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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어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百殘新羅, 舊是屬民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 來渡□破百殘□□新羅以爲臣民."
이 부분은 "백제와 신라는 옛날부터 (고구려의) 속민으로써 조공을 하여왔는데 왜가 신묘년(391년) "까지는 문제가 없는데, 그 다음에는 글자가 망실되어 많은 논란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제대로 해결된 것은 없습니다. 그저 양국의 학자들이 아직도 입씨름을 하고 있죠.
그래서 "신묘년 이래 (백제와 신라가) 조공을 하지 않으므로, 백잔과 신라를 치고 신민으로 삼았다."라거나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잔을 깨뜨리고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또는"왜가 (신라를 신민으로 삼기 위해)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오므로 고구려가 왜를 쳐부수었다."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일단 주요 글자가 망실되어 정확한 의미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열도(일본)에서는 주로 "왜가 391년 이후 백제를 쳐부수고 신라를 신민 즉 부용국(식민지)로 삼았다."라고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열도(일본)의 동북아의 고대사 즉 한국 고대사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반도 북부에는 고구려라는 강대국이 있고, 한반도의 남부 및 열도에는 왜(倭)라는 강국이 있으며 한반도에는 백제, 신라, 가야 등의 소국들이 고구려와 왜의 부용국 또는 조공국으로서 이들 강국(고구려와 왜)의 정치적 영향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제대로 된 역사 연구'가 없이는 열도쥬신(일본인)의 생각을 고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반도쥬신의 사학계처럼 소중화 사상에 빠져 자기논리로만 무장하여 이를 극복하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두 나라는 지금까지 천년 이상을 반목(反目)하여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원수처럼 살아야 합니다.
열도의 이 같은 해석에 대해 반도의 사학계는 다양한 대응을 해왔습니다. 그 동안 워낙 많은 논쟁과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논할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비문에 왜(倭 : Wa)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답답한 것은 반도의 사학계는 이 왜를 열도의 왜로만 생각한다는 것이죠. 소중화(小中華) 의식의 발로이겠지요.
이 같은 논쟁은 큰 의미가 없고, 다만 왜가 신라를 부용국으로 삼기위해서 대대적으로 침입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고구려 군이 신라를 도와주기 위해 내려온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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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殘新羅, 舊是屬民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 來渡□破百殘□□新羅以爲臣民."
비문에서 이 기록 다음에 백잔정벌과 신라에 침입해 있는 왜를 물리치는 기록이 이어집니다.
백잔과 신라가 속민이었는데, 신묘년이래 백잔과 왜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이게 비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원뜻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신라를 괴롭혔기에 백제가 백잔으로 기록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고구려입장에선
신라가 먼저였고, 백제는 신라 다음이었던 것입니다.
첫댓글 원문에 대한 의견도 다양하며, 원문을 확정하는데도 문제가 많아서,
대강의 뜻만 취하면 될 것입니다,