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연기緣起>
붓다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사안 중 하나는, ‘이미 2,000년을 이어 온 인도의
사상에 대해 붓다의 사상이 무엇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입니다.
베다와 우파니샤드, 힌두이즘을 제압할 수 있는 붓다의 가르침은 오직 연기緣起 이것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 연기는 붓다께서 마음을 통해 관찰한 마음과 물질을 아우르는 제 1의 진리임이 2,500여 년간
검증되어 왔습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연기는 그 위치가 확고해 가고 있습니다. 원인에는 결과가 있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연기의 진리는 과학적 사명과 목표에도, 또 방법론에 있어서도 마찰을 일으킬 소지가 적어
보입니다.
불교가 ‘마음의 종교’를 표방하는 것은, 마음의 실체를 인정하고 물질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
붓다께서는 사람들이 물질에 집착하고, 힌두이즘이 보여주듯이 희생제나 형식에 얽매인 종교성이 강조된
틀로서는 연기를 볼 수 없다고 단언하시고, 역사상 처음으로 잊혀져 있던 인간의 가장 깊은 마음의 경지를
강조 하셨던 것입니다.
붓다께서 연기를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그 경계를 눈치 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해낸
최초의 일이니 당연했을 것입니다. 붓다께서도 어떻게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서, 자신과 같은 안락의
경지로 인도할지를 고민하셨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일’임을 상기하고자 합니다.
아라한과 붓다 , 이 언어는 당시에는 보통명사였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당시에 사람들이 염두에 둔 수행의
최고 경지였습니다. 지금도 그렇듯이 어쩌면 당시에도 살아 계신 붓다께서 직접 설법을 해도, 그 경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10대 제자도, 용수와 세친도 거대한 깨달음의 정상을 보지는 못하고, 그저 도전하고 오를 수 있는
‘코스’ 한두 개쯤을 발견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붓다의 깨달음은 퍼펙트한 것이었고, 그 후 오늘날까지 붓다의 퍼펙트에 1~10%만 가까이
다가서도 보통의 인간의 사유를 단번에 넘어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붓다의 온전한 깨달음은 12연기가
아니라, 우주의 이 理와 사 事의 근본 원리인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는
상의상관 관계의 원리인 군더더기 없는 연기緣起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