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날의 북한산성
겨울을 부르는 차가운 비가 내린다.
좋은 이들과 같이 우이령길을 걷기로 한 날이다.
불광동에서 버스를 타고 교현리로 가는데
차창에 뿌리는 빗줄기가 점점 더 세차진다.
차 안에서 목적지를 북한산성으로 변경하고
산성입구에서 하차했다.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에는 붐비던 평소와 달리
한가한 직원이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 일행을 바라본다.
들머리의 넓은 시멘트 포장길에서 벗어나
바위와 흙길이 이어지는 계곡으로 들어서니
먼저 반기는 것은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다.
몸과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어주는 맑은 물,
이런 물 같은 사람이고 싶다.
저 건너편 원효봉과 숲을
비구름이 동양화처럼 멋지게 그리고 있다.
부지런히 걸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산을 들고 산책하듯 천천히 걸었다.
빗물에 젖은 바위와 나뭇가지에 매달린
빗방울을 바라보는 마음이 즐거웠다.
당초 산영루까지 다녀오려고 했지만
북한동역사관 앞 쉼터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빗길에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하산했다.
정상을 가보지 않아도 좋은 나이임을 실감하면서.
비 내리는 날의 북한산성 산책,
비록 나이 들었지만 아직도 낭만이 남아있어
청춘 같은 우정이 쌓여지는 걸음이었다.
(23, 11, 16)
<단풍나무의 꿈>
가을날
단풍이 들어가는 건
단풍나무만이 아니다
봄의 다리를 건너오느라
여름의 산을 넘어오느라
한편으론 지치고
한편으론 무성해진
나도 단풍이 들어간다
내가 지나온 숲에서
누군가 붙여 둔 표지만을 보기도 하고,
누군가 놓아 둔 의자에서 쉬기도 하고
누군가 걸어 놓은 컵으로 물을 마시기도 하면서
단풍나무처럼 나도 단풍이 들었다
그러나 겨울이 오기 전에
무거운 삶의 이파리들을 정리해야 한다
몇 가지에 골몰하기 위해
몇 가지만 남기고 털어 내야 한다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봄꽃을 피우고
건강한 여름 그늘을 엮으려면
이제 나는 낙엽 지는 단풍나무처럼
거추장스러운 이파리들을 버려야 한다
겨울나무처럼
모든 빛깔을 삼킨 채
단순해져야 한다
- 최명숙 . 시인
첫댓글 개울에 흐르는 물길이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사진으로 담아서 작품을 만들어 내시는 솜씨는 단연 최고입니다.
걷는데 절대로 피곤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늘 주님의 은혜 가운데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북한산, 사시사철 언제나 좋습니다.
걸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비 내리는 날 친구들과 동행이어서 더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