 채 점점 커진다. 지금까지 고개가 하늘을 향해 있느라 잠시 옆과 아래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아까보다 시선을 수평으로 두었더니 왠지 같은 그림도 비로소 자세히 보인다. 천천히 숨을 가다듬고서 삶의 가까운 풍경으로 내려갈 준비를 한다.
첫댓글공중관람차를 타고 꼭대기에 다다른 이 시간이 어쩌면 내 인생의 정점과 비슷하다...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생각에 잠긴 사이에도 관람차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이제 아까 올라왔던 반대 방향으로 한 칸씩 아래를 향해 내려간다. 의자 반대편으로 옮겨 앉아서 다시 창밖을 본다. 올라올 때 멀어졌던 풍경이 비슷한 듯 약간 방향이 바뀐 채 점점 커진다. 지금까지 고개가 하늘을 향해 있느라 잠시 옆과 아래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아까보다 시선을 수평으로 두었더니 왠지 같은 그림도 비로소 자세히 보인다. 천천히 숨을 가다듬고서 삶의 가까운 풍경으로 내려갈 준비를 한다... (본문 부분 발췌)
같은 놀이기구를 타도 세월이 흐르면 속도감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세월 속에 우리가 변해가기 때문이겠지요. 아마도!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글 올려주신 조성순 선생님의 수고로움에도 늘 감사 드리며 ^^
첫댓글 공중관람차를 타고 꼭대기에 다다른 이 시간이 어쩌면 내 인생의 정점과 비슷하다...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생각에 잠긴 사이에도 관람차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이제 아까 올라왔던 반대 방향으로 한 칸씩 아래를 향해 내려간다. 의자 반대편으로 옮겨 앉아서 다시 창밖을 본다. 올라올 때 멀어졌던 풍경이 비슷한 듯 약간 방향이 바뀐 채 점점 커진다. 지금까지 고개가 하늘을 향해 있느라 잠시 옆과 아래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아까보다 시선을 수평으로 두었더니 왠지 같은 그림도 비로소 자세히 보인다. 천천히 숨을 가다듬고서 삶의 가까운 풍경으로 내려갈 준비를 한다... (본문 부분 발췌)
같은 놀이기구를 타도 세월이 흐르면 속도감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세월 속에 우리가 변해가기 때문이겠지요. 아마도!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글 올려주신 조성순 선생님의 수고로움에도 늘 감사 드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